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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를 만나고, 나를 만나다

작성자권상호|작성시간26.06.11|조회수37 목록 댓글 0

박경리를 만나고, 나를 만나다

강북문인협회(회장 박정희) 문학기행으로 원주의 박경리문학관과 한지테마파크를 찾았다.

강북문인협회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좋은, 문학도 뛰어난 단체로 주변에서도 몰려드는 흡인력이 있는 단체다.

박경리 작가는 살아계실 때인 2007년, 강남 포도프라자에서 당시 변양균 장관을 비롯한 학자, 문인, 화가, 음악가, 경제인 등의 '통영사람들' 만남 자리에서 라이브서예도 할 겸 직접 뵈온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박 작가는 '통영에서는 일제라 하지 않고 왜정이라 한다는 것, 치료라는 이름으로 내 몸을 더 괴롭히지 않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실내였지만 휠체어에 앉으시고도 꺼뜨리지 않고 피우던 담뱃불 이미지가 떠오른다.

2008년에 작고하신 이후 2017년, 2019년에도 긴 시간을 내어 미국에서 온 박지호 작가와 함께 원주 박경리 문학의 집, 토지문화재단, 그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경남 하동 악양면의 드라마 '최참판댁' 촬영지, 통영 서피랑 마을 생가터, 케이블카 타고 미륵산 오르기, 박경리 선생 묘소 참배 등을 한 바 있다.

나는 국립공원 원주 치악산 동사면에 수만 평의 분에 넘치는 산을 가지고 있다.

일년에 한 번 정도 들를 뿐, 그냥 내버려두고 생각만 이을 뿐이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박경리보다 6백여 년전인 여말선초 치악산 골짜기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던 운곡(耘谷) 원천석의 넋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운곡이라는 호가 그렇듯, 산골짜기에서 호미를 들고 살았던 두 문인의 삶은 빼곡이 닮아 있다. 운곡의 몰년은 알 수 없지만 1,146편의 시집 <운곡시사>와 시조 2편(눈맞아 휘어진 대를~, 흥망이 유수(有數)하니~)이 전해진다. 멸족을 염려해 태워버린 <야사(野史)> 6권은 못내 아쉽다.

원주는 예로부터 평원군(平原郡), 북원(北原)이라 불렸다. 넓은 벌판과 완만한 언덕이 어우러진 땅이다. 대하소설 《토지》를 완성한 작가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공간이 있었을까.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가슴에 와닿은 말은 이것이었다.

"모든 생명은 다 아름답고 존엄한 것이다."

박경리 문학의 뿌리는 결국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선생은 말했다.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되어 있다."

그리고 또 말했다.

"외로워야 자유롭다."

"사랑보다 연민."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평생의 사유가 담겨 있다.

자식 목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와 논으로 물 들어가는 소리를 같은 감동으로 들을 수 있는 사람, 날파리 한 마리에서도 하나의 우주를 발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박경리였다.

그에게 땅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었다.

땅은 곧 원고지였다.

종이 토지엔 붓으로 파고, 토지 종이엔 호미로 썼다.

씨앗을 심어 생명을 길러내듯, 원고지 위에 인간의 삶을 심고 가꾸어 《토지》라는 거대한 숲을 이루어냈다.

박경리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열여섯에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고, 스물네 살에 남편을 잃었다. 여덟 살 아들의 의료사고로 인한 죽음은 작가의 영혼을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 비극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불신시대」였다.

한동안 세상과 등을 지고 두문불출했으나, 마침내 다시 붓을 들었다.

1969년 시작한 《토지》는 14년에 걸쳐 집필되었고, 구상부터 완간까지는 무려 2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생존 이상의 진실은 없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명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낸 체험의 기록이었다.

문학관을 거닐며 나 또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구름과 벗한 지 일흔 해가 넘었다.

졸고 있는 바람을 부채로 낚아채고, 고만고만한 고독을 썰어 생각으로 양념하며 시와 글씨와 그림을 지어왔다.

닳을 대로 닳은 심장이 아직까지도 제 박자를 잃지 않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욕심과 집착과 조급함이 빠져나간 자리에 비로소 세상이 본래의 크기로 보인다.

상처 입고 닳은 삶이지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배운다.

박경리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참으로 큰 깨달음이다.

가져갈 것이 아니라 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는 경지.

문학도, 예술도, 인생도 결국 그 자리로 가는 길인지 모른다.

한지테마파크에서는 즉흥 부채 휘호 퍼포먼스를 펼쳤다.

"맑은 바람 일으켜 세상 시름 씻어내리."

"푸른 청산의 바람을 이 부채에 담아갑니다."

"바람 소리 아늑히 구름 가듯 가리라."

"부채 끝에 피어난 하얀 구름 한 조각."

"한 줄기 청량한 바람으로 그대에게 가리."

문인들은 웃고, 퀴즈를 풀고, 부채를 받아 들었다.

한지 위에 스민 먹빛과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작은 풍류 한마당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의 풍광.

산은 벗이 되고 물은 술이 된다.

흰 구름과 푸른 산을 벗 삼아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문학은 삶의 장식이 아니다.

문학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마침 버스에 내리자마자 저녁식사와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주에서 만난 박경리는 결국 한 사람의 대문호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을 끝까지 붙들고 살았던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거울이 되었다.


 

白雲伴我七旬餘

午睡微風扇上舒

土地文香猶在野

一天淸氣入吾廬

흰 구름 벗한 세월 칠십여 년,

졸고 있던 바람을 부채에 담았네.

토지의 문향은 아직 들녘에 남아 있고,

하늘 가득 맑은 기운 내 집으로 들어오네.

 

박경리 문학의집 ㅡ 부채 라이브 서예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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