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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대원사ㅡ석현장

한용.운 만해스님의 님의 침묵과

작성자동하(지은스님)|작성시간26.06.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한용운 만해스님의 님의 침묵과 김시습 설잠스님의 화엄경 십현담 요해

님의 침묵에는 불교의 화엄사상이 깊게 녹아 있다.

​화엄사상의 핵심은 대립하는 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융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사사무애, 事事無礙)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라는 인식이다.

​님의 침묵에서 화엄사상이 어떻게 시적으로 표현되었는지 구체적인 구절과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생(生)과 사(死), 이별과 만남의 융합

​화엄사상에서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같은 모순된 개념들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큰 진리 안에서 소통한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 구절은 만남 속에 이미 이별의 씨앗이 있고, 이별 속에 이미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이 들어있음을 말한다.

만남=이별', '이별=만남'이라는 역설적 구조는 대립물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순환 고리로 파악하는 화엄적 원융무애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역설을 통한 부재(不在)와 현존(現存)의 일치

​화엄의 눈으로 보면 '없는 것'과 '있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외적으로 님은 떠나고 없지만 화자의 내면과 불교적 진리 안에서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님은 '가버림'으로써 오히려 화자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역설이 성립한다.

이처럼 현상적인 부재를 본질적인 현존으로 승화시키는 인식 역시 화엄사상의 사사무애적 경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슬픔의 에너지를 희망으로 바꾸는 힘은 번뇌즉 보리이다

​화엄경에서는 중생의 번뇌가 곧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고 가르친다.

슬픔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 자체를 관조하여 깨달음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화자는 이별의 극심한 슬픔에 무너지지 않고, 그 슬픔의 에너지 자체를 거대한 '희망'의 에너지로 180도 전환시킨다.

슬픔이라는 부정적 현실이 희망이라는 긍정적 가치로 통하는 이 대목은, 화엄사상의 역동적인 실천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표현이다.

​님의 침묵을 감싸 안는 '사랑의 노래'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여기서 '님의 침묵'은 불교적으로 보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우주의 진리이다. 역사적으로는 상실된 조국과 중생의 고통을 뜻한다.

화자는 자신의 작은 '사랑의 노래'로 그 거대한 '님의 침묵'을 감싸 안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작은 노래가 우주적 침묵과 진리를 포용하고 하나가 되는 순간, 화엄에서 말하는 법계(法界)의 조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눈에 보는 화엄사상 표현

​이별과 만남의 공존: 헤어짐은 곧 만남의 시작이라는 순환적 인식

​결국 〈님의 침묵〉에서 화엄사상은 관념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침묵하는 세계와 내가 어떻게 다시 하나가 될 것인가를 노래한다.

​한용운 스님이 님의 침묵을 쓰기 직전, 오세암에서 마주했던 텍스트가 바로 설잠스님으로. 불린 김시습의 주석이 담긴 책이었다.

​만해가 오세암에서 보고 주해를 달았던 책은 설잠스님이 주석을 붙인 화엄경 십현담 요해(十玄談料解)였다. 만해는 여기에 자신의 해석을 더해 십현담 주해(十玄談註解)라는 책을 펴낸다.

화엄사상과​ 만남이 왜 님의 침묵의 탄생에 결정적이었는지, 그 비밀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분개해 세상을 등지고 승려가 된 설잠스님은 설악산 오세암에 머물며 당나라 동안상찰 선사의 선시(禪詩)인 《십현담》에 주석을 달았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1925년 여름, 일제강점기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던 만해 한용운이 오세암에 들어와 설잠스님의 주석을 발견하였다.

만해는 《십현담 주해》 서문에서 이때의 감격을 이렇게 적었다.

​"매월당이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중옷을 입고 오세암에 머물 때 지은 것이다. ... 수백 년전의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십현담(十玄談)은 화엄사상의 깊은 철학적 원리를 10편의 시(詩)로 풀어낸 선종(禪宗)의 텍스트이다.

마음의 본질, 현묘한 기틀, 현상과 본질의 통일 등 화엄의 핵심 교리가 시적인 은유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설잠스님 역시 의상대사의 화엄사상을 선(禪)으로 해석한 《화엄일승법계도주》를 남겼을 만큼 화엄학의 대가였다.

​만해스님은 1925년 6월 오세암에서 이 《십현담 주해》를 펴낸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인 1925년 8월,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을 완성한다.

​설잠스님이 남긴 화엄 선시들을 치열하게 읽고 주해를 달면서 얻은 종교적 깨달음과 시적 영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직후, 그 에너지가 그대로 폭발하여 쓰인 국문 시집이 바로 《님의 침묵》인 것이다.

오세암에서 만해가 본 것은 설잠스님이 주석한《십현담》이었다.

세상을 등진 채 지조를 지켰던 선배 구도자 '설잠'의 정신, 그리고 그 책에 담긴 '화엄의 시적 원리'를 만해가 온전히 이어받았다.

1926년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역설의 미학 《님의 침묵》이 탄생한 것이다.

금년 2026년은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사진 1번 만해 한용운 스님 진영 배경으로 님의 침묵이 흐른다.

사진 2번 김시습의 출가시절 설잠스님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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