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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묵상] 시선이 좁아질 때 : 시편 139편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6.06.06|조회수67 목록 댓글 0

시선이 좁아질 때 (2-139)

202666(토요일)

찬양 : 오 신실하신 주

본문 : 139:1-24

https://youtu.be/dHqfWk7PK18?si=A8CAWXIKYKswVIG2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주님이 기쁨으로 받으실 예배자로 잘 준비되어 지는 하루의 삶 되기를 기도한다.

 

어제는 금요세미나로 김성일 목사님을 모시고 성령과 교회라는 주제로 은혜충만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 목사님께서 풍성하고 건강한 식사를 준비해 오셔서 영육간 강건함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계속되는 시간 주님의 은혜가 참여하시는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헌신하시는 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시편 139편에 대해 존 칼뱅을 비롯한 보수적 주석학자들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받던 시절이나, 혹은 인생의 후반기에 압살롬의 반역과 대적들의 은밀한 모함, 거짓 고발로 인해 극심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을 때로 본다.

 

이때의 공통점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비판할 때를 말한다. 그 어떤 순간보다 아프고 힘든 시절이다. 이때 다윗은 인간적인 변명을 멈추고 내 심장과 폐부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시는 진실하고 공의로우신 재판장(하나님)의 법정으로 도피하여 자신의 순전을 의탁하고 있다. 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상처는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상처의 위험함은 상처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왜곡되게 한다는 것이다.

상처가 나를 움츠리게 만들고, 안 아프게 하려는 욕망으로 객관성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표현조차 힘든 배신과 오해와 모함의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앞에 자신을 살펴달라고 객관적인 아룀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이 오늘 아침 큰 울림을 준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믿음이 있기에 이렇게 심각한 순간마저 객관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앞에 설 수 있는가?

 

다윗이 가진 첫 번째 믿음은 하나님이 자신을 아신다는 것이다. 3-4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다윗은 1-6절에 걸쳐서 하나님은 나의 앉고 일어섬, 나의 멀리서도 품는 생각, 나의 모든 행위를 이 잡듯 샅샅이 뒤져 완벽하게 알고 계시며, 심지어 내 혀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주님은 그 본질을 아신다고 고백한다.

 

상처가 다가오면 우리의 반응은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외치며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로 나아가곤 한다.

그런데 다윗은 이 순간 이런 놀라운 고백을 올리며 오히려 6절에서는

그분이 나를 안수하신다고 선포한다. 참으로 감동적인 믿음이다.

 

두 번째로 다윗의 믿음은 어디나 계시다는 믿음이다. 7-8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이 고백은 하늘이든 스올 곧 음부든, 땅끝에 가 있든 하나님의 손이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며 붙드신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심지어 12절에서는 흑암이 주님 앞에서는 빛과 같이 비추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이런 믿음으로 흑암의 상황에도 다윗이 흔들리지 않고 흑암을 빛으로 바꾸시는 기적을 경험했던 것이다.

 

세 번째 다윗의 믿음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향한 생각이 셀 수 없이 아름답고 많다는 믿음이다. 17-18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때에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세상은 우리를 효율성의 숫자로 계산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모래알보다 더 많은 보배로운 생각의 바다를 품고 계신다. 비록 내 힘이 다 빠져 절망의 밤을 통과할지라도, 내가 다시 눈을 뜨는 영적 새벽 한복판에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계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임재를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삶을 살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선의 좁아짐이 온다.

당연하다. 능력도 작아지고, 힘도 작아지고, 생각도 작아진다.

볼 수 있는 것도 작아지니 시선의 작아짐이 너무도 당연하다.

또 상처의 자리, 실패의 자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순간 다윗은 오히려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향해 보배로우신 생각을 하시는 하나님을 향하며

나를 향한 주의 생각이 바다의 모래보다 많음을 깨달으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차원으로 생각의 폭을 넓히고 시선의 높이를 올리고 있다.

이것이 믿음의 영광이 아닌가?

 

오늘 이 말씀이 내게 많은 도전과 영감을 준다.

나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세상과 오늘의 내 현실, 그리고 삶이 준 상처들로 인해 나는 지금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 이런 현실에 가려지고 왜곡되고 좁아진 시선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지 주님이 물으신다.

 

너의 믿음은 너의 생각과 시선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

나의 삶의 자리가 어디든 그곳에 계시며 오른손으로 붙드시고 흑암조차 밝히시는 하나님,

그리고 나를 신묘막측하게 지으시고 나를 향한 생각이 바다의 모래보다 많으신 하나님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많은 대적으로 인해 주저앉지 않고 그 한가운데서 자신을 살펴달라고 외친다. 그는 엄청난 문제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문제로 가져오는 이 당당한 믿음이 있었다. 주님, 오늘 내게도 이 믿음이 있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이런 믿음으로 서는 자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나를 아시며 어디나 계시고 바다의 모래보다 많은 보배로운 생각으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때, 현실의 흑암을 빛으로 바꾸는 영적 영광을 마주한다.>

 

적용 질문 :

1. 삶을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거친 오해나 배신, 혹은 현실의 결핍으로 인해 스스로 나를 방어하느라 영적 객관성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나이가 들고 능력이 작아지면서 내 삶의 반경과 생각마저 좁아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다의 모래보다 많은 보배로운 계획을 일궈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시선으로 내 남은 사역과 인생을 넓고 높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3. "주님 앞에서는 흑암이 빛과 같다"는 믿음과 그분이 오른손으로 나의 새롱누 새벽을 붙잡아 주실 것을 신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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