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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2-59)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2.02.21|조회수448 목록 댓글 0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2-59) 2022년 2월 21일(월)

찬양 : 주를 위한 이곳에

본문 : 고전15:29-34절 ☞ https://youtu.be/gmR7QlcGBt4

 

이제 또 한 주간을 시작한다. 사관학교 개강 준비와 앱 개발 준비로 바빠진 금주간이다. 3월 개강을 통해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인도하소서. 함께하는 모든 후원자와 작은교회들을 코로나 속에서도 붙잡아 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파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30-31절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분명한 사실은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기에 어떤 위험에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바울은 이 세상에서 고난 당하고, 핍박 받는 것을 자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런 고백이 큰 울림으로 들려지는 날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는 매일 죽는 것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고난 뒤에, 비교할 수 없는 부활의 영광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으로 그는 날마다 죽을 것 같은 자리를 당당하게 살았던 것이다. 32절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극심한 환난 속에서 사역했다. 얼마나 치열한 환난이었는지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이 ‘맹수와 더불어 싸운’ 격투사와 같이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삶이었기에 이런 고백을 할까?

 

여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맹수와 더불어 싸운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그는 은유적으로 자신이 모진 고통을 참아가며 죽을 각오로 복음을 위하여 싸운 것이 그토록 힘겨운 싸움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맹수와 더불어 싸운 것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자리였음을 묵상케 된다.

 

그럼에도 부활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를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싸워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부활이 없다면 ‘어짜피 죽으면 끝인데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지 않았겠는가?’하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도 그와 같이 쾌락을 위하여 살아가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며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면서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거짓 주장에 속지말라 권면한다. 33-34절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똑바로 생각하십시오. 깨어나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더 이상 부활의 사실에 대해 오락가락하지 마십시오. 지금 같은 시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부릴 사치가 아닙니다. 이러한 일을 오래도록 방치하다니 여러분은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찌 죄를 짓고 악행을 일삼고 세상 쾌락에 빠져 살겠는가?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거짓말하는 악한 사람들의 꾀임에 빠져 선한 삶을 더럽히지 말고, 깨어서 의를 행하라고 아직도 머뭇거리는 삶은 부끄러운 삶이라고 권면 겸 책망을 하고 있다.

 

오늘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부활을 믿는 신앙의 삶이 무엇인지를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 땅의 삶이 끝이 아니고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 진리를 붙들고 바르게 살아가는 삶이 바울처럼 날마다 죽어야 하는 쉽지 않은 삶이 이 세상에 있다.

 

바르게 사는 삶이 오히려 비난받고 어리석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가기에 왜 나만 이래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운 삶이 있다. 어제도 예배를 마치고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충성스러운 삶을 살면서 힘겨운 그 자리가 너무 버거워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고백이었다.

 

그분의 충성됨을 알기에 그분의 고백이 더욱 더 공감되었다. 얼마나 힘겨울까? 아마도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노라>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이후에 저 하늘의 분명한 심판이 있고 그분의 공정한 보응이 있기 때문에 오늘이란 시간 <남들처럼>이 아니라 진리를 붙들고 씨름하며 달려가는 것이다. 아멘.

 

오늘 주님은 부활신앙을 점검하신다. 세상이 교묘하게 선한 행실을 더럽히기 위해 달려오는 이때 깨어서 죄악을 거부하며 의를 위하여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바울처럼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라고 하신다. 아멘. 아멘. 아멘.

 

주님, 오늘도 깨어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이 하루를 살아가렵니다. 선한 삶을 더럽히려는 어떤 유혹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울처럼 날마다 죽는 자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이 종을 붙들어 주소서. 이 종안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흔들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꼭 붙잡아 주시고 부활의 그 날을 소망하며 굳건하게 이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2022년 중보기도 요청>

1. 30억 씨앗자금을 통해 작은교회에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게 허락하소서.

2. 온라인 플렛폼을 통해 작은교회(젊은세대사역자)의 다리가 되게 하소서.

3. 2022년 예수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춘 새로운 라마나욧을 준비케 하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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