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증인의 역할
나는 참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것은 강원도 어느 탄광촌에 유일하게 언덕위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어린이 하기학교 때라든가 겨울이면 성탄절의 여러 가지
즐거운 행사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나는 아래의 성탄절 동요가 너무 좋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추억이 되고 있다.
탄일 종이 땡 땡 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 종이 울린다.
탄일 종이 땡 땡 땡 은은하게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 종이 울린다.
나는 지금도 이 성탄노래를 부르면 겨울의 그 하얀 눈의 결정체들이
모두 아기자기하게 꿈 깨어나 더욱 아름답게 수놓을 것 같았고
나의 마음과 나의 살 세포들도 벌써 동화속의 나라에 살고 있다.
거시적 세계나 미시적 세계가 모두 한테 얼려서 삼천리 강산
방방곡곡에 성탄의 기쁜 메아리로 화답하며 전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성탄절은 인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니, 이천년 전에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했다.
그런데 위대하신 예수님은 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을까?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하나님의 본성으로) 오신 분이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시는 동등한 한 몸체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왜 “아버지는 나 보다 크신 분이다” 라고 차등을 두어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이 짐승이 사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성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이름조차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아주 척박한 땅에 오셨음을 의미한다. 즉 짐승 같은 세상에 오셨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아직은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셔야만 함을 의미했다.
이렇게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셔야만 함을 전제해서 오신 분이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인 아버지와 아직 동등함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떠나가시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말일에 반드시 다시 오시기로 굳게 약속하셨다.
다시 오시는 재림 때는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시지 않고 반드시 말씀을
명백히 밝히신 형이상학(이성, 논리, 로고스)으로 오셔서 그 진리의
새 말씀으로 알곡을 걷우실 터이므로, 재림 때야말로 지상천국을
이루시는 명실상부한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와 동등한
재림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의 이 기록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라고 했는데, 이는 남자아이를 주신바 되었다는 것이고 남자아이란
문자 그대로 남자아이를 말함이 아니다.
여기서 남자란 성령을 뜻하고
아이란 그 성령체가 아직 통치보좌에 앉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계시록 12장에서 해를 입은 여자가 낳은 남자아이가 되는데,
왜 아직 통치보좌에 앉지 못하는 남자아이가 되겠는가?
그 이유인즉 오늘의 진정한 재림주가 오셔서 통치하시기 직전에
가짜 사이비 적그리스도들이 자칭 재림주들로 먼저 출현해서
주의백성(기성교단)들 위에 군림하여 있게 되기 때문에, 아직 통치보좌에
않지 못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기록되기를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라고 했는데,
이 때야말로 적그리스도가 주의백성 위에 군림하여 통치하던 그 보좌가
재림주에게 돌아오게 됨을 뜻하기 때문에,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모사/전능하신 하나님/영존하시는 아버지/평강의 왕
등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이렇게 재림 때는 그분의 찬란한 업적과 최고 최대의 칭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너나 없이 위의 이사야
말씀을 모두 초림 예수님에게 잘못 적용하고 있다.
만일 초림 때의 예수님에게 위의 칭호들을 모두 붙일 수 있다면, 예수님은
천국을 이루지 하고 떠나가셨으므로, 우리에겐 아무 희망이 없고
닭 쫓던 개 먼산 쳐다보기 밖에 안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를
떠나가고 없으면 우리의 희망은 일장춘몽이 될 뿐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성립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초림 때가 있고 재림 때가 있는데, 이 같은 초,재림의
한 분 예수님을 일컬어 계시록에서는 명백히 “두 증인” 이라고 했다.
두 증인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로 한다.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1:7,8>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계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한 분 인격체이나 파종기 때의 초림과 추수 때의
재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 테 묶어서 “두 증인” 이라고 한다.
즉 초림 때도 두 증인이요, 재림 때도 두 증인이 되신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의 두 증인이 초림 때는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미래 재림 때 천국이 오리라는 예언만 땅 끝까지 전하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초림 예수님이 오신 이래 지금까지 우리인류 모두는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사망을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계11장 3절에서 뭐라고 했는가?
[내가 나의 두 증인(이때는 초림주)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라고 했다.
여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은 일곱 때중 “전 셋때 반” 을 뜻하는데, 이 때는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미래 재림때 천국이 오리라는 예언)만 한다고 했다.
굵은 베옷은 초상집에서 입는 옷이다. 따라서 초림 때의 예언하는
전 셋때 반 동안에는 아무도 영생을 받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이 된다.(예수님 오신 이후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 모두
천당에 간다고 믿고 있으나 그것은 뱀(바울)의 달콤한 거짓말일 뿐이다.)
그 다음 두 증인에 대한 7,8절의 기록은 어떤가?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라고 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은 간단히 말해 적그리스도(자칭 메시야들)를
뜻한다. 전 셋때 반 동안 땅 끝까지 천국복음의 예언을 마쳤다면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내가 재림 예수요! 내가 재림 그리스도다!”
라고 주장하는 자칭 메시야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와서 하나님의 기성교단
백성들을 사로잡아 초토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우리가 깨달아야 할 비유로
듣지 아니하고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교활한 뱀의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징벌로서 적그리스도의 시대를 초래한 것이다.
즉 오늘의 재림주가 앉아야 할 통치보좌를 적그리스도에게 먼저 내어주었기
때문에 두 증인(이때는 재림주) 이 그들로부터 죽임을 받았다고 한 것이다.
그 다음 11절의 기록은 어떤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라고 했다.
여기서 삼일 반은 “후 셋때 반” 을 뜻한다.
예수님(두증인, 이때는 초림주)은 전셋때 반을 땅 끝까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예언기간으로 하고, 후셋때 반은 적그리스도에게 내어주는 기간으로 하여
합 “일곱 때” 만에 마침내 예수님은 다시 재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두증인=이때는 재림주)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마침내 오늘의
재림주가 드러나게 오시면 누가 크게 두려워 하겠는가? 두 말할 나위없이
예수님의 오심을 반대하며 찌른 자들이 될것이다.
즉 내가 오늘의 재림주다 라고 했던 짝퉁이 재림주들과 그 추종자들이
크게 두려워할 것이며, 예수님은 가시적으로(눈에 보이는 사람육체로) 오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할 것이며, 예수님에 의한
집단구원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는
기성교단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결코 무신론자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반드시 믿는 자들이 된다.)
이렇게 예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한 분 인격체이지만 초림 때의 예수님의
역할이 다르고, 오늘날 재림 때의 예수님이 하시는 역할이 다르다.
그러나 재림 때는 확연히 다르다. 예수님이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하시므로써, 그리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시므로써
오늘날에 오시는 재림 예수님이야말로 영원히 그 국권이 흔들리지 않을
그리스도의 지상천국을 성취시키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계시록에서도 알려 주듯이, 초림 때는 예수님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만 하셨다. 그러나 재림 때는 확연히 다르다.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들어가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한다고 했던 것이다.
생기가 들어가서 일어선다는 것은 그분이 지상천국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무시했던 자들이 자신들이 받을 불이익, 즉 영생의
기회를 놓친데 대한 두려움으로 애곡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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