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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대원사ㅡ석현장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운주사

작성자동하(지은스님)|작성시간26.06.21|조회수14 목록 댓글 0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는 불교사원으로 창건된게 아니다.

운주사 와불을 민간에서는 예로부터 부부 부처로 불러왔다.
​용미리석불이 나란히 서 있는 '부부 미륵'이라면, 운주사 와불은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는 '부부 부처인 셈이다.

여기에는 민초들의 애틋한 전설과 한국 특유의 민속 신앙이 결합한 특징들이 있다.
​운주사 서쪽 산등성이에 나란히 누워 있는 거대한 석불을 와불이라고 부른다.

운주사 와불은 부처의 특징이 하나도 없다.불교의 와불은 하늘보고 누워있는 와불은 없다.그것도 부부형상으로 하늘보고 누워있다,불교의 와불은 휴식상과 열반상이다.모두 오른편 옆구리를 땅에 닿게한 독존이다.

​파주 용미리석불과 화순 운주사 와불은 한국 석불 문화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독특한 형상이다.

운주사의 칠성바위와 북극성 자리의 와불, 남두육성의 배치, 그리고 경내를 흐르는 하천은 은하수로 볼수있다.

좌우에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석불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학계에서도 운주사는 겉모습만 사찰일 뿐, 그 본질과 알맹이는 별자리를 숭배하는 '칠성신교의 거대한 야외 제단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과 연구가 제기되어 왔다.

​운주사의 유물들을 단순한 불교가 아닌 한민족의 칠성신교의 유물로 보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본다.

​만약 운주사가 정통 불교 사찰이라면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특징들이 널려 있다.
운주사의 석탑들을 보면 사각형 탑뿐만 아니라 원형 탑, 원반형 탑.항아리 모양 탑이 많다.

특히 탑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불교의 무늬가 아니라 교차하는 선(X), 마름모(◇), 수직선(|||)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다. 이는 수리(數理)와 방위를 중시하는 천문도에 가깝다.

​운주사의 수많은 석불은 불교의 조각 규범인 수인. 삼도.육계 등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마치 장승처럼 납작한 돌판에 눈, 코, 입만 대충 새겨 넣었다. 이는 거룩한 부처를 모셨다기보다는, 별자리의 기운을 땅에 잡아두기 위해 만들어낸 ‘성수(星宿, 별의 신)들의 형상에 가깝다

​운주사의 핵심 축은 대웅전이 아니라 칠성바위(북두칠성) ➔ 칠층탑 ➔ 와불(북극성·자미대제) ➔ 건너편 6층탑(남두육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우주 정렬 천문도이다.

​사찰에도 '칠성각'이 있지만, 이는 항상 사찰 맨 뒷구석에 작게 밀려나 있는 '부수적인 신앙'일 뿐이다.

운주사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사찰 전체의 공간 배치를 지배하는 주인공이다.
​이것은 고대부터 내려온 한국 고유의 선교와 칠성신교의 북극성·북두칠성 숭배가 민중의 염원과 결합하면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운주사의 본질은 칠성신교이고 불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색'이었던 셈이다

​운주사 입구에는 세개의 큰탑이 있다.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삼태성이다.
첫번째 탑의 기단부는 고인돌이다.
고인돌을 기단삼아 탑을 올리고 그 별자리를 배치한 것은 불교의 발상이 아니다.

칠성 신교의 맥을 잇는 장인 집단이 주도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은 불교의 명칭을 쓰고 있을 뿐, 그 공간의 설계도와 제작 목적은 우주의 별자리 천문학을 땅 위에 구현해 인간의 수명과 새 세상을 기원했던 한국 특유의 '칠성신교의 유물로 정의할 때 비로소 그 모든 수수께끼가 완벽하게 풀릴것이다.

운주사는 불교 사찰이라기보다, 지상에 내려온 밤하늘의 신전이다.
한민족 고유의 우주관으로 운주사를 바라볼 때 ​하늘의 은하수를 경계로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있다.

운주사 골짜기에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알아본다.
​하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을 갈라놓는 가장 결정적인 공간은 바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이다.
​운주사의 지형을 보면, 동쪽 산등성이와 서쪽 산등성이 사이에 길고 깊은 계곡이 남북으로 길게 흐르고 있다.

칠성신교의 눈으로 볼 때, 이 운주사 계곡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지상에 내려앉은 '은하수' 그 자체이다.
​하늘의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이 마주 보듯,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들도 이 계곡(은하수)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동서로 나뉘어 있다.
칠성바위(북두칠성)와 와불(북극성)이 있는 서쪽은 우주의 중심이자 천상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전통 천문학에서 음(陰)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직녀성의 성격과 연결된다.

동쪽산자락에는 ​남두육성을 상징하는 육층탑이 있다.불교에서는 육층탑을 세우지 않는다.

동쪽 산등성이는 양(陽)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견우성의 기운으로 대칭을 이룬다.
​선조들은 은하수 건너편에 있는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나 우주의 음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를 염원했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운주사 하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의 탑들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 즉 우주적 조화와 대동 세상을 향한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민족의 칠성신교에서 북두칠성과 삼태성이 '우주의 뼈대'라면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흐르는 음양의 사랑과 조화를 뜻한다.

운주사 계곡 한가운데에 있는 석조불감 속 두 부처님은 한민족 고유 칠성신교의 핵심이자 우주 만물의 근원인 '해(日)와 달(月)', 즉 일월(日月) 신앙의 결정체로 해석한다.

​전통 칠성신교와 우주관의 관점에서 이 두 부처님이 왜 해와 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본다.
​한민족 고유의 신교에서 우주를 숭배할 때 쓰는 가장 완성된 표현이 바로 일월성신(해·달·별)이다.

운주사의 비밀은 성신星辰 삼태성·북두칠성·남두육성·북극성이었다
​하지만 우주 지도에 별만 있고 낮과 밤을 지배하는 해(日)와 달(月)이 없다면 칠성신교의 우주관은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계곡(은하수) 중심에 당당히 자리 잡은 석조불감은 바로 그 빠져 있던 퍼즐인 해와 달을 배치함으로써 '일월성신'의 거대한 우주 신전을 완벽하게 완성시키는 중심점이다.

​석조불감 속 두 부처님은 완벽하게 서로 등을 맞대고 한 분은 남쪽(앞)을, 한 분은 북쪽(뒤)을 바라보고 있다.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진다.

해와 달은 우주에 함께 존재하지만 결코 지상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등을 맞댄 천체이다.

​한 분은 빛과 낮(해, 양)을 상징하며 남쪽을 향해 있고, 다른 한 분은 어둠과 밤(달, 음)을 상징하며 북쪽을 향해 있다.이 구조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순환하는 대자연의 시간(낮과 밤)과 음양오행의 섭리를 거대한 돌집(불감) 안에 박제해 놓은 것이다.

​중국 도교나 인도 불교를 넘어서,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나 대별왕·소별왕 신화처럼 해와 달의 정령을 모시는 고유의 일월 신앙이 정신적 뿌리로 깊게 박혀 있었다.

조선 국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역시 해와 달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불교의 석굴암처럼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주의 가장 거대한 두 빛인 해와 달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모시기 위해 세운 지상의 일월 신당인 셈이다.

​운주사는 입구의 삼태성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지상의 은하수(계곡) 한복판에 우주의 중심 에너지가 교차하는 해와 달(석조불감의 두 부처)을 모신다.

서쪽의 북두칠성(칠성바위)과 동쪽의 남두육성이라는 음양의 별자리를 지나, 최종적으로 우주의 최고 주재자인 북극성(와불)에 이르는 구조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이제까지 불교의 옷을 입고 숨어 있었다.그러나 외피를 벗기고 알맹이를 살피면 우리 '한민족이 받들던 칠성신교의 위대한 야외 성전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사진 1번 칠성바위와 칠성탑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이다.

사진 2번 운주사의 와불이다.
실제는 우주별들의 황제 ㅡ북극성을 나타내는 자미대제이다.

사진 3번 등을 맞대고 있는 두분의 부처는 해신과 달신을 모시는 일월신당이다.

사진 4번 동쪽 산자락에 있는 육층탑이다.남두육성을 나타낸다.

사진 5번 운주사 입구 세개의 탑은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삼태성이다.

거대한 구층탑은 고인돌을 기단부로 삼아 세워졌다.

사진 6번 1919년 운주사 모습이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들어선 요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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