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의 가난함이 있는 기도자로 (눅 3-131)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찬양 : 내 주의 보혈은
본문 : 눅 18:9-14절
☞ https://youtu.be/ApLpTU3VqZA?si=URfx9HYMLhz-2JMw
어제는 땡스기브와 전체적인 업무협약을 맺고 선교회 강의실 공간을 새롭게 세미나 공간으로 꾸미는 공사를 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으로 통일되었던 선교회 공간에 세미나실을 도드라진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물론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소중한 헌신으로 함께해 준 땡스기브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7주차 수업의 날이다. 이제 절반을 지났다. 소중하게 보내지 않으면 시간을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이란 시간에 주님이 주실 은혜가 지나가지 않고 우리 안에 머물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제 건강도 많이 좋아졌음에 감사드린다. 좋아졌다고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야 함을 지난주 뼈저리게 배웠다. 4월까지는 워밍업을 하는 식으로 체력을 다져가며 조금씩 나아가련다.
고난주간 넷째 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해 비유를 전하는 내용이 나온다. 10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세상에는 서열이 있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만민에게 열려 있는 공평한 공간이다. 그래서 찬송가는 주의 친절한 팔, 그 크신 팔, 영원한 팔이라고 주님의 팔을 세 가지로 전하고 있다.
성전에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갔다. 세상적으로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세리는 민족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죄인된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성전에 나아갔다. 이 둘이 그 어떤 장애물없이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성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둘의 기도를 이렇게 알게 하신다.
바리새인의 기도 특징을 예수님은 따로 서서 기도했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 즉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음을 강조하고 세리와 비교하는 기도라고 했다. 거기에 자신의 금식과 십일조 등 행위를 드러내는 기도였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는 기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신다.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간 사람은 세리의 기도였다고 하시며,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겉으로 보기에 경건했다. 그러나 자기를 인정받으려는 기도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기도였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얼굴도 들지 못하는 한 마디로 영혼의 비명이었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회개였다.
눅 18:1-8절에서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부르짖는 기도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자기를 낮추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기도는, 나를 모르시는 하나님 앞에 나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그분의 자비를 입기 위해 조용히 무릎 꿇는 자리다. 더 나아가 이 세상 그 어떤 권세와 문제와 절망보다 크신 하나님 앞에 그분의 뜻을 구하며, 동행을 요청하며 서는 자리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본문을 통해 내게 다가오는 메시지는 주님께 나를 알리려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많음을 깨닫게 하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영혼의 비명은 사라지고, 주님을 향해 바리새인처럼 비교와 정죄와 알림만 있는 기도들이 많아졌다고 경고 울림을 주신다.
인정한다. 늘 무엇을 지키려는 삶이 아니라, 순종되는 삶을 추구하려고 했다. 그런 내 안에 영혼의 비명과 긍휼을 구하는 간절함이 빠진 바리새인의 기도로 채워졌음을 회개한다.
내게 맡긴 삶의 자리에 주님의 긍휼과 성령의 터치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의 변화가 고난주간 꼭 필요한 시간임을 고백한다.
심령의 가난함을 다시 갈망합니다.
주님, 이 종을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실을 안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제가 지키려 드는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령이여, 오셔서 심령의 가난함 속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비명을 회복하게 하소서. 이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기도하게 하소서. 다시 믿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한 줄 정리 :
<심령의 가난함에서 나오는 영혼의 비명을 가진 기도자가 되자.>
중보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가 하나님의 뜻을 담아 출판되도록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이 주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이 시대를 이끌 진짜 목사가 세워지도록
3. 30억의 재정 공급을 통해 선교회가 새로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4. 라마나욧선교회 행정 시스템이 섬김을 위한 최적의 구조를 찾도록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세워가도록
6. 틴케이스가 2025년 세운 계획들이 세워져 가도록
7.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도록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8. 충주 라마나욧이 구체적인 사역 방향을 정하여 세워지도록
9. 박정제목사를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성령안에서 충만하도록
삶을 바꾸는 3가지 질문 :
1. 내 기도 안에 ‘비교’나 ‘정죄’의 마음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가요?
2. ‘영혼의 비명’처럼 절절한 고백이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3. 심령의 가난함을 회복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