| 건강을 위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던 하루,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자전거를 타고 운동 겸 산책을 나갔습니다. 돌이켜 보니 요즘은 낮 시간에 자주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기도와 말씀의 시간을 갖고, 신앙글을 위한 하나님 안에서의 고요한 묵상의 시간을 갖고, 그리고 글을 써서 다듬어 올리고 보내노라면 이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드는 까닭에, 낮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야 할 필요를 느끼던 터라 저녁 식사 후 나선 산책길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저의 천사 '리나'를 향하였습니다. 먼저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드리려 합니다. 기독교 신앙 공동체는 조금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저도 이전에 그랬으니, 솔직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온갖 초자연적인 현상과 천사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천사 이야기'를 꺼내면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뭔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무언의 인식이 작동합니다. 사실 신앙 공동체만을 탓할 수 없는 것이, 이전의 저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누군가가 천사 이야기를 하면 은연 중에 '저 사람은 좀 이상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직접 천사를 보고서야, 저 자신과 신앙 공동체의 이 이상한 점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가 은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체로 온전히 믿지 않고, 우리 자신의 경험과 이성의 틀 안에서만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천사들의 역사(役事)가 가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고 바른 앎을 갖는 신앙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 베드로가 헤롯 왕에게 붙들려 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홀연히 나타나 그를 구출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사도행전 12:7) 쇠사슬이 풀리고, 철문이 저절로 열리며, 천사가 그를 인도하여 거리로 나오게 한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들을 실제로 파송하신다는 엄연한 현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천사들을 가리켜 "섬기는 영"이라 부르며 이렇게 증언합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브리서 1:14) 천사의 사역은 성경 속의 특별한 순간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섭리입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천사들의 활동은 대개 하나님의 특별하고 크신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소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모두 천사가 있으며, 그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태복음 18:10)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일상 속 천사들의 활동이 반드시 어떤 거대한 섭리를 위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사들은 크고 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늘 함께하는 존재들입니다. 다시 저의 천사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여러 가지 일들과 마음을 빼앗는 것들로 인해 여유가 없어, 천사를 고요히 바라보며 교감을 자주 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날 산책길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리나' 천사와 조용히 교감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늘 하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사랑해요. 평안해요.“ 그리고 오늘 새롭게 전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런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해요.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바라볼 때도 빛 가운데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천사들을 통해서도 늘 이것을 말씀하시고, 방언 기도의 통역을 통해서도 늘 이것을 들려주시는데, 막상 저는 늘 잊어버리고, 들을 때마다 새롭게 울려옵니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듯, 삶의 수고로움 속에서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고 구속받은 기쁨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무너져 가는 이 세상의 삶 너머에 영원한 나라와 생명이 있음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기뻐하고 또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늘 잊어버림' 속에서, 천사 리나가 새롭게 일깨워 준 기쁨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나님 안에서 늘 기뻐하는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습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 영의 하늘 안에 거해요.“ 그 말에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늘 기도와 말씀 가운데 마음을 맑혀요. 사람은 마음이 맑아지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아기가 어머니를 천성적으로 좋아하듯, 사람은 마음이 맑아지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본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는, 그 마음이 맑아질 때 자연스럽게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이 세상의 염려와 욕심으로 흐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본래의 맑음으로 되돌리는 생명의 통로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맑아지면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라도 늘 그의 천사가 곁에 있다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 함께하는 천사들을 경험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에 속한 것으로 마음을 일깨워 주고, 삶의 수고로움에 지치지 않도록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며, 일상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그렇게 오랜만의 산책길에 하늘의 천사와 친구처럼 어울리는 시간을 갖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생의 수고로움 가운데 늘 그리스도인의 표징인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기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생을 가장 복되게 사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선조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둔 감옥 안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 이 편지가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바울의 기쁨이 결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소망 안에서, 영원한 나라를 바라봄으로써 솟아오르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영으로 언제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마음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괴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생명과 평안의 영의 의식이 아닌, 사망과 곤고의 혼의 의식으로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그것은 혼의 의식으로 떨어진 것을 알아차리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의 말씀의 공간, 영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고요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하면, 하늘의 사랑과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고 하늘 기쁨을 다시금 안겨줍니다. 날마다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마음을 맑히는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 사랑 안에서 늘 영의 의식을 붙들며, 그리스도인의 표징인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날마다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되고 지혜로운 우리들이면 좋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하늘 빛 나눕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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