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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

현대 한국 관세음보살기도 영험록 160선 (1~10)

작성자의원네|작성시간17.02.20|조회수289 목록 댓글 0

1.

관음 백일기도로 눈 뜬 중년신사 (법철스님글 전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향가 가운데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를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千手), 천안(千眼)의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향가를 통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 슬픔속에 관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만산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화창한 봄 날.

필자(법철스님)가 주지로 있던 산새소리 가득한 전남 강진 무위사(無爲寺)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필자는 그때 무위사 큰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고목나무 밑에 놓여 있는 깨어진 멧돌 위에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필자에게 정중히 합장 인사를 하고는 어눌한 음성으로 무위사에 관세음보살님의 국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며 관음기도를 지성껏 모셔보고 싶노라고 허락을 구해왔다.

그는 슬픈 얼굴로서 후리후리한 키에 회색 양복을 입었고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나 필자는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속사정을 알았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경북 포항 사람으로 그동안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며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두 눈이 어두워 오더니 마침내 눈 뜬 장님이 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아,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다니….”
그는 나날이 잃어가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을 치며 유명하다는 병원의사는 성지순례하듯 찾았다.

병원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마지막으로 신불(神佛)께 기도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무위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정수(吳定洙). 필자는 오정수씨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무위사에서 기도할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오정수는 각오의 뜻으로 삭도로 머리칼을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락보전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수월백의관음벽화 앞에서 촛불과 향화를 받들면서 백일을 기한하고 천념 염주를 헤아리며 지성으로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정수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무위사의 적막한 도량을 넘쳐 흘렀다.

죽기를 한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던 오정수는 백일기도가 끝나가는 즈음에 놀랍게도 두 눈이 밝아졌다고 부르짖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합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오정수는 다시 트렁크를 들고 필자 앞에 섰다. 눈이 웬만하니 걱정하며 고대하는 처자에게 달려가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장의 책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작별하는 즈음에 오정수는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그동안 산사에서 체류하게 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족한 돈이지만 시주금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하며 필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필자는 빙긋 웃고 다시 그 돈을 돌려주며 기도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치하만 했을 뿐이었다.

“우리 인연 있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필자는 멀어져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오정수씨의 흔드는 손을 답례하여 마주 손을 흔들면서 내내 앞서의 신라의 향가를 생각하였다.

―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천안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무위사 수월백의관음보살님이 고해중생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고해대중이여, 우주에 의지할 성인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권장하오니, 우리 모두 때가 되면 이승의 인연들을 작별하면서 한과 눈물속에 홀로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갈 때 까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인생을 살아갑시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세연이 다해 육신의 탈을 벗고 어둠속에 홀로 울며 머나먼 윤회의 길을 떠나려 할 때 반드시 광명으로 나투며 현신하여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www.bubchul.net 전재

 

 

2. 김 갑숙님 관음신앙 수기 모음

(1)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꿈에 흰옷 입은 할머니가 나타나
옆구리서 뱀한마리를 떼어낸 후
두통과 위장병이 깨끗이 나았다

나는 전생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지중했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갔었다.
그 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이었다.

친구들이 교회에가면 맛있는 것과 선물을 많이 준다는
소리에 솔깃해서 따라 갔던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온 몸이 으스스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아멘’ 소리도 듣기 싫었다. 더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선물의 유혹도 뿌리치고 서둘러 교회를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부터 어떤 일이있어도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남 송광사로 수학여행을 갔다.

송광사 법당에 계신 부처님을 보고 어린 마음에도 어찌나
환희심이 나던지 넋을 잃고 부처님의 상호를 쳐다봤다.
또 향내음이 왜 그리도 좋던지, 전생에 불연이 있었기에
이러한가 혼자 생각해 보곤 한다.

16년전 나는 남편과 중매로 만나 결혼을 했다. 하고 보니
시댁은 기독교 집안이었고 남편은 장남이었다.

내가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니 부처님께 귀의하기란
쉽지않았다. 하지만 기독교집안이라 해서 싫은 내색 보이지
않고 묵묵히 생활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교회로 전도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마음이 상하시지않게 "네"란 대답만 드릴뿐 가게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 몰래
불경을 공부했다.

경전의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열심히 독경하고,
불교서적도 많이 탐독했다. 중요한 내용에는 밑줄까지 쳐가며
공부를 하다보니 <반야심경>등 법회 때 제일 많이 독송되는 경들이
줄줄 외워졌다.

결혼한지 3년 후인 13년 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일년 후 1주기 제사를 시어머니 뜻대로 기독교식인 추도식
으로 모신후 큰 사고가 일어났다.

누가 보아도 차사고가 날 장소가 아닌 가게 앞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밤에 잠을 자려다말고 남편이 가게 앞에 세워놓은 차에 탔는데
큰 사고가 났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나가는 남편을 극구 말릴
것을 하고 후회를 하게 되었다.

왜 자려다 말고 나갔느냐고 묻는 나에게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뭔가
끌리는 듯하고 자꾸 마음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나로서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가 막힌 큰 사고였다.
그 후 우리부부는 사고 수습을 하느라 며칠은 가게 일도 볼 수
없을 정도로정신이 없었다.

나는 시아버지께서 제사를 유교식으로 모셔줄 것을 원하시어
장남인 우리 부부를 깨우쳐 주시려고 잠자려던 남편을 이끌고
나가 큰 사고를 내게 하시지 않았나 하는 얼토당토한 의심이
자꾸만들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뜻을 어길수가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해 또다시 우리 집안엔 시련이 닥쳐왔다. 그 때도 시어머니의
뜻대로 시아버지 제사를 추도식으로 모신후 였다.

당시 6살이던 아들이 가게 앞에서 놀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치어 어깨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한 달이나 입원을 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시아버지 제사를
추도식으로 지낸 다음 계속적으로 일어났기에 마음이 찜찜했지만
차마 시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시누이가 어머니께 말씀드릴테니 올케가
기독교식이 아닌 전통식으로 정성스럽게 제사를 모시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 남편과 상의를 하여 전통식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 후 법현스님이 쓰신 불교식으로 제사모시는
법에 대한 글을 읽고 지금은 불교식으로 모시고 있다.

그후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큰 사고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마 기독교 집안 맏며느리이지만 불교와의 인연이 있는
나를 일깨워주려고 그러한 어려움이 있지않았나 생각해본다.

그 후부터 나는 더욱 더 발심을 해 불교공부에 본격 매진했다.
절에 가야 부처님을 만나뵐 수 있고 절에 가야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처처마다 아니 계신 곳 없으신 부처님께 나는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문을 읽고 관음정근, 발원문 순으로 하루도
빠지지않고 기도정진을 하였다.

무엇을 하든지 항상 불보살님을 관하고 나는 부처님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런데 나는 몸이 너무나 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같은 통증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며칠을 생활해야
했다. 내가 몸져 눕자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업친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위장병까지 생겨 소화가 되지 않아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도 병명은 나오지 않고
신경성이라고만 할뿐이었다.

나는 불보살님께 의지하고픈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나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의지했다.

어느날 관세음보살님을 일심으로 간절히 부르다
잠이들었다.

꿈에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 한분이 내 옆구리에서 뱀 한마리를
떼어내 어느 바위에 던지니 그 뱀이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
지지 않는 꿈을 꾸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며칠을 두통과 위장병에 시달리던 나는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다.

불보살님이 나에게 감응해주신 것인가! 나는 은혜에 보답드리고자
더욱더 발심을 내어 기도정진하게 되었다.

나는 더 큰 발심을하고 가족들 몰래 가까운 절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하루종일 가게 보느라 피곤했지만 새벽기도에 동참하여 부처님을
만난다는 환희로움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다니며 날마다 108배를 했다.

그렇게 기도정진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밤마다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며칠 동안이나 보였다.

아버지께서 천도를 원하심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가족들 몰래
절에다 아버지 영가위패를 모시고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영가를
위해 기도를 했다.

집에서는 49일 동안 <지장경> 1품에서 13품까지 독송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츰부다라니는 21번, 광명진언은 108번, 지장정근은
1080번을 염송했다.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기도도 했다. 나는 49일 기도 회향 후
깨끗한 모래를 구해서 일곱 번 씻어말려서 하루에 광명진언 108번씩
염송하기를 21일 동안 했다.

그리고는 남편과 애들을 데리고 시골에 모셔진 아버지 산소에
가서 뿌려드렸다.

그날 밤 또 꿈을 꾸었다. 어느 할머니 한 분과 아버지, 두분이서
집으로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방에 계시고 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면서 밖으로 나가시는데
하늘에서 밝은 광채가 나는 꿈을 꾸었다.

그 후로 그렇게 꿈에 보이시던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지를 않으셨다.
천도가 된 것으로 생각해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어느날 밤 꿈에 하얀 옷을 입으신 할머니께서 나를 어느
깊은 산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잔디 위에는 집 한채가 있었는데 그 집에서 남편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꿈을 꾸고 난 후 기독교
집안의 장남이었던 남편이 내가 정식으로 절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
하는 행운이 있게 됐다.

모든 원인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일체유심조 교훈을 생활화하고 있다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이 불보살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피와 보살님의 가호하심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기독교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마음에도 없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독교 집안의 장남이지만 불보살님의 가피로 마음의 문이
열려 부처님께 귀의하게 해준 남편의 배려가 너무나 고맙다.

덕분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일요법회에 참석하여 덕 높으신
스님의 법문을 듣고 열심히 배우고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교의 진리는 이론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잊지않고 명심하여 부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발심하고 있다.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내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해결이 될 때까지
신경쓰고 고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결국 내 몸을 망치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신경쓰고 걱정하기
보다는 불보살님께 의지하여 기도정진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불보살님을 믿으며 의지하고 정진하다 보니 모든 일이 스스로 잘되어감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 치아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니면 턱에 이상이 있었는지 잇몸의
통증으로 입을 벌리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
으로 참는 나에게 남편이 내일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검사를 받아 결과가 나쁘다면 최악의 경우 수술까지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저는 관세음보살님만 믿겠습니다. 제가 의지할 곳은
관세음보살님뿐입니다”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하며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쉼없이
외쳤다. 한 호흡에 몇번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념으로
부르다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하얀 옷을 입으신 할머니께서 하얀 천을 내 턱밑에
깔아주셨다. 그 하얀천에는 탑이 그려져 있었고 그 탑 속엔 빨간
글씨가 빽빽히 적혀 있었다.

할머니는 이것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나를 안심시키고는 천을
정성스럽게 깔아주셨다. 이 꿈을 꾸고 난 다음날 나는 또 거짓말같은
기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통증으로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아팠던 내 입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병원에 가라던 남편은 내가 꾀병을 했다고 할 정도로 믿지를 않았다.
나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감사드리고 더욱 발심하여 기도정진하게 되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불보살님께서 주신 은혜에 보답드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아침 저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한다. 작은 보시함을 만들어
기도할 때마다 적은 돈이나마 꼬박꼬박 보시함에 담았다.

한달동안 모은 적은 돈이지만 매월 말일에 그 돈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교방송 후원금으로 회향하고 있다. 불보살님께 입은 은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받은 은혜에 보답드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내가 받은 가피를 또 한가지 더 적어보고자 한다.

내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다. 그렇게 착하고 부모 말씀이라면 순종하던
아이였다. 그러던 그 아이가 지난 여름 방학 때부터 밖으로만 나가려고
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끝내는 엄마인 내가 제일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춘기때의 반항이려니 하면서도 변해 가는 아들을 타일러도
보고 꾸중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매도 들어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아들과 마주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흐리멍텅하게 정신이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섬뜩했다. 내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를 보는 듯 낯설었다.
그렇다고 마약같은 것을 복용한 것도 아닐텐데 눈에 초점없음이
이상했다.

나는 놀라서 추궁하던 말을 멈추고 내 방에 들어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무엇을 의미하는 눈물인지도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려내렸다.

그리고 내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은 업장으로 자식을 통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참회의 기도를 열심히 일심으로 했다.
나는 100일을 정해서 아침에 예불문 천수경 관세음보살보문품
관음정근 발원 반야심경 순으로 기도가 끝나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108번씩 하는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시작한지 60일 정도 되는 어느 날 아들이 나에게 말을 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이 되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나는 내 업이 많아서 아들이 이렇게 되었구나 생각하고 부처님께
내가 지은 업으로 내 자식들이 불행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
하고 발원하고 열심히 기도정진하고 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아들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여름불교학교에
보내고 부처님께 다가가게 했다. 엄마의 소망을 마다하지 않고 불교
학교에도 잘 다니던 아들이 순간 나쁜 길로 빠지려함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을 원망하고 탓하기 보다는 모든게 다 내가 지은 업을 아들을
통해서 받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참회의 기도를 했다. 짧은 날이었지만 나에게 참회의
기도를 하게끔 깨우쳐준 아들은 지금은 학업에 열중하며 착하게
생활하고 있다. 모든게 불보살님의 가피라 생각한다.

이후에도 나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피를 체험했다.

그 체험을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아만심을 버리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게 주어진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전생에 나의 숙제라는
생각을 하며 기도로써 극복하며 생활하고 있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밖에서만 찾으려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해결하려 했던 나는 불법을 만나고부터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불보살님을 의지하여 믿으며 어떠한 어려움도 기도로써 이겨내고자
한다.

마음 한 번 바꾸면 삼라만상이 부처님의 향기로 가득한 것을 모르고 항상
너와 나를 분별하여 무명 속에서 생활하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을 새기며 마음 한 번 바꾸니
고통의 괴로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도 전생에 내가 지어놓은 업을 받게 되는구나
생각하고 인욕으로써 참고 견디며 내가 지어놓은 업이 이 고통으로
인해서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중생의 어버이이신 불보살님이 주신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한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다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도 열심히
정진할 것을 약속한다.

김갑숙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현대불교신문(www.buddhapia.co.kr) 전재


(2)
꿈에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받다

글· 김갑숙

제가 佛光불광과 인연이 된 지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불광」을 구독해왔으니
불광이 저를 부처님 품안으로 이끈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연히 군법당에서 불광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니 우연이라기
보다 마음이 스산하여 문득 법당에 새벽기도를 갔다가 불광을
보고 열심히 구독해왔습니다.

저는 불광을 읽으면서 점차 불자가 되어갔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입문한 지는 3년쯤 되었습니다.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불교에
귀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절에만 가야 부처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생활 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며
집에서 열심히 경전을 읽고, 염불하며 기도정진하고자 100일, 21일
기간을 정해놓고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야심경, 천수경 등… 몇 가지의 경전을 달달 외우게
되었습니다. 뜻은 잘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예불부터 시작하여
아침을 지으면서도 외우고 무엇을 하든지 머리 속에는 나는 불자다라
는 단어를 생각하고 입으로는 경전을 달달 외웠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금강경 사경하고 하루종일 기도가 끝나면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며 불교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몇 년 부처님의
가피가 계셨음인지 기독교 집안의 장남인 남편이 절에 나가라고 허락
하였습니다.

남편은 지금은 저보다 더 적극적인 불자가 되었으니 그 또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얼마 전 원인 모르게 몹시도 아팠습니다. 머리가 쏟아지는 통증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위장병까지 나서
음식만 먹었다 하면 소화를 못 시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였지만 신경성이라고만
하지 뚜렷한 병명이 없었습니다.

약으로만 의지하던 저는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어떠한 어려움도 다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으론 관세음보살님을 관하고 입으로는 쉬임없이 불렀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라구요.

그렇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의 옆구리에서 뱀 한 마리를 떼어내려
하는데 그 뱀이 극구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께서 힘껏 잡아당겨 떨어지는 뱀을 어느 바위에 던지니
그 바위에 그 뱀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고 난 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며칠 동안이나 저를 괴롭게 만들던 통증이 언제 아팠느냐는
듯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전 관세음보살님의 몽중가피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픔이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꿈에 관세음보살님만
나타나시면 어려움이나 아픔이 사라졌습니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전 지금도 관음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와 관세음보살님의 가호하심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제가 불자로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요?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제 잘못은 없고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 듯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는데 불법을 만나고부터는 상대방의 잘못보다 나의 업을 생각하게
되었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왜 이럴까 하는 마음보다 제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어머님께서도 교회에 나가시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제가
불자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몇 년 전에 제 손을 잡으시면서 우리 집안을 맏며느리인
저에게 다 맡겨도 되겠다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되어주십니다.

일상생활 처처마다 만나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보답코자
불자로서 하루하루 보람있게 항상 불보살님을 잊지 않고 생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기도정진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출처: 월간 불광 1999년 5월호



(3)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대화가 없었다면…

글·반야행 김갑숙

상대방의 생각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대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 가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섬짓해 집니다. 상대방의 생각보다는 내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자존심이란 씨앗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작은 오해로 며칠을 고민하게 되었던 것임을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에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가게를 하면서 생활하는데 지금의 가게에서 8년이나 주인댁과 아무 일 없이 살게 되었고 저희 부부는 열심히 생활한 덕에 아파트를 사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한 지 2년이 되었지만 내 집 장만하고 생활하는 마음의 풍요로움에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저희 부부는 30분 거리의 집과 가게를 왔다갔다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작은 오해로 하마터면 가게를 옮기게 될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요즈음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저와 아무런 상의 한마디 없이 남편이 일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주인 아저씨와 가게 임대료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임대료를 내려줄 수 없으면 가게를 빼달라고 대책없이 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저와 남편간에 충분한 상의 뒤에 남편이 결정한 것으로 알고 가게를 빼려고 복덕방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놀라서 온몸에 힘이 빠지며 잠을 자지도 못하고 밥을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아무런 의욕이 없었습니다.

무엇에 그리도 집착을 하여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의욕 없이 맥이 탁 풀어져서 정신없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 저는 절대 가게를 옮길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남편한테 다시 한번 주인아저씨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다음 결정지으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였지만 남편의 마음은 자존심 때문인지 단호했습니다.

순간 저는 '부처님 제가 무슨 지은 업이 많아서 갑자기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제가 지은 업이라면 어떠한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참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렸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를 외면하시지 않으신다면 저좀 도와주세요.

저는 혼자서 간절히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리다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길이 있으리란 믿음으로 제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기도하라 하시며 도움을 주시는 스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스님은 "걱정하지 말고 한 사람이 뒤로 한발 물러서서 다시 한번 잘 얘기해보고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남편과 주인아저씨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세음보살님께 일심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변하지 않는 주인 아저씨와 남편의 팽팽한 자존심의 신경전을 내가 대화로써 풀어보자.' 하고 주인아저씨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저씨의 속마음은 먼저 대화해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씀은 제 걱정과 달리 제 생각도 남편생각과 같은 줄 알고 가게를 빼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여기서 가게를 하고 싶습니다." 하였더니 아저씨의 대답은 제 걱정과는 달리 내 보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 대화로써 상대의 작은 오해가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팽팽하던 남편의 마음도 순순히 풀어지며 그냥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혹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망설이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이 납니다. 혹시 주인 아저씨가 먼저 제가 살게 해달라고 해주길 원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생각도 해 봅니다.

저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없었고 제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가 없었다면 저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게 얻는다고 노심초사했겠지요.

이번 일로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보다는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불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해 봅니다.

관세음보살님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월간불광 99년 12월호

 

 

3.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

대구시 동구 덕곡동 대덕화보살님의 수기

저는 오래전부터 대장염을 앓아왔습니다.
빈혈이 심해 병원에 갔다가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도 몇 년간 꾸준히 다녔지만
증세는 좋아졌다간 다시 나빠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간 치료하면 낫는다고 하는데
저는 완치가 되지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식이요법은 물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빈혈로 밖을 다니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모든 약을 중단하고 음식물로써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몸이 그 음식을 받아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유산을 권했습니다.
산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가끔씩 나가던 영남불교대학에서
'좋은인연 신문'을 가지고 왔더군요.
집에서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워 뭐든지
읽을거리를 가져다 주곤 했습니다.
그 신문을 보다가 신행수기를 써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로써 가피를 입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도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졸라 절을 찾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습니다.
또 지금 낳지 않으면 언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몸이 더 건강해지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이상하게도 영남불교대학·관음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노천법당에 서 계시는 관세음보살남을 뵙는 순간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그
러나 남편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법당을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인지 곧 어지럼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제 안색을 살핀 남편이 저를 얼른 노천법당에 앉혔습니다.

그러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몸에서 힘이 좍 빠져나가고
저는 그만 남편에게 기댄 채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남편이 제 몸을 주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봐도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언뜻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 옆에 서계신 관세음보살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관세음보살님!
아기를 낳고 싶어요.살려주세요'

관세음보살님이 곁으로 다가오시더니 제 이마를 짚어보시고는
손에 든 감로수병을 천천히 기울였습니다.
갑자기 온몸에 향기로운 감로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저는 감로수에 머리까지 다 잠겨버렸습니다.
감로수는 햇살을 받아 사방으로 무지개 빛을 뿌렸습니다.
잠시 후 관세음보살님이 다가오시더니
다시 이마에 손을 짚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많은 감로수를 저 혼자 다 써버려서 어떡합니까!"

관세음보살님은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로수는 곧 저의 마음이니 한량없습니다.
이 온 우주,온 법계를 적시고도 수억겁 동안 흐릅니다."

저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그 감로수의 물결 속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절을 하면서도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날아갈듯 했습니다.

"여보!"

남편의 절박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회주스님께서 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계셨습니다.

"보살님,괜찮으십니까? 구급차를 불러두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릎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괜찮습니다.스님."

"여보?"

남편이 울먹이며 저를 불렀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마시고 완전히 몸을 담그기까지 했어요!"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괜찮은지 의심스러워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았습니다.
정말 멀쩡했습니다.어지럽거나 구토 증세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나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서야 남편은 제가 하는 말을 믿었습니다.

대장염은 물론이고 빈혈과 그 외
합병증도 증세가 완화되어 있었습니다.
생활하는데 조금의 불편도 없었고 약을 먹지 않고도
빈혈이 차츰차츰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2주 쯤 뒤에는 현기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이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후,저는 가끔 회주이신 우학스님의 꿈을 꿉니다.
한번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출연료를 받아야겠구만'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우학스님의 은덕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출처: 인드라망 카페 (cafe.daum.net/indelamang)

 

 

4.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로 일웅스님의 병이 치료되다.

대구 법흥사 주지로 일웅스님이 계십니다.
지금도 주지스님으로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스님께서 직접 겪으신 체험담입니다.

"기복으로 기도를 한 경우에도 기도에 몰입하여 마음이 비워지고
순수해졌을 때 영험이 나타나는 것이지,
마음속에 뭔가를 바라는 욕심이나 조급함이 가득차 있을 때는
영험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서는 기도의 영험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스스로 병을 치유한 나(일웅스님)의 체험담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60세가 가까워지자 기력이 예전같지가 않았습니다.
40대시절 포교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태고·조계종간의 분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기력을 소진했던 탓인지
피로가 누적되고 쉽게 회복되지가 않았습니다.
몸은 곧 마음을 반영합니다.
몸이라는 글자의 한획만 바꾸면 맘이 되는데 이는 곧 마음의 준말입니다.
예로부터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 몸이라도 함부로 굴리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지요.
종단사태 이후 십수년을 쉴 사이없이 신경을 과도하게 쓰다보니
병이 올 수 밖에요.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먹어도 차도가 없자
큰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간경화말기증세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승려로 살다가 죽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지막으로 부처님전에 기도나 열심히 하다가 임종을 맞이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관세음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는데
여러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밤, 도저히 오늘밤을 넘길수 없겠다 싶어요.
“과거 수억겁을 지나오면서 아프지 않은 때가 있었겠는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것은 오직 마음의 상(相)일 뿐이다’고 한 생각을 돌이켜
몸을 간신히 추스리고는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일체가 다 내자신이 지은 업장때문임을
참회하고 성불의 인연짓기를 발원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도중에 하얀 소복을 입은 부인이 찾아왔는데
안면은 있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요사채로 인도하니
“요즈음 스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어떻습니까?”고 안부를 물어요.”
“아직 많이 아픕니다”고 하니

부인이
“제가 아픈 곳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해 아픈 곳을 보여주었더니

부인은 손으로 환부를 만지며 약봉지를 꺼내고는 먹기를 권해요.
꼭꼭 씹어서 먹었더니 부인은 “스님,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찬바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이 아니라
법당에 앉아서 추운줄도 모른채 잠시 삼매에 빠져있었더라구요.
아프던 몸이 어느새 말끔하고 머리가 맑아요.
돌아서서 법당안을 둘러보니 부처님뒤 후불탱화에 그려진 백의관음께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요.
비몽사몽간에 본 그 부인의 모습이 바로 백의관음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차츰 병이 나아져서 예전의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내 체험을 얘기했지만 기도의 힘은 상상이상으로 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거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수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나’라는 아상이 개입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상을 제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

 

 

5.

낭월 (朗月)스님의 관음기도 영험담

(낭월스님 글)

가끔은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운(運)도 불리하고 여건도 좋지 않으면
종종 등장하는 것이 기도를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를 하면 과연 "효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반문을 받는 것도
당연한 코스(?)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한 낭월의 경험담을 들려 드림으로써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히도록 할 참이다.

물론 실화일 뿐이며 단 한 글자도 조작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1. 발단
낭월의 나이 20세였다.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 해였다고만 말씀을 드린다.
그 해의 간지는 丁巳년이었고, 1977년이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제 나이로는 21살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어느 봄날 아침에 자고 났는데, 천지가 온통 붉은 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물은 가까이는 보이고 멀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3~4일이 지나면서 점차로 그 붉은 기운은 짙어지더니
마침내는 아무 것도 식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는 고사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찾아 먹기도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대구에 있는 동산병원이라고 하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하루 종일 검사를 한 다음에 내린 결론은 '失明'이었다.
시력을 쓸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리고는 끝이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으니 공부는 끝났고 자신의 생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하였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이 건강할 적에는 부모형제가 필요 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잘도 돌아다니지만, 막상 병이 들면 아무 곳에서도 오라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계시는 집으로 가서 민간약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몇 달을 보냈다.
병명은 '초자체혼탁'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대의 의술로는 치료를 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답이 명확하게 나왔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마음에 대해서 벗님은 생각이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입장에서는 절망이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2.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기도 동기

막판에 몰리면 지푸라기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낭월에게 주어진 것은 기도를 하는 것밖에 달리 답이 없었다.
그대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기도라도 해야 뭔가 숨통이 트일 것으로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듬거리면서 찾아간 곳은 동해의 양양 낙산사였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기도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판에서나마 마지막 기도를 한번 해보고 세상을 하직하고 몸을 바꿔서
다시 공부를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많이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비록 경치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낙산사에 도착을 했다. 시간은 저녁 11시경이었다.
원주 스님을 찾았더니 밤중에 중이 돌아다닌다고 푸념을 하셨다.
이해는 되지만 낭월의 상황은 그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죄송하기만 했다.

3. 첫 번째의 힌트 '감이 좋았다'
새벽에 꿈을 꿨다. 꿈에도 낭월이 낙산사로 기도를 하러 왔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절 안에서 늙은 여스님이 동자를 데리고
바삐 어디론가 출장을 가시느라고 나오고 있었다. 합장을 했다.
그래도 꿈에는 사물이 바로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 비구니 스님이 흘낏 보시더니 걸음을 멈추고 하시는 말씀.

"기도하러 왔구만? 하고 있어! 난 좀 급히 다녀올 데가 있네~!"
"예, 다녀오십시오."

그 뿐이다. 비구니 스님이 사라진 곳을 멀거니 바라다보다가 꿈을 깼다.
그리고 그 감은 매우 좋았다.
몇 달 동안의 암흑에서 빛을 발견할 가망성을 얻었다고 해야 하겠다.
아마도 그 비구니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었을 것이라고 저 좋을 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주지스님을 찾아서 기도를 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게 될 줄은
이미 꿈을 깨고 나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100일간의 기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3. 하루 16시간의 정진
막판에서 할 일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끼고 또 깨달았다.
잠자는 시간 6시간과 공양시간 3시간을 빼고는 모두 기도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렇게 집중이 잘 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겠다.
잡념이 없어진다는 것은 큰 일을 당하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잡념이 많다는 말은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망상은 한가로움의 푸념인 것이다.
참으로 절박한 막다른 길에서는 오로지 일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고 해도
아마 실감이 드실 것이다. 그 해는 낙산사의 해수관음보살을 점안한 해인 것으로도
기억이 된다. 낭월의 기도는 낙엽도 다 지고 난 늦가을에 시작되었다.

4. 스님들의 조언 "무리하지 말아라"
당시에 함께 살았던 대중 스님들이 6명인가 되었는데 하나같이 낭월의 기도를
염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도를 시작한지가 며칠이나 되었을까 싶은 날에
책임자 되시는 분이 조용히 불러서 말씀하셨다.

"스님. 고생이 많소. 근데 지금 스님의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대중 스님들이 불안해하고 있구랴. 왜냐면 기도하다가 쓰러지겠다는 염려로 인해서요.
그러니 매일 8시간만 법당에서 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조용하게 한다면 대중도 편안하고
본인은 자신의 기도가 법당에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닌 줄은 알 것이므로
그 방법을 택해 보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한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불안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따르기로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목탁을 두드리면서 하는 기도 시간만
줄었다는 것이지 여전히 목숨을 달고 관세음보살에 매달렸다.
물론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래도 새벽에 눈을 뜨면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로 불빛을 바라다 봤고,
여전히 같은 상태에서 실망감을 갖게 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5. 잊지 못할 기억을 갖는 꿈
약 두 달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기도는 순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기도를 마치고는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으로 인해서
담담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다음 생의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 나가던 상황이었다. 그 어느 날 밤에 꿈을 한 자리 얻었다. 지금도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낭월이 동해안 유람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지역의 사령관 댁을 발견하고는
방문을 하였다. 들렸으니 인사를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인해서이다.
그 집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있었다. 계곡이 가팔랐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초가집이 있었고, 문안을 드리고 절을 세 번했다.
물론 속인에게 절을 세 번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지만, 당시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그 분이 하는 말씀.

"자, 저쪽 밝은 데로 가시지." 해서 창가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해맑고 따스한 햇살이 쏘여들었다.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말했다.
"그래 혹 나에게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지."
"예 실은 전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 어디 보세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민 것은 예전에 동산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였다.
그는 진단서는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질문만 했다.
"거기에 이러이러한 항목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럼 저러저러한 항목은 있나?"
"그러한 항목도 없는데요."
"그럼 염려할 것 없네. 내가 해결해 줌세."
"예, 고맙습니다."』
이것이 꿈의 전부였다. 그리고 잠에서 깨여나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아무리 벗님이 둔하다고 해도 이게 무슨 메시지인지는 감이 잡히실 것으로 짐작을 한다.
이제 눈을 고쳐주겠다는 암시가 아니고 뭐겠느냔 말이다.
그대로 가사장삼을 걸치고 법당으로 가서는 목이 터져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불러댔다.
그리고 아침 공양을 하는데 대중들이 낭월의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가 술렁술렁함을 느꼈다. 어느 스님이 말했다.

"기도를 하시다가 오늘 새벽에는 다른 것을 하시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이 말은 혹시 기도하다가 돌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서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으로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말씀 드렸다.

"아, 대중 스님들께 미안합니다. 기도가 잘 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은 함께 기뻐해 줬다.

6. 한 겹씩 벗겨지는 혈의 장막
그렇게도 세상을 붉은 천지로 만들었던 짙은 색이 그 후로 조금씩조금씩 옅어져갔다.
그 환희심을 벗님도 이해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나자
저 멀리 안개 속으로 느꼈던 사물들이 어느 정도 식별을 할 수가 있는 정도가 되었다.
비로소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 매일 쳐다보던
전등의 유리 윤곽선이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그 무렵의 마음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7. 묵언(默言) 기도
100일 기도의 회향을 3주일 남겨놓고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묵언을 하기로 했다.
묵언은 수행의 한 방법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대중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중은 당연히 허락을 했고, 그래서 이제는 아무와도 말을 나눌 필요가 없이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을 했다. 약 90일 정도가 경과하자 이번에는 신문지의 글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도는 더욱 흥겹게 진행이 되었다. 밖에서 산책을 하는데 관광객들이 자꾸 질문을 하는 것이 귀찮아서 '묵언'이라고 쓴 패를 가슴 앞에 달았다.
그러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아래에다가 '말못함'이라는 추가문구를 넣었다. 비로소 효과가 있었다.
"에구... 쯧쯧... 벙어리 스님이네...."
"나이도 젊은데 우짜다가....."
"얼굴도 참하구만..... 안되었다..... 쯧쯧...."

8. 회향
드디어 백일 기도를 마쳤다. 전날 내린 눈이 대지를 하얗게 바꿨고,
그 빛은 반사가 되어서 법당을 환하게 비췄다.
그러나 낭월이 보기에는 법당의 관세음보살님이 방광을 하시는 것으로만 보였다.
참으로 원만한 성취가 된 셈이다.

9. 후기
그로부터 3년인가 지나서 다시 낙산사를 찾았다.
그 절의 스님이 관광객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년 전에 눈먼 스님도 여기에서 기도를 해서 눈이 밝아졌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혼자서만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그 스님은 모를 것이다.

10. 기도 권유
이러한 기도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낭월이다.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경험으로 확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통일이 되어서 소원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드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되겠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절대자들도 절대로 없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없는 것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이고, 寅木대운의 丁巳년의 흉함도 戊午년의 고통도
기도를 통해서 말끔히 정돈을 했다는 것도 노력은 기적을 만든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낭월이 방문자에게 기도를 하시라는 권유는 그냥 단순히 말이 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글을 읽으시는 벗님은 아실 것이다.
물론 운이 흉할 적에 권유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1. 그 때의 간절함은 어디로 가고.....
기도를 할 적에는 눈만 보이면 쓸데없는 것은 절대로 보지 않고
오로지 경전만 보도록 할 것이며,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중생들에게
빛이 되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백천번도 더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를 관세음보살 님이 보신다면 아무래도
한숨을 쉬시지나 않을까 싶다.
그래도 단 한가지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저 어디엔가 '그 분'은 반드시 계시고,
언제라도 온몸으로 부른다면 답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더불어 고민을 나누면서도 그러한 절박함을 경험했기에
어쩌면 더욱 절실하게 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역경이 반드시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고,
인생의 성장 과정에서 어쩌면 한번 정도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하튼 일생 눈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전생에 살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

※ 낭월 스님은 현재 계룡산(鷄龍山)의 남쪽 감로사에 주석하고 계십니다.

6.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
-일타스님의 생활속의 기도법 중-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 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7.

백의관음의 가피를 입다- 김 태환스님(태고종 보광사 주지스님)

불교는 소원성취의 길 - 태환스님(보광사 주지)

(1) 큰 병에 걸리다

한 평생 살도록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어 병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다. 학생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활발히 했었고, 출가한 후에는 참선 수행을 꾸준히 했으므로 도대체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체험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 12월25일, 의례 하듯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아령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 달려갔다.

용변을 마치고 나오려 하는데, 오른쪽 가슴에서 무슨 숨기운이 곧바로 치솟더니 오른쪽머리에 숨구멍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스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원래 건강하여 이 나이까지 버스를 타더라도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었고, 걸음도 빨라 젊은 사람도 따라오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길이 한번에 몸에 뻗친 다음부터는 걸음이 불편해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1월3일 '간염예방접종주사'를 맞으러 우리 사찰 신도네 병원인 시흥의 김택준내과를 가게되었다. 그런데 의사가 "스님, 전에는 참 건강해 보이셨는데, 오늘 뵈니 어째 숨소리도 이상하네요." 하기에 "내가 뭐 이상하오? 난 건강합니다." 하였다.

그래도 의사는 "스님, 아무래도 이상하니 진찰 좀 해봅시다."하곤 X레이 검사를 해보더니 '기흉(氣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폐에 구멍이 두 군데 나고 제 위치를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즉시 입원을 권했지만 "내가 무슨 입원이냐?"라고 일축하곤 귀사 하였다. 그러나 사찰의 보살한테 의사가 몇 번이고 전화를 하여 입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몇 번 식구들과 실갱이를 벌리다 결국 병원에 이끌려 갔다. 그래서 1월5일 한강성심병원 819호실에 입원하였는데, 진찰을 해보더니 오후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른쪽 가슴을 마취시켜 구멍을 내더니 한 7cm가량의 관(?)같은 것을 넣으니 아주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폐와 근육 사이의 불필요한 바람을 뺐으니 이제 원만하게 붙어 이상이 없으리라 하였다. 그후 며칠간 경과를 진찰하더니, 8일에는 뭔가 굳어지며 이상이 있다하더니 11일에는 물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을 빼는 치료를 며칠 하더니, 이 치료 갖곤 안되니 권위자인 홍박사를 찾아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였다. 17일엔 옆구리에 물주머니를 달고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에 임하게 되었다. 19일엔 정밀검사를 한 다음 일주일 후인 24일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2)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다

물론 평상시에 늘 염하던 '관세음보살'을 불러왔지만, 수술실로 가면서부터는 더욱 일심으로 불렀다. 부르다 거꾸러져 죽어버리면 몰라도,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쉼이 없이 염불하리라 작정하였다.

항시 관음보살 님의 대자대비에 젖어서 살아온 탓인지, 마음이 동요되거나 불안한 것을 몰랐다. "나에게 세상 인연이 다했으면 관음보살님 께서 숨을 걷어 가실 것이고, 만일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뭔가 영험을 보이시겠지. 알아서 하십쇼." 라며 오로지 관음보살 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9시에 수술을 시작하려는데, 비몽사몽간에 백의관음이 보이는 것이었다. 하얀 장삼도포에 머리와 얼굴도 온통 새하얀 보살님 주변에 여섯의 동자들이 있는데, 평소에 내가 지극히 좋아하던 연꽃이 쑥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활짝핀 연꽃 아래로 동자들이 모여들자 연의 뿌리가 또한 땅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백의관음님이 "산삼, 산삼, 산삼!"하고 '산삼'소리를 세 번 하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그 소리까지였다. 그 이후 난 마취 상태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장장 8시간의 대수술이 진행되었다. 이런 경우 수술 후에 몇시간이고 감각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한 이틀간 정신을 못 차린다 하는데, 수술이 딱 끝나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수술 안 하십니까?" 물으니, 깜짝 놀란 의사는 "수술 끝났습니다."고 얼떨결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의사들 모두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놀라 마지않았다. 갈증이 나서 물을 찾으니 물을 주기에 시원스레 마셨다. 마신 것이 있으니 얼마 후엔 하기 마련.

소변을 보겠다고 하니 변기를 받쳐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들어 누워서는 용변을 못 보니,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였다. 간호사가 한사코 변기를 받치며 재촉하고 의사들이 권하였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는 소변보기 싫다고 우겼다.

그때가 25일 아침이었는데, 내 고집에 고개를 흔들어 대던 의사 한사람이 "정 일어나려면 일어나쇼!"라고 퉁명스레 내뱉었다. 괜히 고집세우는 것이지 어찌 상체의 반을 절개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겠냐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소피를 시원스레 보았다.

침대에 돌아오니 의사와 간호사가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뭔가 다릅니다."고 한 의사는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른 환자들의 상태를 듣고는, 이미 수술 전에 백의관음께서 현신 하시어 수술 내내 가피력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 관세음의 영험에 감격하여 무수히 감사의 염불을 하였다. 아마도 나에겐 이 세상에서 보살 행을 더하라고, 자비하신 모습을 보이신 것임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나 퇴원할 수 있느냐고 홍박사에게 물으니, 대개 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니 내년 2월쯤에나 퇴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원4주만인 2월22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3) 소원성취의 조건

육체는 숨넘어가면 썩어 없어지는, 아침 이슬과 같은 것이어서, 이것이 영험을 나타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험을 일으키고 무엇이 생명의 주인공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래면목인 불성(佛性)인 것이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모두가 실로 부처님 생명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일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밭(心田)을 가는 수행을 해야한다. 그리 하여 자신의 참된 생명가치를 깨달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경지를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서 비로소 모든 소원은 남김없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꼭 출가하여 사찰에서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항상 자기의 본래 생명인 관세음보살 님을 성취되는 것이다. 출세간 적인 일의 성취는 물론, 우리의 평범한 소원도 성취시키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8.

삼풍 붕괴 현장의 기적 같은 생환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순식간에 일어난 서울 서초동 삼풍 백화점의
붕괴사고는 온 나라를 경악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5백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인재 서울의 한 최고급 백화점의 붕괴가 가져다 준
충격! 사람들은 한동안 삶의 방향을 잃은 듯 애만 태워야 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준 기적이 있었습니다.

사지(死地)에서 230여 시간 만에 구출되어 첫 번째 기적을 연출한
20세의 최명석군, 285시간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18세의 유지환양,
19세 소녀의 힘으로 죽음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하고
16여일 만인 377시간만에 제3의 기적을 일궈낸 박승현양.
그런데 이들의 기적적인 생환 뒤에 하나같이 기도와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특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15일 17시간을 버틴 박승현 양의 생존은
우리 불자들에게 큰 교훈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간밤에 놀러온 고등학교 동창 정원이와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 새벽에야
잠이 든 탓인지 승현이가 6월 29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몸이
찌뿌등한 상태였습니다. 그날은 원래 비번이었지만,
집안 일이 있다는 선희 언니와 근무 날짜를 교대하였던 것입니다.
‘바꾸지 말 것을 그랬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친구 정원이와
삼풍백화점으로 함께 출발했습니다.
오후 5시 50분. 정원이와 항께 지하 3층 식당에서 간식을 먹은 승현이는
지하 1층의 아동복 코너로 갔고,
정원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 으로 향했습니다.
승현이가 매장안의 카운터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쿵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리더니 천정에 붙어 있는
벽돌들이 눈앞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승현아! 피해!"
누군가가 소리를 쳤지만 바닥이 흔들리고 먼지가 앞을 가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물탱크가 뒷머리를 때려 승현이는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사방은 깜깜했고 뒷머리에서는 피가 흘러 뜨뜻했습니다.
옷을 찢어 머리에 댄 승현이가 조심스레 손발을 뻗어 보았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몸을 옆으로 굴려 보니
두세 바퀴 구를 정도의 여유는 있었습니다.
사방에서는 절규와 신음소리가 들렸고, 오른쪽에서는 같은 매장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비명소리도 들렸습니다.
머리 뒤에서도 옆 매장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로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바닥을 만져 보니 물이 고여 있었지만
심한 냄새가 나는 녹물이어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원한 포도주스가 내내 승현이의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같은 매장에 근무하는 언니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니 ?
그러나 옆 매장의 언니만 힘없는 신음소리를 낼 뿐 같은
매장 언니의 대답은 영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승현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옆 매장 언니의 꺼져가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도 곧 죽을 것 같애----
"언니, 언니 !"
그러나 정적뿐이었습니다
그때 포크레인이 머리 위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누가 구하러 왔는가 보다
입이 바짝 탔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오히려 양쪽 옆의 콘크리트 더미가 밀려들면서
팔을 제대로 뻗을 수도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른쪽 무릎에도 콘크리트 더미가 밀려들어 무릎을 펴기도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돼. 나는 꼭 살아야해.
몇 달 전 장사가 안 된다고 식당을 그만둔 엄마 아빠를 위해서도,,,...

동시에 승현이는 평소 다녔던 금용사 주지 월공스님의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 하세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원을 천수천안(千手千眼),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승현이는 그때부터 관세음보살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찾았습니다.

한편, 승현이의 어머니 고순영 보살도 낮에는 서울교육대학교에 설치된
실종자 가족본부 임시 법당에서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밤에는 금용사를 찾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공을 드렸습니다.
안팎에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잊어버린 승현이가 갈증과 허기로 입술이 새까맣게 타들어 올 때쯤이었습니다.
깜빡 잠이 든 승현이에게 연초록빛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는
숲이 보였습니다. 동시에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습니다.
타는 목을 축일 수 있는 감로수도 거북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승현이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눈에 익은 그곳은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자주 찾았던 월계동 금용사였습니다.
승현이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법당을 향해 합장을 했습니다.
그때 법당으로부터 노스님 한 분이 천천히 걸어나와,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무언가를 승현이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빨간 사과였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눈을 뜨자 사과는 손에 없었고, 잠깐의 자유는 꿈이었습니다.
갑자기 위에서 "탕탕탕" 소리가 들렸습니다.
때마침 지하 1,2층 잔해 제거를 하던 안양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잔해더미 속에서 높이 10cm, 너비 30cm가량의 구멍을 발견하고,
구멍을 넓히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순간 승현이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려 주세요.
이때가 7월 15일 오전 10시 58분.생존자 확인 무전이 지휘본부에 전달되었고
현장과 온 나라는 환호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지 불과 17분만에 구조되어 승현이는 병원 으로 향했습니다.
15일 17시간 만에 구출되어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진 승현이를 진찰한 의사들은,
"맥박이 조금 빠를 뿐, 호흡과 혈압은 거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의료진들은 승현이가 매몰된 후 구조될 때까지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물을 전혀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5--7일. 길게 잡아야 7--10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의사들은 한결 같이 말했습니다.

"오래 물을 먹지 않아 탈수현상이 일어나면 콩팥 기능에 이상이
먼저 발생하는데, 박승현 양은 콩팥 기능에 별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물을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바,
만일 사실이라면 놀라운 기적으로,의학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박승현 양의 상상을 초월한 기적 같은 생환! 과연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세음보살의 가피요 불보살의 불가사의한 신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첫 번째 기적을 보인 최명석 군의 어머니도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심정으로
간절히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유지환 양의 어머니 정광임 보살도 낮에는
자원봉사자, 밤에는 중풍으로 입원한 남편을 간호하면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였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염송을 통하여 이룩된 이 세 기적은 불심(佛心),모심의 승리요,
온 국민의 승리로서 영원히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9.

출처: 생활속의 관음경 (우룡큰스님저, 도서출판 효림발행)

 

몇 년전 90세 가까운 나이로 돌아가신 덕운성 보살은 50대 중반에 자궁암에 걸렸습니다. 부잣집 외동 아들인 남편이 평생을 돈 쓰는 재미로 살면서 남편이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처갓집 재산까지 모두 탕진하고 죽었으므로, 덕운성 보살은 날품팔이를 하며 혼자 1남 2녀를 키웠습니다.

"말기 자궁암입니다. 앞으로 3개월정도는 살 수 있으니 주변을 정리하시지요."

대구 동산병원의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그녀의 두 딸은 결혼을 하고 아들은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자궁암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는 말기 자궁암이 반드시 죽는 병에 속하였기에, 덕운성 보살에게는 의사의 말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에게 울면서 사실을 알리자, 큰 딸은 포기할 수 없다며 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셔가 다시 진찰을 하게 했습니다.

"3달은 너무 성급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은 보장하기 힘듭니다.""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울면서 사정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를 2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대학 2학년이니,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단칸 셋방이 있는 김천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매달릴 데가 없었습니다. 오직 한 분, 관세음보살님 뿐이었습니다.

기도비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은 물론이요 틈만 나면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 마지막 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김천 청암사 극락암에 모셔진 42수관세음보살상(지금은 도난 당하였음)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백발의 노스님 한 분이 불단 앞에 나타나 약 세 봉지를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무릎으로 기어가 약봉지를 받았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먹어라."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부처님 앞에 놓인 다기물을 손바닥에 부어주셨고, 그 물로 한 봉지를 먹고 나자 또 물을 부어주며 말했습니다.

"또 먹어라."

"마저 먹어라."

세 봉지째 약을 먹었을 때 어떻게나 거슬리든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고나서도 그 약 냄새는 그녀의 몸과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은 그녀는 말기 자궁암이 완전히 나아 아들의 대학 졸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3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10.

대원심 보살 아들의 병을 완치시켜주신 관세음보살

안성에 사는 대원심 보살은 아들이 위암말기로 진단되어 죽음을 선고받자 괴로움을 가눌 길이 없어 청룡사의 관세음보살을 찾아갔다. 이미 80세가 넘은 노보살인지라 절을 올리기 힘든 처지였다. 대원심 보살은 다만 가만히 벽에 기대어 앉아 관세음보살을 우러러보며 念(염)하였다.

"관세음보살님,부모가 죽은 다음 자식이 죽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온데, 저의 업이 얼마나 중하길래 이렇게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나이까? 자비로우신 관세음보살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3일 밤낮을 아들의 병이 기적처럼 쾌유되기를 기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찾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 때 스님 한 분이 활짝 핀 연꽃 한송이를 대원심보살에게 주었다. 꿈을 꾼 것이었다.

보살은 상서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치유불능이라는 진단을 했던 서울대학교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재검사결과 위암의 흔적은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담당의사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라며 매우 신기해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아들의 병을 완치시킨 것이었다.

출처: 도서출판 효림 관음신앙. 관음기도법 김 현준저

 

1~160  출처: 네이버 상방대광명 블로그(blog.naver.com/lawand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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