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持驗錄 - 금강경지험록 1
제 4 편 회생을 얻다
1, 지계하고 수명을 늘리고 파계하고 벌을 받다
왕리꾸(王立轂)는 명나라 때 턘타이(天台)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의 자(字)는 빠이우(伯無)였습니다. 만력萬曆 병오년丙午年에 향천鄉荐을 받았습니다.
그가 일찍이 찌아허씨안(嘉禾縣)에 있을 때 삼보三寶의 앞에서 오래오래 재계를 지키기로 발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살생하지 않을 것, 도둑질하지 않을 것, 삿된 음행하지 않을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의 4계를 받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쨩쓰씽(江西省)의 씬깐씨안(新淦縣)에 부임한 이래로는 받아 지니던 계율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았습니다.
무오년戊午年에 그가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날 밤에 또 꿈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그가 파계한 일을 거듭거듭 꾸짖으며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경계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리꾸는 마음이 매우 우울하였습니다.
리꾸는 궁전의 뒤쪽 문을 통해서 끌려갔는데 염라대왕이 한 가운데 높다란 곳의 책상이 놓여진 곳에 앉아 있고, 좌우로는 두 명의 재관宰官이 양옆으로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근에 기립하여 왕을 모시는 시자들도 매우 흉악한 모습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서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돌아본 리꾸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매우 힘차게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리꾸는 그의 수명이 겨우 병진년 8월 까지였으며 계를 지킨 인연의 공덕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수명이 연장되었음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가 후회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며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이 때, 좌우의 재관들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습니다. 잠시 후, 시자가 두 개의 커다란 대나무 상자를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많은 분량의 서류가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은 리꾸가 평일에 한 자, 한 구절 그리고 잘 정리해 놓은 문장들을 쓰고 베껴놓은 것들이었습니다.
혹은 마음이 동할 때마다 모두 다 상세하게 일기를 쓰듯이 기재해 놓은 것입니다. 각 세트마다 명부의 관리들이 위쪽에다 색깔을 칠해 체크를 해 놓았는데 검은 색과 파란 색과 붉은 색과 그리고 흰색 등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시자에게 명령하여 같은 색깔끼리 찾아서 한 곳에다 모아 두게 하였습니다.
먼저 검은 색과 파란 색을 찾아내서 한 곳에 놓아두게 하고 다음으로 붉은 색과 흰색의 것을 모아서 한 곳에다 두게 하였습니다. 잠시 후, 파란 색의 서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검은 색의 것도 점점 축소되어 젓가락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오직 붉은 것만이 특별히 밝게 빛이 나서 현란하게 눈이 부셨습니다.
리꾸는 곁에 있다가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비스듬히 땅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새긴 금강경이 책으로 잘 만들어져 서류와 함께 상자 속에 곱게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 조그마한 곳에서 선명한 붉은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염라대왕이 전부 다 보고 나더니 얼굴색이 비교적 온화해 졌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서있는 재관宰官을 향하여 의견을 물어 보았습니다.
리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만일 나의 눈알을 빼내어 버린다면 사물을 어찌 분간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순간, 리꾸가 눈앞에 한조각 어두움과 부딪침을 느끼자마자 궁전 안의 관리들과 귀졸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그의 등을 치며 “빨리 가라! 빨리 가!” 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잠시 후, 리꾸가 발이 한 번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때가 바로 닭이 홰를 치며 꼬꼬댁 울고 먼동이 막 터오르려는 새벽녘이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집안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부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의사가 또 와서 그에게 눈을 밝힐 수 있는 약을 복용케 하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리꾸의 꿈에 어떤 사람이 못을 가지고와서 그의 눈알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 그는 어제처럼 통증을 느끼면서 이것은 업보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부터 리꾸는 매일 금강경과 법화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애욕을 버리고 선업을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경신년庚申年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리꾸의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셔서 아름답고 섬세한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드시고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달콤한 감로수를 뿌려서 그의 눈을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부처님께 예불을 올릴 때 문득 활연히 사물이 보이면서 새롭게 찬란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리꾸가 뒤에 이운치(雲棲)의 뽀싼(博山)의 문하에서 지낼 때는 벌써 다시 살아난 지 20여년이 넘었습니다. 모두들 그를 삐루따쓰(璧如大師)라고 불렀습니다. 마오쫑치(冒宗起)가 평하여 말하였습니다.
원빠이런(文伯仁)은 명나라 때 쑤쩌우(蘇州)의 사람입니다. 그의 호는 우펑(五峰)이라 하였는데 시를 아주 잘 읊었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그는 원쩡밍(文徵明)의 조카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달아난 하인을 고소하기 위해 살고 있는 현縣의 관아로 가다가 어느 민가에 방을 빌려 하룻밤을 청하였습니다.
그날 밤 그의 꿈속에서 두 명의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그를 붙잡자 그는 관아에서 파견된 병사들인 줄 알고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들과 한참을 가니 웅대한 궁전이 한 채 나타났습니다. 그가 보기에 마치 인간세계의 건물이 아닌 듯 하였습니다. 이 때 빠이런은 내심으로 해를 당할까 두려움이 점점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미소를 짓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 연못을 팔 때에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 밑에 엎드려 있던 뱀을 한꺼번에 백여 마리를 죽였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는 순간, 수많은 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서 빠이런을 물려고 덤볐습니다. 염라대왕이 다른 한 판관에게 말하였습니다.
빠이런이 곧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는 본시 부처님을 믿지 아니하였는데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사경하고 염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덕으로 인하여 과거 숙세에 자신이 살해하였던 많은 생명들을 제도해서 고통을 벗어나게 하려고 발원하였습니다. 또한 지극정성으로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거나 가리지 않고 게을리 않고 숙세의 업장을 참회하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꾸런니안(顧仁念)이 평하여 말하였습니다.
무롱 원츠(慕容文策)는 수나라 때 타이쩌우(泰州)의 쌍뀌(上邽)사람입니다. 대업大業 7년에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입니다. 그는 평소에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 4월 15일에 원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저승의 사자들에게 이끌려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서 으리으리한 한 채의 궁전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남녀노소와 승려들과 도사 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궁전의 관리가 명단을 들고 나와서 낱낱이 이름을 불렀는데 생전에 쌓아놓은 복업이 있는 자는 서쪽에 서게 하고 복업이 없는 사람은 조사하여 동쪽에 서게 하였습니다. 원츠는 마지막으로 불려져서 염라대왕 앞으로 갔더니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공경히 합장하고 찬탄하며 말하였습니다. “공덕이 엄청납니다. 엄청납니다!”
이때, 대략 15,6세 쯤 되는 사미스님이 손에 횃불을 들고 원츠의 앞을 지나가시고 뒤쪽에서 또 한 명의 나이가 비슷한 사미스님이 손에 횃불을 들고 원츠의 앞을 지나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미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손에 횃불을 들고 한 분은 앞에, 한 분은 뒤에, 그리고 원츠는 가운데에서 달렸습니다. 그들이 함께 성문을 달려 나가서 달려가다가 한 분의 사미스님이 원츠에게 물었습니다.
큰 성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 도착하여 보니 성곽이 매우 높고 험하였고 성문에는 쇠로 만든 그물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네 명의 흉악하게 생긴 나찰들이 손에 쇠갈퀴를 쥐고 성문의 양쪽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미스님께서 원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원츠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서 2백여 보를 걸어 들어가니 한 줄기 회색빛의 큰 강물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있는 형을 받는 사람들은 몸 전체를 강물 속에 담그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수면위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치열하고 맹렬한 불길이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들을 덮쳐서 태워버렸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이 고통을 못이겨 애절히 통곡하며, 처절하고 비참하게 울부짖고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4방면에도 쇠로 된 상과 칼숲과......등등이 첩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4명의 옥졸들이 손에 예리한 쇠갈고리를 들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저러한 종류의 참상들도 사람으로 하여금 보기만하여도 몸서리쳐지게 하였습니다. 옆에 서 있던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원츠는 너무나 놀랍고 공포스러워 염불을 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빨리 그곳을 벗어났으면 하고 원하자 두 분의 사미스님께서 상태를 파악하고 곧바로 그를 데리고 성 밖으로 빠져나가서 원래의 가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당나라 쿠오쩌우(括州)의 자사刺史인 런이팡(任義方)은 러안(樂安)사람입니다. 무덕武德 때에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었어도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여전하였으므로 집안 식구들이 스님들을 모셔다가 그를 위하여 금강경독송을 청하였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가 다시 살아나서 명부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런이팡이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혀서 염라대왕에게 인도되어 갔습니다. 염라대왕이 관리들에게 시켜서 그를 데리고 지옥을 참관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실제로 지옥을 직접 보니 과연 부처님께서 경전에 설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옥의 세계는 밤낮이 따로 없고 항상 어두컴컴하고 침침하였는데 이것은 마치 안개가 꽉 낀 것과 비슷하였습니다.
런이팡이 지옥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은은한 경전 독송소리가 지옥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되어 흘렀습니다. 염라대왕이 독경소리를 듣자 곧바로 런이팡에 관한 장부를 가져 오게 하여 직접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이윽고 회생하여 다시 살아난 런이팡은 집안 식구들과 스님들이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직접 본 지옥의 세계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수입인 봉록을 대부분 불상을 조성하는데 시주하였으며 스님들을 청해다가 금강경을 1000여부를 사경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하였습니다.
5, 갑자기 죽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왕총꾸이(王從貴)는 당나라 때에 꽁안(公安)의 찬링춘(潺陵村) 사람입니다. 정원貞元 때에 그의 여동생이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당나라에 라오쩌우(饒州)의 사마司馬벼슬을 하던 리위앤이(李元一)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원화元和 5년에 별채에 살던 그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시신의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차마 입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녀의 남편인 이안느(嚴訥)는 싼쓰(陝西)로부터 창후(蒼湖)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보니 자기 아내가 물위로 걸어서 자기 앞으로 왔습니다. 이안느가 매우 놀라며 그녀에게 무슨 일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아내가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녀가 또 말하였습니다.
이안느가 찌앤푸춘을 찾아 갔더니 과연 거기에 이안선생이 있었습니다. 이안느가 아내의 이야기를 하면서 구해달라고 청을 하자 처음에는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안느가 간곡하고도 애절하게 매달리자 견디지 못하고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이안느가 자신의 아내를 살려낼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 엄선생에게 거듭거듭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재빨리 라오쩌우(饒州)에 가서 장인을 만나 뵙고 여태껏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였습니다. 장인인 리위앤이는 직접 금강경 1권을 사경하고 이안느를 불러서 함께 왕장군의 사당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함께 금강경을 7편을 독송하였습니다. 독송이 끝나고 집으로 가보니 그의 아내의 눈이 열리면서 눈동자에서 생기가 돌았습니다. 한참을 지나자 그녀가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7,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
리치우이(李丘一)은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그가 평소에는 사냥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만세萬歲 통천通天의 첫해에 양쩌우(揚州)의 까요우(高郵)의 승사丞史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곧장 저승사자에게 이끌려서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염라대왕이 매우 화를 내면서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또한 명부에 모여있던 수많은 새와 짐승들이 사람의 말을 사용하면서 그의 죄상을 염라대왕에게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치우이를 붙잡아 온 쨔오츠(焦策)이라고 불리는 명부의 관리가 염라대왕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치우이가 기억을 아무리 열심히 더듬어 보아도 생전에 지은 공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사냥개를 데리고 열심히 사냥한 것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생각해 내려고 세심히 찾아보다가 문득 생전에 금강경1권을 사경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생각난다고 보고를 하니 염라대왕이 듣고 나서 안색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칭찬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명부에서는 금강경을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이 있는 경전으로 삼는다. 그대가 능히 사경했다고 하니 비록 한 번뿐이라 하여도 그 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었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에게 직접 경전 하나를 뽑아보게 하였습니다. 치우이가 그저 손을 내밀어 경전 하나를 뽑아들자 바로 그것이 그가 생전에 사경하였던 그 금강경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는 그냥 종이에다 베껴 썼지만 명부에서는 아름다운 보석에 새겨져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챠오츠가 그와 함께 원래 궁전으로 돌아와서 염라대왕에게 치우이가 사경한 금강경이 있다고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치우이에게 죽음을 당한 각종의 새와 짐승들을 불러 치우이에게 감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철천지 원수이지만 엄청난 공덕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라 그 공덕을 찬탄함으로써 원결으로부터 해탈케 하려는 염라대왕의 배려인 것입니다. 새와 짐승들이 치우이에게 감사를 드리자 치우이가 말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챠오츠에게 명을 내려 치우이를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를 데리고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가서 한참을 가다가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던 길을 계속하자 앞에 갑자기 깊은 낭떠러지가 나타났습니다. 그 낭떠러지는 매우 어둡고 깊어서 그 밑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챠오츠가 치우이와 난간에 서 있다가 갑자기 치우이의 등을 밀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이윽고 치우이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 자신의 몸이 관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관 밖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가만가만 실낱같이 들려왔습니다. 치우이가 크게 외쳤습니다. “곡하지 마라. 내가 살아 왔다!” 무덤 곁에 있던 집안 사람들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처음에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재빨리 손발을 다 동원하여 분묘를 헤집고 관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치우이가 팔팔 살아 있는 모습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집으로 데려오니 치우이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동안 명부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가족들은 놀랍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지고 있던 옷가지와 패물 등을 다 팔아서 스님들을 모셔다가 금강경을 사경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백 권은 치우이가 살해한 생명들을 위해 회향하였으며 이십 권은 저승의 관리인 챠오츠를 향해 회향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날 밤에 챠오츠가 또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양쩌우의 장이長吏인 쒸에후아이위앤(學懷遠)이 치우이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그를 불러다가 명부에서의 일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뒤에 리치우이는 황제로부터 진관5품晉官五品의 벼슬을 하사 받았습니다.
아울러 쨔쩌우(嘉州)의 초토사招討使로 파견되어 부임하였습니다. 그가 부임하러 가는 길에 찌쩌우(梓州)를 지나갈 때에 시원한 바람을 쐬러 야오따이(姚待)의 정자에 올랐다가 직접 야오따이에게 이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8, 염라왕으로부터 스승님이라고 불려진 루씨
당나라 개원開元 때에 루(盧)모씨가 후아쩌우(滑州)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두 명의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 가다 보니 명부로 들어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루씨를 데리고 염라대왕을 뵈러 가는 길에 한 채의 퇴락한 고택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루씨가 명부의 관리에게 물었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안으로 들어가 불러보니 어사대부가 곧 밖으로 나왔습니다. 루씨와 대부가 서로 보자마자 매우 기뻐서 함께 얼싸안았습니다. 대부는 곧바로 루씨를 집안으로 데려다가 서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서로 평생 동안의 일을 대략 이야기하다가 루씨가 금강경을 독송한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 대부가 매우 칭찬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그날 밤 9시 쯤 되자 루씨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의관을 갖추고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사람들 뒤로 약간의 사람들이 그물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옷을 입지 않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겨우 머리만 내어놓고 있었습니다. 루씨가 외종사촌형에게 물었습니다.
금강경을 계속 외워 반쯤 독송하였을 때 어떤 이들은 비단옷을 입고 어떤 이들은 수레모양의 구름위에 올라 앉았습니다. 이윽고 금강경 외우기를 완전히 마치자 모두가 하늘 세계로 승천하였습니다. 대부가 이러한 상황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찬탄하였습니다.
이윽고 대부가 루씨를 데리고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니 염라대왕이 루씨를 ‘법의 스승님’이라고 존칭을 쓰면서 그에게 예배하고 공경히 우대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하였습니다. “스승님의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그리고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으셨습니다.”
9, 수명을 10년 늘리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찡쩌우(荊州)의 천숭사天崇寺에 찌뜽(智燈)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늘 금강경을 독송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입적하시고 말았습니다. 제자가 스님의 손을 만져보니 살아계신 듯 따뜻하여서 차마 입관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일 후에 찌뜽스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더니 명부에 들어갔던 일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찌뜽스님께서 명부에 막 들어가자 염라대왕이 계단을 황급히 내려와 스님께 합장하고 공경히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염라대왕이 스님을 찬탄하면서 말하였습니다.
10, 말린 연꽃이파리 3말
당나라 소종昭宗 때에 닝쓰(寧師)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셨습니다. 3일 후, 다시 살아나시어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나라 때의 일입니다. 관직이 급사중給事中인 리꽁쓰(李公石)가 태화太和 7년의 겨울에 태원부太原府에 있는 행군行軍의 사마司馬로 임명되어 갈 때쯤이었습니다. 관직이 공목孔目으로 있던 까오쓰(高涉)에게 한밤중에 한 사람이 다가와 그의 등을 떠밀고 명부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명부의 어느 한 지방에 도착하여보니 수백 명의 사람들과 돼지들과 양들이 아무데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그를 데리고 어느 한 사람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그의 매부妹夫인 뚜쯔(杜則)였습니다. 뚜쯔가 말하였습니다.
잠시 후, 까오쓰가 또 한 곳에 도착하였는데 대들보 위에 커다란 쇠고리가 박혀 있었습니다. 그 주변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형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옥졸이 죄인들의 머리를 포승줄로 묶어 그 쇠고리에다 매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가지고 살을 후벼내고 뼈를 발라내었습니다. 이것을 본 까오쓰는 황망하고 두려워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다가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까오쓰는 온통 두려움에 휩싸이자 눈을 딱감고 금강경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가 일찍부터 잘 알고 지내며 의형제를 맺은 사이인 뚜안이씨안(段怡先)이 나타났습니다. 뚜안이씨안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양에게 시달리던 자네 매부와 살이 도려내지던 사람들이 괴로움으로부터 해탈되었단 말일세. 이것은 자네가 금강경을 외워 널리 선업을 쌓기를 힘쓴 때문이지. 이제 자네는 곧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일세. 이것은 자네가 금강경을 외운 엄청난 공덕 때문이라네.”
뚜안이씨안이 까오쓰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잘 배웅해주었습니다. 까오쓰가 다시 살아나서 날짜를 보니 겨우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문득 등 뒤가 아파서 만져보니 앞전에 명부에 들어갈 때 떠밀렸던 바로 그 부위였는데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멍은 며칠이 지나자 저절로 나아버렸습니다.
12, 개의 몸을 면하다
짱우(張玉)는 싼쓰(山西)사람입니다. 그의 딸은 이름을 포얼(佛兒)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었는데 읽을 때마다 기쁨으로 꽉 차서 노래하듯이 금강경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살아나서 사후의 체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두 명의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끌려가다가 차링(叉嶺)고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갑자기 검은 이불로 두 사람을 싸서 천(陳)씨네 집으로 보내고, 화려한 꽃이불로는 그녀를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이 때, 홀연히 한 명의 푸른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와서 말하였습니다.
우선 그녀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오.” 저승사자가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라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어두운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땅밑으로 떨어졌는데 깨어보니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13, 금강경을 듣고 소의 몸을 면하다
쪼우위에(鄒軏)는 명나라 때 쿤싼(昆山)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는 배우질 못해서 글자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가 의젓하고 솔직하며 정성스러웠고 후덕하였습니다. 그는 자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베푸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길을 가다가 화주하러 다니는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길을 따라 거닐면서 금강경을 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쪼우위에가 짐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집중하여 잘 들어보았습니다. 그 외우는 경전의 구절 가운데 자주 나오면서도 귀에 솔깃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다.”는 4구절을 그의 마음속에 잘 기억하여 잊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형을 대신하여 예배하고 참회를 하는 동안에 억지로 무릎을 꿇고 독경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의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을 읽어 내려갈 때에 그 내용을 듣고는 그의 내면으로 마음이 홀연히 깨우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합장하고 찬탄하였습니다.
만력 11년 10월 10일에 쪼우쩐이 역병에 걸리어 혼미해지며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유독 가슴만은 따뜻하였습니다. 10여일이 지나자 그의 병이 신속하게 깨끗이 나아 자리로부터 벌떡 일어났습니다.
말끔히 쾌차한 그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쪼우쩐과 그의 형 쪼우위에가 함께 천자가 사는 궁궐 밖으로 나가서 리쭈오팡(李作坊)의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과연 리쭈오팡이 사는 집이 있었고 쪼우쩐이 말한 것과 같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흰색송아지 한 마리가 외양간에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쪼우쩐은 이것을 보고 매우 놀라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만일 저 번에 금강경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미 나는 소의 몸을 받은 그대로 죽을 때까지 쟁기를 끌고 무거운 것을 죽어라고 싣고 다녔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이로부터 부처님과 진리에 대한 신심이 더욱 공고해졌으며 친형인 쪼우위에와 함께 재계를 잘 지키며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쪼우쩐은 미질도 하나 보이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어느 날에 쪼우위에가 집안식구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유완잉俞萬盈은 당나라 때 찡쫑(京中) 사람입니다. 그는 성정이 매우 거칠고 맹목적이었습니다. 원화元和 7년의 일입니다. 하루는 집안에 한 마리의 큰 독사뱀이 나타나서 가족들이 해를 당하지는 않을까하고 모두가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완잉이 크게 분노하여 손에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독사를 때려 죽여버렸습니다. 게다가 그 죽은 뱀을 삶아서 잘라 먹었습니다.
독사뱀을 죽여서 삶아 먹은 후로 완잉은 곧 깊은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오래되지 않아서 전신에 통증을 앓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죽었어도 가슴 쪽이 따뜻하였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었더니 7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완잉이 깨어나 몸을 추스르고 나서 사람들에게 사후의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에 명부의 사자에게 붙잡혀 갔는데 칠흙같은 어둠 속을 10여리를 달려가다가 혼자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의 뒤쪽은 둥근 빛이 둘러싸여 있었고 빛의 넓이가 4척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달려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입을 중얼중얼 하면서 경전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완잉을 불러서 자기의 빛의 범위 안에서 근접하게 달리게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함께 열심히 한참을 달려갔더니 완잉의 집이 보였습니다. 완잉은 그를 향하여 절을 하고 감사의 말을 드렸습니다.
당나라 무덕武德 때에 창안(長安)에 쑤원쫑(蘇文忠)이라고 하는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부자이긴 하였지만 어질고 자비롭지를 못하여서 위세를 부리고 사람들을 업신여기기 일쑤였습니다. 살생을 밥 먹듯이 쉽게 하였고 털끝만치도 선행을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넘어져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런친(仁欽)의 행실도 그의 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제멋대로 돼지와 염소 등을 함부로 죽이곤 하였습니다. 그에 의하여 살해되어 명부로 가게 된 수많은 동물들이 그의 죄상을 낱낱이 염라대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명부에서 그의 혼백을 꽁꽁 묶어 결박하여 지옥으로 데려다 달라고 염라대왕에게 청을 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런친이 무거운 병이 걸려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병이 쾌차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가 3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그에 의해 죽은 많은 짐승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내 목숨 내놔라’하는 환상에 사로잡히다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죽어서 명부에 도달하여 보니 염라대왕이 그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대가 죽인 생명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데 그들이 나에게 와서 그대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고 그대를 처벌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래서 곧바로 그대의 수명을 줄이고 전생에 지었던 복록도 다 지워서 여기로 붙잡아 오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그대는 재판받을 것도 없이 곧바로 칼숲칼산(劍樹刀山) 지옥으로 보내져서 그대가 스스로 지은 악업의 빚을 낱낱이 갚아야 할 것이다.”
런친이 듣고나서 마음속으로 놀라고 심장이 떨려서 털썩 주저앉아 자신을 구해 줄 것을 애절하게 청하였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명부의 궁전위에서 신비한 향기가 코를 찌르도록 퍼지더니 양손에 책 한 권을 받쳐 들고 한 스님께서 나타나시더니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썬찡입니다. 내가 받들고 나온 이 책은 바로 런친이 일전에 보내 준 바로 그 금강경입니다.
내가 이 경전을 가지고 열심히 독경한 덕분에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런친을 위해 증명을 해주려고 이렇게 온 것입니다. 대왕께 청컨대 자비를 베푸시어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틀림없이 허물을 고치고 선행을 많이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난 염라대왕이 공경하게 합장하고 칭찬하였습니다.
런친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여러 마을에 널리 퍼졌습니다. 멀고 가까운 동리에서 그를 보려고 몰려와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는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특히 런친이 살생을 하여 생명을 해쳤다가 중병이 온 몸에 걸려버렸다는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그 자리서 앞으로는 살생하지 않고 방생하면서 선업을 짓고 덕을 쌓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금강경 단 1권을 보시하였을 뿐인데도 죄업을 몽땅 소멸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늘려주었다는 얘기에 또다시 모두들 경탄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크게 찬탄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금강경을 독송하기로 발심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런친이 반야의 힘을 의지하여 다시 살아나고 나서부터 지극정성으로 허물을 뉘우치고 선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크게 발심을 하여 금강경 1000권과 법화경 100권을 인쇄하여 널리 보시하였으며 스님들 100명을 청하여 공양을 드렸으며 아울러 수륙재를 베푸는 등 여러 공덕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밤에 런친의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16, 금강경을 자수로 놓다.
탕쓰(唐時)는 명나라 때 후쩌우(湖州)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조카 딸은 하이닝(海寧)의 양윤호우(楊雲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려서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계(天啓) 갑자년甲子年에 그녀는 펑양(鳳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자수를 즐겨하면서 여가를 보내었는데 특히 꽃과 새를 수놓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재계를 지키면서 금강경을 수로 놓으려고 발원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이행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 1월에 그녀가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몸 전체에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땅위에 그냥 눕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큰 소리가 들려오기에 그녀가 눈을 들어보니 손에 석장을 들고 금으로 된 갑옷을 입은 큰 신장神將이 앞에 나타나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나서 그녀는 두 번 다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으며 곧장 금강경을 수놓은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를 놓는 그녀의 몸이 본래 매우 약했었지만 맹렬한 의지 때문인지 병이 도리어 침범하지 못하였습니다.
웨이민(魏旻)은 당나라 때 수이쩌우(遂州) 사람입니다. 정관貞觀 원년元年에 그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는데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서 그의 가족들에게 명부에서의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저승의 사자가 와서 그를 명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와 함께 명부에 잡혀 온 사람들이 수십 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명부전의 뜰 앞에 많은 사람들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염라대왕이 제일 먼저 스님께 물었습니다.
한편 차례차례로 판결을 받아 드디어 웨이민 차례가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생사의 장부를 검사하다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저승사자를 매우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명부관리로 하여금 웨이민을 데리고 유신이 과보를 받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했습니다. 웨이민이 따라가 보니 한 마리의 검은 거북이가 있었는데 몸은 하나이지만 머리가 여러 개 달려있었습니다. 명부의 관리가 웨이민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거북이가 바로 유신입니다.”
저승의 사자가 웨이민을 데리고 다시 명부의 궁전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웨이민이 염라대왕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웨이민이 다시 소생한 후에 염라대왕이 부탁했던 일이 뚜렷이 기억이 났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금강경을 독송한 과보로 천상계에 태어나는 것을 직접 본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이에 각 절을 다니면서 금강경을 구하다가 어느 절에 이르러서 어떤 스님 한분께서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웨이민이 그 말씀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즉시에 공경하면서 무릎을 꿇고 스님께 머리 조아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웨이민은 지극한 보배같이 여기면서 금강경을 수지하고 돌아온 후에 밤낮으로 염송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곧 경전을 능란하게 다 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수지독송하기를 열심히하여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수이쩌우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야만적이고 의식이 뒤떨어졌는지라 사냥하고 살생하는 죄업을 짓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웨이민이 겪은 명부의 일을 들은 인연으로 모두들 크게 보리심을 발하여 누구도 감히 사냥하거나 살생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4월 15일이 되자 문득 어떤 한 사람이 흰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웨이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히 생사의 고통을 요달하여 육도윤회를 벗어나게 함이니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자들이 적으니 그 이유가 어찌된 것일까요? 세간에서는 도덕을 높이 숭상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으나 불법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견해만 고집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고명한 것으로 삼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몸소 설하신 진리를 대하여서는 오히려 비평하고 검토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세속의 지혜요 변재요 총명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생의 팔난 가운데 하나가 됨이니 실로 가장 불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경전 1권을 얻으려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쇄술이 잘 발달하여 경전뿐만 아니라 각종 서적들이 정미롭고도 완전하게 잘 만들어져 읽거나 열람하기가 아주 용이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오히려 그럭저럭 세월만보내고 게을러지게 하기가 쉬워져서 그러다가 순식간에 숨 한 번 그쳐 세상과 이별해버리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대중들은 이 시를 잘 참고하여 수행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8, 지옥의 형이 멈추어지다.
링유법사는 당나라 때의 사람입니다. 서울에 살다가 대흥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장경 2년에 링유법사는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입적하셨는데 몸의 온기는 마치 살아있는 듯 따뜻하였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염을 하지 않고 있다가 7일이 지나자 과연 다시 예전처럼 살아나셨습니다.
링유법사께서 금강경 독송을 시작하자 돌연히 각 지옥에서 형을 받아 지져지고 묶여 고초를 받던 일들이 일시에 멈추어버렸습니다. 금강경 독송을 마치자 염라대왕이 찬탄하여 말하였습니다. “스님의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그대의 수명이 이미 다하였으나 부지런히 금강경 독송하신 인연으로 특별히 10년이 연장되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가시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금강경 독송하기를 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링유법사께서 이야기를 마치시자, 곁에서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모두 합장하고 금강경의 수승한 공덕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라왕이 고구정녕히 간곡하게 금강경독송을 권하였음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19, 죄업도 소멸하고 수명도 연장하다
당나라 인덕麟德 때의 일입니다. 쏭이룬宋義倫은 괵왕부虢王府의 전첨典籤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이룬은 명부의 사자들에게 붙잡혀서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염라대왕이 이룬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룬이 염라대왕을 향하여 감사의 절을 올리고 말씀드렸습니다.
염라대왕은 특별히 이룬을 위하여 명부관리에게 명하여 지옥을 둘러보게 배려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먼저 확탕지옥을 들렀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쇠가마솥이 한 줄로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가마솥의 아궁이마다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면서 솥을 데우고 있었습니다. 한편 형을 받은 사람들이 그 가마솥에 넣어져 삶아지고 있었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치는 절규는 차마 듣기 어려운 소리라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널따란 쇠로된 평상위에 수형인들이 눕혀져 있었는데 온 몸이 불에 굽혀져 시커멓게 타 들어가면서 외마디 소리를 슬프게 질러댔습니다. 이 때 이룬이 서쪽 편을 돌아보니 얼굴이 깡마르고 까무퇴퇴한 사람들 3명이 곁에 서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여인네의 차림새였습니다. 그녀들은 이룬을 향하여 자기들 머리를 때리면서 이렇게 하소연하였습니다.
또 계속해서 지옥을 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렀을 때, 이룬이 생각하기를 ‘시간이 많이 지나서 혹시나 가족들이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 버리지 않았을까’하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자에게 이젠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말하고서 서남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뒤에서 사자가 급히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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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천불동 http://buddhasite.net/dharmadhatu/bang.php?table=pdspre&query=view&l=9467&p=1&go=8#view_fir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