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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ㅡ화엄경 강설

무비스님 화엄경강설 81ㅡ11

작성자동하(지은스님)|작성시간25.12.27|조회수29 목록 댓글 0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81】 11


(5) 업장을 참회하다

復次善男子야 言懺除業障者는 菩薩이 自念호대 我於過去無始劫中에 由貪瞋癡하야 發身口意하야 作諸惡業이 無量無邊하니 若此惡業이 有體相者댄 盡虛空界에 不能容受리라

“선남자여,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지나간 세상 아주 오랜 겁 동안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으로 몸과 말과 생각을 놀리어 온갖 악한 업을 지은 것이 한량없고 가없으니, 만일 그 악한 업이 형상이 있다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그것을 다 용납할 수가 없으리라.



我今悉以淸淨三業으로 徧於法界極微塵刹一切諸佛菩薩衆前하야 誠心懺悔하고 後不復造하야 恒住淨戒一切功德이라하니라

내가 이제 청정한 세 가지 업으로 법계에 두루 한 아주 작은 먼지수와 같이 많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대중 앞에 지성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며 깨끗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항상 머물리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이면 我懺乃盡이어니와 而虛空界와 乃至衆生煩惱가 不可盡故로 我此懺悔도 無有窮盡이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이와 같이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야 나의 참회도 끝나려니와, 허공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끝날 수 없으므로 나의 이 참회도 끝나지 않습니다. 염념이 계속하여 잠깐도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강설 ;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있어서 하는 참회만은 아니다. 자신의 업장과 다른 사람의 업장까지 모두 다 참회한다. 세상이 이처럼 어렵고 힘들고 고통이 많은 것은 그 원인이 대개는 사람들이 악한 업을 지어서 돌아오는 결과다.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 더 가지려고 탐욕을 부려서 생명을 빼앗고, 재산을 빼앗고, 나라를 빼앗고, 권력을 빼앗느라고 숱한 악업을 거침없이 짓는다. 권모술수와 음모를 꾸며서 사정없이 빼앗는다. 인류역사에 벌어진 모든 전쟁은 더 가지려는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탐욕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의식주가 충분하건만 더 가지려고 막무가내로 자연을 훼손하여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피해는 또 얼마인가.

성내는 일도 탐욕에 버금간다. 사람과 사람관계에서의 싸움이나 전쟁이 대개는 탐욕이 원인이지만 때로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일어나는 싸움과 전쟁도 적지 않다. 전쟁에 소모되는 인명과 물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나라와 나라사이가 그렇고 사람과 사람사이도 그렇다. 그로 인하여 저지르는 악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찍이 당신의 고국 카필라성을 침범하여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이웃나라가 있었건만 마음을 텅 비우고 맞서서 싸우지도 않았고 원한을 품거나 원수를 갚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참고 견디고 용서하는 그것만이 해결의 열쇄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탐욕과 분노 못지않게 어리석음이 또한 악업을 짓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리석음이란 지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실은 탐욕을 부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음 때문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도 없고 분노도 없다. 모든 재산도 권력도 부귀영화도 그 근원을 알며, 모든 존재의 근본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으므로 결코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면 모든 악업의 근본 원인은 어리석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어리석어서 남의 말이 먹히지 않거나 도대체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쇠말뚝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악업을 지을 수밖에 없다.

악업을 짓는 데는 몸과 말과 생각, 이 셋이 모두 동원이 된다.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탐진치(貪瞋癡)를 부려 갖은 악업을 다 짓는다고 흔히 말하고 있다. 내가 지었거나 남이 지었거나 그 지은 악업이 만약 형상이 있다면 얼마나 클까. 경전에서 말한바 대로 저 드넓은 허공으로도 그것을 다 수용하지 못하리만치 크고 많으리라. 그것을 본래로 청정하여 텅 비어 없는 신구의 삼업으로 참회한다고 한 것은 신구의의 세 가지도 텅 비어 없으며, 그 셋이 짓는 업도 또한 텅 비어 없는 도리를 아는 일이다.

경전에 말하기를 “죄업이란 자성이 없는데 다만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것도 궁구해보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죄업의 근본 바탕인 마음이 근본 실체가 없다면 실체가 없는 것 위에 건립된 죄업이 또한 존재할 수 없는 이치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죄업도 없고 마음도 없어서 모두가 청정하고 텅 비어 공적한 그 무엇뿐이다. 이것이 사람 사람들의 본래의 참 모습이다. 없는 죄업을 참회할 것이 없지만 굳이 참회라고 한다면 이것이 참다운 참회라고 할 것이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참회가 없는 참회를 무수한 부처님과 보살대중 앞에서 이 몸과 이 마음을 다해서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하는 것, 이것이 또한 자신을 철저히 관리할 줄 아는 아름다운 보살의 쉼 없는 정진이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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