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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여래부처님

다보부처님, 다보불탑

작성자의원네|작성시간17.01.08|조회수618 목록 댓글 0

2009. 4. 3. 금(음3.8) 큰스님 법문 중


 다보부처님, 다보불탑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많이 들어야 됩니다. 다보불탑을 보탑이라고도 하고 칠보탑이라고도 합니다. 다보부처님이 항상 선정에 계시는 탑

입니다. 어디냐 하면 저기 동방으로 동방으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보정이라고 하는 정토세계가 있습니다. 다보부처님은 그 세계의 교주입니다. 그런데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법화경》을 설하실 적에 다보불탑이(다보부처님이) 땅속에서 땅을 찢고 솟아 나온 거요.


《법화경》에는 이 다보불탑이 어느 정도로 장대(웅

               [현지사 다보불탑]                           대)하게 기록 되어 있는냐 하면, 높이가 500유순(이만리)이요, 종횡(가로 세로)이 각각 250유순(일만리)이고, 난간이 오천개이며, 감실(龕室,방)이 천만이라고 되어 있어요. 일 유순을 10리(4㎞)로 보면 맞아요. 희유한 보탑이지요. 그 다보불탑이 땅을 찢고 솟아오를 경우 전단의 향이 세계에 충만하다고 그래. 전단 향은 향중에서 제일 향기로운 향입니다.


그럴 때에는 천인·성중·보살이 다투어 와서 칠보로, 꽃으로, 향으로 진짜 공양을 하고, 존중하고 찬탄을 합니다. 다보불탑이 그런 탑입니다. 이 탑을 우리가 꼭 현지사에 건립해야 되겠다는 것을 10년 전에 서원을 했습니다. 우리 광명 만덕님이 불과를 증할 그때에 다보부처님께서 땅을 찢고 올라왔습니다. 서울에서 수행을 할 때입니다. 항상 거기에 계셨어요. 그 다보부처님께서“꼭 이 다보탑을 건립해다오”하는 부촉이 있었습니다. 다보불탑을 조성해서 점안을 안 하면 안 되거든요.

조성해서 점안을 해서 모셔야 되겠는데 했는데, 이제 때가 이르러서 열흘쯤 되면 건립이 다 되고, 한 달쯤이면 점안을 해서 다보불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다보불, 타보불탑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법화경》에서 선보입니다.《법화경》에 대해서는 좀 이야기 했지요. 그 많은 경전을 다 설하시고 맨 나중에 설하신 경전인데 경중에 가장 왕이 되는 경이《묘법연화경(법화경)》입니다. 이《법화경》에 다보불탑 소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교학이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일본 교학 승들이 이 다보불탑을 모릅니다. 안보이니까 모릅니다. 이 다보불, 다보불탑은 불(佛)의 경지입니다. 불의 경지에 가지 않으면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실체로 된 빛으로 이루어졌거든요. 그러니까 안 보여. 그래서《법화경》해석을 참 묘하게 합니다. 말이 안 되니까 던져버리지요. 이 다보불탑을 상징으로, 하나의 방편으로, 환상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을 여러분들이 보면 안 됩니다. 여러분을 오도합니다. 여러분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우리 스님들에게 함부로 책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다보불탑은 그렇습니다.

그다음 탑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탑이라는 것은 인도어인 범어(梵語,sanskrit)로 스투파(stupa)라고 합니다. 탑파(塔婆)로 음역을 하지요. 탑묘라는 뜻입니다. 탑묘라는 것은 뭐냐? 묘, 거기에다가 부처님을 모신다는 말이에요. 모시는 집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열반에 드셨는데 부처님을 어떻게 모십니까?

그래서 너무나 위대하고, 너무나 희유하신 우리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모셔야 되겠는데, 어떻게 모시느냐? 열반에 드실 때 스스로 화광삼매에 드셔서 당신의 몸을 다비했어. 그래서 쏟아진 사리가 무척 많았습니다. 부처님 사리가 무척 많이 나왔어요. 그것을 여덟 등분 해가지고 이웃나라 사람들이 다 가져가 모신 거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200여년 만에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아유까)왕이 나왔지요. 그 왕은 불교(부처님 말씀)를 정치 이념으로 해서 시정하고, 전국에 많은 탑을 건립했습니다. 팔만사천 탑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그 많은 탑을 세우다가 보니까 탑 속에다가 부처님을 상징하는 사리를 넣는 다든지 뭘 넣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지요.

탑에는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나중에 탑을 많이 만들다가 보니까 봉안할 부처님 사리가 없어.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한평생 중생들을 상대로 해서 설한 법문(경전)이 있잖아요. 이 경을 법신사리로 봅니다. 이것을 하나의 법신 사리로 보자. 이제 법신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나중에 해석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법신 사리를 모시자. 그래서 모든 경이 다 법신 사리여. 그렇지마는 부처님 뜻에 가장 맞는, 부처님의 말씀이 많이 담겨졌다고 하는 그런 경전을 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경전이 쏟아져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의 법신게(法身偈), 네 줄로 된 법신게가 있습니다. 연기법을 극명하게, 간단히 시적(詩的)으로 해석한 연기게(緣起偈)·법신게가 있어요. 그것만 붓으로 딱 써가지고 법신게를 넣은 거요. 법신게(연기게)를 여러분에게 소개를 할게요.

  제법종연기 여래설시인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시법인연진 시대사문설 是法因緣盡 是大沙門說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 그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 우리 큰스님께서는 항상 인연법을 설하신다.)

이것은 다섯 비구 가운데 마슬비구라는 비구가 이것을 가지고 어느 수행자한테 이야기 하니까 그 수행자가 손뼉을 치고 그날로 귀의해서 스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분이 사리불 존자입니다. 이것을 연기게라고 합니다. 연기법을 게송으로 노래한 송(頌)이다 해가지고 연기게 혹은 법신게라고 합니다. 이것을 써서 탑 속에 많이 넣었단 말이어요.

중국에는 탑을 벽돌로 많이 쌓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석조(돌)가 많습니다. 일본을 가면 목조가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탑을 쌓다가 보니까 고안을 해서 처음에는 아주 묘한 탑을 쌓았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탑이 나왔어요. 스님들이 먹는 밥그릇인 ‵바루′알지요. 반찬을 담지 않는 밥그릇 말입니다.

바루를 덮어 놓은 것처럼 생긴 복발탑을 위시해서, 기러기형 안탑(雁塔), 집같이 지은 옥탑(屋塔), 기둥같이 만든 주탑(柱塔), 감실형의 감탑(龕塔, 감실이라는 것은 불보살의 거룩한 얼을 모셔 놓은 곳임), 무봉탑, 오륜탑...등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많이 발전되어 옵니다. 이러한 탑들은 모두 부처님 탑이고, 그 외에 다른 부처님·다른 부처님 탑은 없지요. 다른 부처님은 소개도 안 되었고 나중에 1000년 후 대승불교가 내려오면서 다불설(多佛說, 이 우주 안에는 많은 부처님들이 계신다는 설)이 나와서 이제 약사여래부처님도 나오고, 아미타부처님도 나오고... 이름이 이렇게 나오지요. 그러나 그 부처님의 탑은 없습니다.

없는데, 유독《법화경》이 만들어진지가 부처님 열반하신지 500년 안팎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만들어 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700~800년 후에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제  북방 불교권으로 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당시 불국사에다가 다보탑과 석가탑을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로 불국사 다보탑 정도의 크기로 다보탑을 만들어 놓은 데도 있고, 또 절반 정도의 크기로 해서 만들어 놓은 곳이 서너 군데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불과를 증하지 아니한, 그리해서 불과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돌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다보불탑은 반드시 불과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해야 만이 점안이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 대적광전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그리고 다보불탑은 전부 불과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해가지고 모든 부처님이 그것을 인증해요. 약속을 하고요. 이렇게 점안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 대적광전 점안 때 그 점안 광경을 아마 인터넷에 소개를 했을 거요. 그래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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