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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 (행 11장 19~26절)

작성자문제석|작성시간18.12.29|조회수147 목록 댓글 0

안디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119~26

 

초대교회는 주후 30년부터 시작해서

주후 4세기까지의 교회 역사를 말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역사적인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시작으로 해서

안디옥교회, 빌립보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로마교회 등이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가 세워지기 까지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을 하기도 하고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을 비롯해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빌립보교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마게도니아로 건너가 처음 세운 교회입니다.

빌립보는 로마가 식민지로 건설한 도시입니다.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퇴역군인들을 정착시켜 자유도시로 만든 곳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오히려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다가 옥문이 열렸지만

도망하지 않음으로 간수장을 회개시켰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왜 바울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을까요? 그는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빌립보교회가 정치적 박해를 받지 않게 하려고

바울은 그런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바울은 그곳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로마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고린도를 지나갔습니다.

이곳은 폐허 도시가 되었지만

로마가 다시 재건하여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키웠습니다.

고린도시내는 다닥다닥 붙은 상가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천막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렸던 것입니다.

고린도는 상업지역이기 때문에 성격들이 거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힘든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에베소교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에베소는 여타 도시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곳에는 길이가 130미터, 폭이 70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이 신전을 찾아온 순례객들에 의해서 경제적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데미 신상을 팔아서 수입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울이 들어와서 두란노 학당을 세우고

이곳에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더니

에베소 경제가 하향세를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더 이상 아데미 신상이 팔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매상일 것이라 생각되는 데메드리오가

직공들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킨 것입니다.

복음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수천년간 우상중심지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에베소까지도

복음이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는 초대교회는

사마리아에서, 데살로니가에서, 로마에서 크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곳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모교회로서 성령의 가장 큰 역사가 있었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곳이 있고,

에베소교회가 우상숭배의 중심도시인

에베소의 경제 흐름까지도 바꾸어 놓을 정도였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은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에 비하면

예루살렘에서 훨씬 가까운 도시입니다.

이곳은 예루살렘과 달리 훨씬 크고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안디옥은 로마 세계에서 셋째 가는 도시로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중요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의 시리아 통치에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습니다.

게다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유명한 철학, 의학, 수사학 학교가 있는 교육의 중심지였습니다.

 

안디옥은 다양한 종교와 관습이 허용되는 국제도시였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인, 시리아인, 유대인, 아랍인, 페니키아인, 페르시아인,

이집트인, 인도인, 로마인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세기 말 안디옥은 가로 세로 각각 3.2킬로미터와 1.6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좁은 땅 덩어리에 인구가 약 15만 명 정도 살았습니다.

주택밀도는 인도 캘커타 보다 더 높았습니다.

 

사실상 로마제국의 도시들은 작고 비좁았으며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저분했습니다.

제대로 된 집에 사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공동주택에서 살거나 작업장 위층이나

가건물 같은 곳 어디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둥지를 틀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슬럼가와 빈민가와 비슷했습니다.

 

안디옥의 중심가는 9미터 폭 밖에 되지 않았으며

주요 도로를 벗어나면 골목이 미로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골목마다 인슐라라는 공동주택이 밀집되어 있었고

여기서 나온 발코니 때문에 골목은 어둑했습니다.

공동주택은 현대의 빌라와 비슷하게 3~4층 정도 되었고

위생시설이 전혀 없었고 곧 무너질 것처럼 위험했습니다.

 

부잣집은 배설물을 오물통에 버렸지만 서민들은 시궁창에 버렸습니다.

수도는 도시에까지 공급이 되지만 서민들은 공동우물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물이 오염되어 물에다 포도주를 타서 먹어야 했습니다.

도시의 범죄와 무질서가 판을 쳐서

밤에는 밖으로 나와 다닐 수 없었습니다.

말이 국제도시이지 도시로서는 형편없는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이만해도 대단했으며 로마의 세 번째 큰 도시였습니.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곳에 복음이 전해졌고

이방인 최초로 안디옥교회가 생겨난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했을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풀어봄으로 말미암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안디옥으로 온 첫 번째 사람은 니골라입니다.

니골라는 초대교회 7집사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안디옥 출신의 사람이자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교로 개종을 했다가

초대교회의 7집사 중에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니골라가 기독교인으로서 최초로 안디옥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안디옥교회가 세워지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들어온 사람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북아프리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들이 안디옥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은 그의 도였습니다.

지금처럼 성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교 후원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그 도만을 가지고 안디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부활했다는

그것만 가지고 안디옥에 들어왔습니다.

 

안디옥에 들어온 그들은 국제도시 안디옥에 비하면 형편이 없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거무잡잡한 사람이었고

예루살렘이 아무리 유명한 도시라 해도 국제도시 안디옥에 비하면 어느 초라한 지방 소도시에 불과했습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국제도시 안디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하고 있습니다.

2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아멘

 

여기서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이곳에서 크게 펼쳐졌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사마리아에서도 일어났고

에베소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에베소에서는 바울의 손수건만 얹어 놓아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병이 기적처럼 낫고, 귀신이 물러가 새사람이 되었던 이야기가

인슐라를 통해 안디옥 시내 곳곳에 퍼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교회라고 하는 것은 이런 기적과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교회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활방식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말씀만 들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도만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무엇보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든 자,

굶주린 자들을 돌아보는 삶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고, 과부를 입혔으며,

갇힌 자를 찾아갔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귀신을 좇아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느 시대치고 이 정도 안 한 시대가 있겠습니까?

이 정도는 믿지 않는 사람도 하고, 우리 교회도 합니다.

그래서 뭐 이 정도 가지고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 하느냐?” 하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병든 자를 돌본다고 했을 때에 역병이 돌 때는 달라집니다.

2세기에 안토니우스 역병이 돌았을 때

유럽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사망률이 얼마나 높았던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사망자를 도시 밖으로 옮기려면

긴 행렬의 마차와 수레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방의 숱한 도시와 마을이

버려지거나 폐허가 되었습니다.

 

한 세기 후 유럽에 또 다른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로마에서만 하루에 5천명이 죽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난데 없이 병이 돌았고 ---

그 어느 재앙보다 끔찍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온 도시가 공황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기독교는 위로와 평화를 주었습니다.

이교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서둘러 도시를 떠났지만,

그리스도인은 도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의사 갈레노스마저 곧장 도시를 떠나

소아시아 시골에 있는 사유지로 내려가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당시의 전염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분명히 아주 많이 우리의 형제가 엄청난 사랑과 형제의 호의로

자신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지켜주었으며,

자신의 위험을 생각지 않고 병든 자를 찾아가 정성으로 섬기고

그들이 낫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돌보아주었습니다.”

 

디오니시우스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장사를 자냈는지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이들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펴주었고, 그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시신을 안아주었고, 시신을 씻기고 입혀 장례를 준비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으나 돌보던 사람들에게 드리웠던 죽음이

자신에게 옮겨놔 정작 자신이 죽었다.” 고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이교도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이교도들은 누구든지 아프기 시작하면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설령 가장 가까운 친구라도 멀리하며,

반쯤 죽은 채 고통당하는 자를 길거리에 방치하고,

죽더라도 전혀 거들떠 보지 않고 묻어주었으며,

죽음과는 그 어떤 소통이나 접촉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숱한 대적의 눈에 힘없는 자들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각인되었다.

저들이 서로 어떻게 사랑하는지 보라하고 말할 정도였다했습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율리우스 황제도 한 술 거들었습니다.

갈라디아의 대제사장에게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불경한 갈릴리인들은 자기네 가난한 자들뿐 아니라

우리네 가난한 자들까지 돌본다. 누구나 알듯이

우리네 가난한 자들은 우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안디옥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도하나만 전해 듣고도 이러한 삶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만 구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로마 세계가 지금의 세계와 매우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로마에는 여자 100명당 남자가 131명이었고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는 여자 100명당 남자가 140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여아가 태어나자마자 죽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여아가 태어나거나 장애인이 태어나면 그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쓰레기 더미에 버리거나 강물에다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때 기독교 공동체는 낙태와 유아 살해를 금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돌아다니면서 구할 수 있는 아이는 다 구해냈습니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 똥 무더기에서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똥 무더기에서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는 여성의 비율이 자연적으로 높아지게 되었고

누구든지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 주었습니다.

 

교회는 하층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이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두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통해서든지, 치유를 통해서든지, 똥무더기에서 구조되었든지

교회만 들어오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다른 저는 자, 문에서 구걸하는 자, 똥무더기에 버려진 아기,

사창가의 매춘부, 시장의 노예, 재산을 빼앗긴 자, 절망에 빠진 자,

죽어 가는자, 로마 시민권은 그야 말로 꿈일 뿐인 모든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교도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붙인 별명이 있습니다.

2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아멘

 

여기 보면, 안디옥의 제자들은 어떤 이름을 받게 되었다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리스 원어로 말하면 크리스티아니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크레스토스라는 말과 비슷하게 닮았습니다.

당시에 크레스토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괜찮다’ ‘쓸모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노예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층민이고 별볼일 없는 노예와 같은데

하는 것을 보니 괜찮고 쓸모있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자

누군가가 무심코 저들은 크리스티아니라고 하니까

그것이 유행을 타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미 갈릴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노예와 같은 행동을 보이셨고

노예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리스티아니, 즉 그리스도인은 그 도에 가장 적합한 말이 되었습니다.

안디옥의 사람들은 그 도의 말씀을 듣고 그 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을 결론 맺겠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사까지도 버린 전염병 환자들을 돌 봐

그들은 살고 자신은 죽는 그 신앙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었습니다.

똥무더기에 던져진 생명까지도 건져 돌봐주었습니다.

 

진정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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