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1 -
경전에는 깊은 선정을 성취하면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는 앎(宿住隨念智)이 일어난다고 설합니다.
한 생, 두 생은 물론이고 백 생.천 생.수만 생.수십만 겁의 생애까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태어난 곳, 이름, 삶의 과정까지 안다고 설명합니다.
이 대목을 두고
한쪽에서는 비현실이라며 경전을 부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문자 그대로 믿으며 전생을 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부정이라는 두 극단보다 먼저 물어야 합니다.
왜 이런 가르침이 설해졌는가?
부처님께서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수행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알려 주기 위해 선정을 닦으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수행의 목적은 언제나 괴로움의 소멸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부터의 해탈입니다.
그렇다면 전생을 기억한다는 가르침도 그 목적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억 능력은 유한한데 어떻게 수십만 겁의 일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는 문자 그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어요?”
부모가 웃으며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눈높이에 맞춘 표현입니다.
경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를 절대화하면 뜻을 놓치고, 방편으로 보면 가르침의 방향이 드러납니다.
경전은 신비한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괴로움의 소멸을 위한 길을 보여 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태어나고 사라집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반복되며,
조건만 갖추어지면 그 흐름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마치 윤회처럼 말입니다.
선정 속에서 보게 되는 것도 단순한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조건 따라 이어지는 의식과 업의 흐름, 그리고 괴로움이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괴로움이 어떻게 생겨나고 반복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만일 수십만 겁의 전생을 기억한다 해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해탈과는 무관합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집착과 무명을 알아차려 놓아버릴 수 있다면,
이미 생사의 고리는 끊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세 살 때 기억도 희미한데, 어떻게 수십만 겁의 전생을 기억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