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의 등불 ☆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
The Lamp of the East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Tagore, Rabindranath: 1861-1941)가
1929년 일본을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당시 이태로(李太魯) 동아일보 토오쿄오 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즉석에서 넉 줄의 시「동방의 등불」을 써서 건네주었습니다.
영어로 쓴 시의 원문과 주요한(朱耀翰)선생의 번역이 곁들여져
그 해 4월 2일자《동아일보》1면에 실렸습니다.
타고르의 이 시는
예언자적인 비전과 무한한 격려와 사랑을 담고 있어,
우리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짧게 끝나 아쉬웠던지,
언제부터인가 이 뒤에
『기딴자리(Gitanjali)』의 제 35번째 시가
덧붙여져서 유포되었습니다.
이 시는 타고르가 영국에 항거하는
인도 사람들을 위하여 쓴 시인데,
아마 우리의 처지도 그와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끌어들여진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음에 두려움 없이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작은 칸으로 세계가
나누어지지 않은 곳
말씀이 진리의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곳
피곤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뻗는 곳
이상의 맑은 흐름이 무의미한 관습의 메마른 사막에
꺼져들지 않는 곳
님의 인도로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더욱 발전하는 곳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눈뜨게 하소서,
나의 님이시어.
Gitanjali 35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
Where knowledge is free ;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기딴자'는 타고르의 대표 시집으로
"신(神)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라는 뜻입니다

'동방의 등불' 이라는 시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는
1901년에 인도에 샨티니케탄이라는
시골에 학교를 세워
인도 근대교육에 체계화하는데 앞장섰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보다 앞서 근대식 교육을 해 왔다.
우리나라 80년대 선보인 대안학교는
이미 100년 전에 등장했다.
바로 대안학교를 만든 이는 타고르이다.
그가 교육에 앞장서게 된 것은
그 자신이 공교육에 제대로 적응 하지 못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년시절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14살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아이들을 무시하는 교사들의 태도와
거친 학생들 때문에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타고르는 17살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을 못해
단 한 개의 졸업장도 갖지 못했다.
학교 교육을 그만둔 타고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특히 타고르에게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건은
11살 때 4개월 동안 아버지와 함께한
히말라야 여행이었다.
타고르 부자가 처음 도착한 곳은
샨티니케탄으로 후에 타고르가
학교를 세운 곳으로
현재 비슈바바라티 대학교 등
세계적인 교육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가 첫 여행지로 샨티니케탄을 택한 것은
아들을 위한 미리 계획된 여정이었던 것이다.
타고르 부자는 한 달 후
히말라야에 도착해 3개월을 보냈다.
아버지는 여행의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소년에게 대자연의 신비와
경의로움을 호흡하게 하면서도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대자연을 체험하는 모험여행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여기에 맞춰 여행을 진행한 것이다.
타고르가 4개월간의 여행에서 돌아 왔을 때
이전의 타고르가 아니었다.
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