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처럼 살고 싶습니다 (눅 3-136)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찬양 : 살아계신 주
본문 : 눅 19:1-10절
☞ https://youtu.be/eoVmlirb4m8?si=o_S7IdMRG6tYOCFv
봄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오늘은 중보기도 세미나가 있다. 오늘 예정된 스페이스알 젊은 세대 사역자 모임은 일정들이 맞지 않아 어제저녁에 모였다. 모든 일정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시간이기를 기도한다.
어제 큰 감동이 있었다. 상의할 일이 있어 작은 교회 목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고는 웃으셨다. 왜 그러시냐고 하니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마쳤는데 전화가 왔다고 그래서 웃으신다고 했다. 진작 알고는 있었지만,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동되고 힘이 나던지 ~
오늘 중보기도 세미나가 절반을 넘고 있다. 하루종일 비가 예고된 오늘 오고가는 모든 길부터 주님이 인도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소중한 시간 주의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시간이 되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
본문에는 유명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를 성경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2절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우선 삭개오라는 이름은 “정결한 자, 의로운 자” (히브리어 זַכַּי – Zakkai)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를 소개하는 현실은 세리장이요, 부자라는 것으로 부정과 착취의 상징같은 인물임을 말하고 있다. 이름과 현실의 지라가 완전히 달라진 인생이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이름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부담을 버리려고 노력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담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 마음속에 자신의 이름처럼 살고 싶은 욕망을 간직했지만,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삶에 이끌려 살았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렸고 그는 뭔가에 이끌려 예수님의 행렬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3-4절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본문은 삭개오에게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두 가지 환경을 말한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조건을 넘어서 사회적 시선과 배제를 담고 있는 표현으로 보인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였고, 당대 유대 사회에서 가장 미움받던 부류 중 하나였다.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 여겨졌고, 특히 “세리장”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사회적 배척을 받는 존재였다. 군중은 단순히 그가 작아서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를 밀어내고 배제”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예수님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런 반대와 장애물에 멈추지 않고 보기 위하여 앞으로 달려갔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고 한다.
고대 유대사회에서 관직이나 세리 직책을 맡으려면 30세 이상은 되어야 했고, "장"의 지위를 고려하면 일반적으로 40~60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당시 유대인의 평균 수명은 40~50세였으므로, "세리장"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경험 많고 고위급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런 그가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과 나이와 신분과 체면과 거절을 뿌리치고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삭개오의 마음에 일어난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간절함과 긴급함을 볼 수 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삭개오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간절함과 긴급함으로 그 기회를 붙잡았던 것이다. 이 믿음을 주님은 보셨고 그를 부르셨다. 5절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바라보시며 자신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실 때 그는 아마 날아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삭개오의 기분을 성경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여 영접하거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냉정한 평가를 보낸다. 7절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여기 <수군거려>란 단어는 70인역 성경에 의하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했던 바로 그 단어다. 이 정도로 예수님의 행동은 대중들의 충격과 실망을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율법적 기준으로 죄인과 교제하는 것을 불결하게 여겼다.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유한다는 것은 이들의 경계선을 허무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런 소리에 삭개오는 매우 예수님께 미안했을 듯싶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삭개오는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의 삶은 한 마디로 돈이 중심에 있는 삶이다. 그의 정체성자체가 돈이었다. 그런 삭개오가 지금 그 신과 같은 돈을 절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내어주겠고, 속여 빼앗은 것은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했다. 그는 레위기에 나온 율법의 규정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진심어린 회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분명 돈이 주인된 삶에서 예수님이 주인된 삶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말뿐인 회개가 아니라 삶의 구조와 평생에 신처럼 여긴 재산 사용법 자체를 바꾼 것이다. 회개의 참된 본질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허락한 은혜의 기회를 향한 삭개오의 갈망이 울림을 준다. 그리고 갈망을 이루기 위한 긴급한 조치와 그 과정에 다가오는 모든 장애와 수치와 거절을 넘어서고,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는 결단의 모습이 감동이다.
나는 과연 어떠한가?
예수님의 시선 앞에 선 삭개오처럼, 나도 역시 이름과 삶이 다른 인생이다. ‘길을 바르게 건너라’는 뜻을 담은 이름과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본다.
물론 이것은 의지적인 결단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삭개오의 은혜를 붙잡으려는 간절한 그리고 긴급한 결단이 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이 된다.
이제 은혜로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다. 조급하게 하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해야 한다는 지점에 이른 것이고, 삭개오같은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아멘이라 고백한다.
내가 보여야 할 결단은 무엇일까?
내가 올라가야 할 나무는 무엇이며, 내가 나누어야 할 재산은 무엇일까? 나의 정체성처럼 나를 붙잡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 묵상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오늘은 이쯤에서 주님의 음성을 붙잡고 멈추려 합니다. 주님 ~ 나를 내려놓습니다. 주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주님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꾸겠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소리를 듣고 행하는 자로 나아가렵니다. 이 종을 받아 주소서.
오늘의 묵상, 한 줄 정리 :
<체면보다 갈망이, 자존심보다 주님의 얼굴이 중요합니다.>
중보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가 하나님의 뜻을 담아 출판되도록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이 주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이 시대를 이끌 진짜 목사가 세워지도록
3. 30억의 재정 공급을 통해 선교회가 새로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4. 라마나욧선교회 행정 시스템이 섬김을 위한 최적의 구조를 찾도록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세워가도록
6. 틴케이스가 2025년 세운 계획들이 세워져 가도록
7.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도록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8. 충주 라마나욧이 구체적인 사역 방향을 정하여 세워지도록
9. 박정제목사를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성령안에서 충만하도록
삶을 바꾸는 3가지 질문 :
1. 나의 삶은 내 이름(소망)과 같은 모습인가?
2. 내가 지금 올라가야 할 '돌무화과나무'는 무엇인가?
3. 돈? 평판? 게으름? 불신? 무엇이 나의 중심이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