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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묵상] 내가 간구하는 날에 : 시편 138편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6.06.05|조회수44 목록 댓글 0

내가 간구하는 날에 (2-138)

202665(금요일)

찬양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본문 : 138:1-8

https://youtu.be/PUU9l39uFQ4?si=cWcKgHymCjqR1B-F

 

어제는 목회자들을 위한 인공지능을 비서로 활용하는 스마트 목회라는 세미나를 목회사관생도들과 중보기도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을 위해 진행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시대에 성경적 가치를 지키며 시대의 문화적 혁명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정의하고 바른 사용법에 대해 함께 나누었다.

 

산업혁명의 첫 번째 시절이 육체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거대한 산업혁명은 이제 인간의 정신과 기술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이다.

이 문화의 흐름은 선택이 아니라 이 기준에 맞는 새로운 시대의 삶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시대의 뒷북을 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전면에 성경적 가치로 삶의 의미와 가치와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김성일 목사님을 모시고 금요세미나가 진행된다. 늘 라마나욧선교회를 소중히 여기시며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마음껏 흘려주시는 목사님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시138편은 다윗의 시다. 이 시편에 대해 칼뱅은 자신의 주석에서 다윗은 자신이 겪은 수많은 영육 간의 환난, 즉 사울을 비롯한 여러 위기에서 건짐을 받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왕위를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선언하신 나단 선지자의 신탁(사무엘하 7)을 확증하며 이 시를 썼다고 했다.

 

그렇다. 시편 138편은 다윗이 그렇게 믿음으로 다윗의 언약이 영원할 것을 믿고 선포했던 시를, 포로기를 겪으며 황폐해진 땅 위에서 다윗처럼 다시 일어서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상하며 불렀던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구절이 나를 멈추게 한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구약 성경에서 주의 이름은 그 존재의 본질과 영광, 그리고 그동안 역사 속에서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총칭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모든 이름보다 높이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입으로 선포하신 말씀과 언약을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어이 성취해 내시는 분임을 천명하는 표현이다.

이 부분이 오늘 내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며 나로 멈추어 서게 한다.

 

다윗의 상황을 따라 이 말씀을 재해석하면, 다윗이 험한 세상을 이기고 대적 앞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언약의 신실함을 붙들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위해 더 크신 능력으로 다윗을 인도하셨다는 고백이다.

 

그러면서 다윗은 이 과정을 설명한다.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간구하는 날>은 사울에게 쫓기던 광야의 날이요, 사방에 대적의 분노가 가득하여 기가 죽고 위축되었던 7절의 표현으로 환난의 날이다. 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다윗은 그가 겪는 현실의 무력함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셔서 그 영혼에 힘을 주어 강하게 하셨음을 고백한다. 7절의 표현으로는 살아나게 하셨다.

 

여기 주목되는 단어가 <영혼에 힘을 주어>라는 단어와 <살아나게 하셨다>는 표현이다.

 

힘을 주었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타라히베니’(תַּרְهִבֵנִי)<나를 담대하게 하셨나이다>란 의미다.

내 영혼에 힘을 주어 거대하게 확장시키다, 두려움을 격파하다라는 뜻이다.

 

다윗은 자신이 만난 현실의 무게감으로 위축되었고, 무력함에 빠졌다는 것이다. 아니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만난 것이다. 그런 순간 그는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순간 응답하시며 환경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영혼에 담대함을 주어서 두려움을 파괴하는 배짱을 주신 것이다. 영혼이 힘을 얻으니 나를 에워싼 환난의 산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영적 역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7절에 나오는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의 히브리어 원문은 테하예니(תְּחַיֵּנִי)’이며, 그 어원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역동적인 생명력을 뜻하는 동사 하야(חָיָה - 살다, 소생하다)’의 피엘(Piel, 강조 능동) 형이다.

 

히브리 문법에서 피엘(Piel) 형은 죽었던 목숨을 겨우 살려놓는 수동적 구원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강력하고 주권적인 힘으로 생명의 에너지를 가득 불어넣어 완벽하게 소생시키다라는 강력한 능동적 의미다.

 

이것은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을 향해 생기가 들어가라 명하셨을 때,

뼈들이 살아나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던 그 창조적 복원의 장면에 사용된 단어다.

 

오늘 아침 다윗이 언약을 붙들고 도저히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 주저 앉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셨던 영혼에 주신 힘과 살아나게 하신 그 힘을 사모하게 되는 아침이다. 바로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말씀을 붙들고 황폐한 땅을 보수하며 일어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힘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내 영혼에 힘을 주시고 살아나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감사하며 다윗처럼 겸손히 주께 간구하는 날로 오늘을 삼기를 다짐한다. 주님, 이 종이 이날을 방황하는 날로 삼지 않고 간구하는 날로 삼겠사오니 이 종을 기억하시며 응답하사 이 종으로 다윗처럼 영혼에 힘을 얻고 살아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내 무력함에 갇혀 방황하는 자리를 간구의 날로 바꿀 때, 주님은 내 영혼을 먼저 담대하게 하사 환난의 소용돌이에서도 사명의 생기로 살아나게 하신다>

 

적용 질문 :

1. 현실의 무력함과 조바심의 날을 방황의 날로 흘려보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보좌를 향한 간구의 날로 바꾸겠습니까?

 

2.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두려움을 파괴하고 일어서는 하나님이 살아나게 하시는 기백과 배짱을 경험한 것을 기억해 보세요?

 

3. 내 기운이 다 소멸하여 마른 뼈처럼 주저앉은 바로 그 환난 한복판에서, 주께서 친히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으사 기어이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오른손의 전능함을 신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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