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옷,가사(袈裟)이야기.
가사를 오래 수(垂)했다. 익숙하니 좋앟고 좋으니 오래 수한 것이다. 오래 수하니 여기 저기 낡고 떨어져서 양공하는 분께 맡겨서 수선했다. 가사 양공하는 보살님은 내가 느닷없이 동방불교대학 교학처장 소임 살 때 불교미술과 학생이었다. 당시 연세도 지긋했는데 대학에서 미술 전공하고 미인가지만 전통불교미술 가르치는 곳이라 공부를 이어가고 가사 양공까지 배워서 내 가사는 새로 짓기도 고치기도 주로 그 분이 하셨다. 아껴입고 고쳐 입고 법다이 입는 것을 좋아하니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아드님에게도 알려서 한 번은 가사 조성에 재정 기여도 하게 하셔서 더 고마운 마음이다. 고치고 나서 전해온 말씀이 '이제는 더 이상 고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사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수행자 또는 승려들이 입는 옷은 깨끗하고 화려한 새 옷이 아니었다. 그저 옷 가운데 낡고색이 바란 옷이었다. 인도 옛말 까사야씨와라 kāsāya-cīvara 였다. 씨와라는 빛바랜 낡은 옷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옷을 입어야 사람들이 잘 가지 않고 머물지 않고 살지 않는 숲 속,무덤가 같은 살기,머물기 좋지 않은 곳에서 명상하기 좋았다. 머물지는 않았다. 한나무 아래도 이틀 이상머물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런데 왕이 존경하고 부자가 존경하다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명상하다보니 머물게 되고 머물다 보니 살게되었다.
인도어 위하라,비하라가 절들이 많은 전통,문화에서 지역 이름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그리 지내는 이들이 입는낡고 빛이 바랜 옷이 가사였다. 한자로 가사를 쓰면 가사가袈가사사裟를 모아놓은 글자다.
가장낮은 곳으로 향하던 옷이 높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다보니 덩달아 높아졌다. 높아지다보니 색깔을 넣게되었다. 세계 어느 곳이나 종교인,왕들은 특별하게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믿음이야기들이 생겨났다,지어졌다.
종교인도 씨족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에 씨족의 지도자는 특별해야 하니 특별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생겨난다. 특별한 삶을 살려니 특별한 옷도 입게 되었다.
특별하다는 말은 하늘 또는 태양의 정기를 받아 산다는 말을하게 되고 입는 옷도 태양색을 입게 된닺
태양색은 어떤 색일까? 붉은 색도,노란 색도, 흰 색도,
검은 색도 태양을 떠올리는 색,상징색이다.
인도에서 태양색이라 보였던 노랑옷을 입은 승려가
유교,도교의 나라 중국에 가게되었다.
문화충돌에 해당하는 문제가 생겼다. 노랑색은 항제나
황족만 입는 전통,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바꿔입어야 하니 씨족,민족,나라 상관 없이 진리를 주제로 사는 이들이
복잡해졌다.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입혀졌다.
이른바 동쪽으로 간 까닭이 궁금한 보리달마의 법을 잇고자 한 혜가의 팔 잘라 진리 얻는(斷臂求法)이야기
옷을 입게되었다. 칼에 잘린 팔에서 튄 피가 가사를 물들여 노랑색 아닌 붉은 색이 되었다. 숭산 소림사에서 비롯한 중국불교 승려들의 붉은 가사이야기다.
중국, 한국 승려들 전통 또는 고승 가사가 붉은 가사인
까닭이다. 한중수행교류체험단장을 맡아 소림사,대상국사,백마사에 갔을 때 방장들의 가사와 내 가사가 같은 것을 보고 한국인들은 갸웃하고 중국인들은 끄덕인 배경이 거기에 있다. 다만,지금 중국 승려들은 황제 시대를 벗어나 노랑색 승복과 신발을 착용한다.
종교도 모든 것이 전통이요,문화일 따름이다.
남방테라와다 승려들과 북방 티베트,몽골 승려들은
의식법복과 생활복이 같은데 한국,중국,일본,비엣남,타이완승려들은 생활복과 의식 법복이 구별된다.
동아시아의 유교는 생활철학이고 도교만 종교라 인식하여 도교의 긴소매옷(長衫)을 입어야 종교인으로 인식되던 시기에 종교인이되 불교라는 다른 종교인으로 구별되기 위한 문화 그 위에 드리운 가사(袈裟)다.
조계종은 대한불교조계종을 표방하며 종조와 가사 바꾸기로 차별화는 핬으나 전통섬또는 정통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주장도 논리요 진리라고 하지만 전통이요,문화이며
자신 또는 남들이 그리 느껴야만 사실이다.
붓다의 가르침도 브라흐만교(요즘힌두교)의 가르침인
윤회(輪廻) 벗어남이 주제인데 우선 윤회를 믿어야
벗어남도 가능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붓다가 벗어나려고 애쓰고 가르쳐준 굴레를 되쓰는 격이지 그 또한 그러는 이의 느낌이자 앎이다.붓다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