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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전심으로 예배하라 (대하40)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19.05.05|조회수276 목록 댓글 0

전심으로 예배하라 (대하40)

찬송 : 예수 열방의 소망

성경 : 역대하 255-16

 

거룩한 주일 아침이다. 오늘도 겸손한 예배자로 주님을 예배하는 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목사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자리는 예배자의 자리를 놓치는 것이다. 설교하는 것이 마치 누구를 가르치는 것처럼 생각되어 예배자의 자리를 놓칠 때가 많다. 주님, 오늘도 겸손한 예배자로 주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 예배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오늘 어떤 말씀으로 예배자로 나가는 나를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아마샤가 에돔과 전쟁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용병 십만 명을 은 백달란트를 주고 사서 고용하였다. 이에 한 선지자가 이 일을 책망하고 경고하니 아마샤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9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잘못된 결정을 알면서도 은 백달란트로 인하여 고민하는 아마샤의 모습이 오늘 아침 말씀가운데 울림있게 다가온다. 한 달란트가 3.4키로 이므로 백 달란트는 3.4톤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은이다.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엄청난 액수의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무려 십만 명의 목숨값을 지불한 것이니 그 대가가 상당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돈을 다 주고서 취소하면 그 값을 받을 수 없으니 아마샤의 고민은 당연한 고민이다. 오늘의 돈으로 환산한다면 한 달 월급 300에 생명수당까지 합쳐 최소 500이라고 쳐도 십만명이면 얼마인가? 5천억원 ...

 

잘못 시작된 일을 멈추는 것은 이렇게 엄청난 대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런데 아마샤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이 한 경고의 말씀을 듣고 멈출 수 있었다. 10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한 번 잘못 판단하고 그 일을 돌이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샤는 이것을 돌이켰다. 그러나 용병들은 이 일로 심히 노하였다고 한다. 아니 그들이 이미 은 십만 달란트를 받았는데 왜 노하였을까?

 

심지어 이들은 나중에 유다의 성읍을 약탈하고 삼천의 유다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으며 많은 물건을 노략해갔다.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손해를 당하고 있는가?

 

주님께 묻지 않고 세상과 짝한 단 한 번의 결정이 아마샤 인생을 이토록 발목 잡게 되었다. 이것뿐이 아니다. 이렇게 멈추긴 했지만 아마샤는 에돔을 이기며 그곳에서 우상을 가져와 섬기는 아버지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여기 표현된 단어중 신들이란 표현으로 봐서 아마샤는 에돔이 숭배하던 다신들을 가져왔고 하나님과 함께 그것들을 섬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상적인 방식으로 신이 많으면 더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노하여 선지자를 보내 다시 책망하신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하나님은 진노하여 선지자를 보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지적하며 책망을 하였다. 전쟁을 앞두고는 선지자의 책망앞에 은 백 달란트를 포기하였던 아마샤가 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와서는 교만해 져서 이 말을 듣지 않고 놀랍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16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아마샤에게 에돔과의 전쟁의 압승은 그로 교만병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잖아도 그의 신앙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 교만이 들어가니 선지자를 향하여 맞으려 하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선지자의 경고를 외면하기까지 하여 심판을 자초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은 일백 달란트의 손해와 삼천의 백성이 죽고 많은 노략물을 탈취당하는 일로 이어졌음에도 아마샤는 깨닫지 못하고 에돔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생각과 달리 십만의 이스라엘 용병을 보내고도 압승을 하는 결과를 놓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지 않고 자신이 교만해지는 엉뚱한 변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했던 것이다. 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본문에 나오는 아마샤는 딱 이 말씀이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주님은 오늘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아마샤의 신앙은 하나님께 전심을 드리지 못하는 신앙이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아버지의 비참함을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이들에 손에 왕위에 올려져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다. 결국 작은 성취에 원수를 갚으며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작은 승리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고 결국 심판의 자리고 가고 있다.

 

전심을 드리는 신앙, 그저 사람에게 보이려는 신앙은 결국 깨닫지 못하고 교만해져서 심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음을 주님은 말씀하시며 오늘 나의 신앙의 삶이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다.

 

오늘 거룩한 주일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전심을 다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승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진정한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주님, 오늘 이 종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서기 원합니다. 진실로 작은교회에 하늘부흥을 꿈꾸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여 나의 전심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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