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보성대원사ㅡ석현장

한용운스님ㅡ

작성자동하(지은스님)|작성시간26.06.16|조회수23 목록 댓글 0

한용운스님 ㅡ나룻배와 행인 헤르만 헷세의 ㅡ싯달타

나룻배와 행인은 한용운 스님의 시 중에서 '보살사상(菩薩思想)'이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시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나룻배'는 보살(菩薩)을, 행인'은 구제받아야 할 중생(衆生)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보살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인데, 시 속에서 나룻배가 행인을 대하는 태도에 이 보살사상의 핵심 요소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보살은 중생이 자신을 해하거나 외면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끝없는 자비로 감싸 안는다.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나는 바람을 맞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인은 나룻배를 '흙발로 짓밟고', 강을 건넌 후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린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서운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나룻배는 그저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묵묵히 행인을 기다린다.

이는 중생의 어리석음과 모진 태도까지도 무조건적으로 포용하고 섭수하는 보살의 '대자대비의 마음이다.

​보살은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열반 언덕으로 인도하는 존재이다.

​"나는 당신을 안고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여기서 '깊고 얕고 급한 여울'은 중생들이 살아가는 고통스럽고 험난한 사바세계를 뜻한다. 나룻배는 자신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행인을 안전하게 건네주기 위해 온갖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보살의 실천적 성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불교의 '소승적 관점에서는 혼자만의 해탈을 중시하지만, '대승'의 보살은 다르다.

보살은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고통 속에 남아 있다면 성불을 미루고 사바세계에 남겠다고 서원한다.

​"당신은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룻배는 행인이 떠났다고 해서 혼자 저 멀리 가버리지 않는다. 강가에 그대로 머물며 '날마다 낡아 가면서도' 행인을 기다린다.

고통받는 중생들이 있는 이 세상(나루터)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보살의 위대한 서원이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라는 가슴 아프고도 숭고한 구절에 담겨 있다.

​나룻배 (보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끝없이 인내하며 기다리는 존재
​행인 (중생): 보살의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흙발로 짓밟으며 떠나가는 어리석은 존재
​여울을 건너는 행위 ㅡ고통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중생을 인도하는 보살행


님의 침묵이 이별의 슬픔을 우주적 진리로 승화시킨 깨달음(지혜)의 노래라면, 나룻배와 행인은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중생을 위해 헌신하는 보살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ㅡㅡㅡㅡㅡㅡ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 싯다르타가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뱃사공이 되고, 그에게 깨달음을 준 스승 역시 뱃사공 ‘바수데바’이다.

불교의 보살사상은 강(江)’이 가진 종교적 상징성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헤세는 동양 철학과 불교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만큼, ‘뱃사공’이라는 직업을 가장 높은 경지의 영적 안내자로 설정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고통스러운 사바세계를 고통의 바다)'에 비유하고, 깨달음의 세계를 저쪽 언덕이라고 부른다.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이 뱃사공과 보살의 임무이다.

스스로는 이미 강을 건널 수 있는 지혜가 있지만, 아직 건너지 못한 이들을 위해 강가에 남아 묵묵히 노를 젓는 싯다르타의 모습은 한 명의 중생이라도 더 구제하려는 대승불교의 ‘보살(菩薩)’ 그 자체이다.

​소설 속에서 싯다르타는 수많은 지식인, 금욕주의자.심지어 부처인 '고타마'를 만나서도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

말과 교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뱃사공 바수데바는 말로 설법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할 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들어주는 위대한 경청자이다. 싯다르타는 이 뱃사공의 삶을 이어받으면서, 지식을 넘어선 진짜 ‘지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침묵 속에서 깨닫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뱃사공은 평생 강가에 머무는 사람이다. 이 소설에서 '강'은 우주의 진리,법法, Dharma를 상징한다.
​강물은 과거에도 흘렀고, 현재도 흐르며, 미래에도 흐르지만 언제나 바로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 시간의 연속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싯다르타는 뱃사공이 되어 강물을 바라보며 모든 삶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연기설), 성공도 실패도, 기쁨도 슬픔도 결국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라는 화엄적 깨달음을 얻는다.

이같은 진리를 매일 몸으로 겪는 직업이 바로 뱃사공인 것이다.
​싯다르타는 왕자로 태어나 최고의 지식을 섭렵한 엘리트였고, 이후에는 세속에서 권세를 누렸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박하고 가난한 ‘뱃사공’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명예와 집착,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았음을 의미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의 짐을 날라다 주는 겸손한 삶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 부처,깨달은 자가 된 것이다.

한용운의 시에서 '나룻배'가 중생을 위해 낡아가는 보살의 자비심을 보여주었다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뱃사공'은 세상의 대립을 포용하는 강을 닮아 가며, 말없이 중생의 영혼을 피안으로 건네주는 완성된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양의 시인과 서양의 소설가가 나룻배와 뱃사공이라는 같은 상징을 통해 인류 보편의 위대한 깨달음을 노래한 것이다.

사진 1번 만해 한용운

사진 2번 헤르만 헤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