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의 벚꽃 (오행시)
옥 같은 봄빛은 담장 너머 환히 피어나는데
중첩된 그리움만 가슴 깊이 눈처럼 쌓이네
의미를 아는 꽃일수록 더 서럽게 흩날리고
벚꽃잎 한 장에도 조국의 아픔이 스며 있어
꽃보다 먼저 찢어지는 것은, 옥창 안 시인의 마음
[ 한시감상 ]
獄中見櫻花有感(옥중견앵화유감)/한용운/근대
昨冬雪如花(작동설여화)
今春花如雪(금춘화여설)
雪花共非眞(설화공비진)
如何心欲裂(여하심욕열)
지난겨울에는 눈이 마치 꽃 같더니,
이 봄에는 꽃이 마치 눈 같구나.
눈도 꽃도 모두 참된 것이 아니거늘,
어찌하여 이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픈가.
昨冬雪如花(작동설여화)
지난겨울에는 눈이 꽃과 같더니
昨冬 : 지난겨울
雪如花 : 눈이 꽃과 같다
→ 겨울의 눈을 꽃에 비유하며 시작합니다.
차갑고 하얀 눈이 마치 피어나는 꽃처럼 보였다는 뜻이지요.
今春花如雪(금춘화여설)
이 봄에는 꽃이 눈과 같구나
今春 : 이번 봄
花如雪 : 꽃이 눈과 같다
→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눈처럼 보입니다.
특히 벚꽃의 흰 빛과 흩날림이 눈과 겹쳐 보이죠.
雪花共非眞(설화공비진)
눈도 꽃도 모두 참된 것이 아니니
雪花 : 눈과 꽃
共非眞 : 함께 참이 아니다 / 모두 실상이 아니다
→ 여기서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섭니다.
불교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핵심 구절입니다.
如何心欲裂(여하심욕열)
어찌하여 이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픈가
如何 : 어찌하여
心欲裂 : 마음이 찢어질 듯하다
→ 앞 구절에서는 “모두 허망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지막엔 오히려 더 깊은 고통이 터져 나옵니다.
이게 이 시의 가장 큰 울림입니다.
이치를 알아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 한 줄 감상 ]
무상을 아는 눈으로 벚꽃을 바라보면서도, 조국과 자유를 잃은 아픔 앞에서 끝내 찢어지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시.
[ 짧은 묵상 느낌 ]
꽃은 눈처럼 흩어지고,
눈은 꽃처럼 스쳐 가지만,
사라짐을 아는 마음일수록
더 깊이 아파할 때가 있습니다.
출처: 하루한수 한시 365
만해 한용운은 갇혀있던 서대문형무소 옥창으로 겨울에 흩날리는 눈송이와 봄에 피었다 지는 꽃을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눈이 오고 꽃이 피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만해는 그 눈과 꽃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았으나, 그런 것들을 두고 마음이 미어지려 한 까닭을 몰라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