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차선 변경의 기도 (시2-143)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찬양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본문 : 시 143:1-12
☞ https://youtu.be/_RGxWXWN9dk?si=wJwuU8Nv5uJCkcMO
어제로 중보기도 세미나 6기를 은혜 가운데 종강했다. 최선을 경주한 6기생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쉽지 않은 과정들을 은혜로 끝까지 경주하신 모두를 진심으로 축복하며 전심으로 한 그 수고에 하나님의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마음 다해 기도한다.
아쉬웠던 것은, 내게서 이제는 끓어오르지 않는 열정으로 다른 때보다 두 배는 더 힘들게 준비해야만
겨우 감당할 수 있어 모두에게 미안했다.
내려가야 할 때를 정확히 알게 해 준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뒤에서 이분들이 할 수 있도록 소중한 자료를 제작해 공급하는 일로만 해야 하고,
다른 방편으로 이들을 밀어주는 역할로 전환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제 라마나욧선교회에서의 사역은 내려놓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계획도 방법도 없다. 거기에 1년이란 시간을 라마나욧 선교회에서 다음 이사장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참 난감하다. 주님 어찌하오리이까? 주밖에 도울이 없습니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 시편 143편은 다윗의 시다. 다윗의 시를 죽 살펴보면서 느끼는 것은 대부분이 고난 가운데 지은 시라는 점이다. 오늘 본문도 역시나 깊은 고난의 한 가운데 울려 퍼진 놀라운 고백이다. 3절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죽은지 오랜 자 같이> 이 한 마디의 표현이 다윗이 당하는 고난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이 표현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상황적으로 어떤 수단도 방법도 없는 완전한 절망의 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4절에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4절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한 마디로 다윗은 지금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으로 영혼(루아흐)이 완전히 숨 막힌 상황이 되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적 뇌사 혹은 호흡 곤란'의 상태에 있다.
참담하다는 표현은 넋을 잃고 마비가 된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로 원 의미는 전쟁이나 재난으로 폐허가 되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스스로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나 의지적인 결단도 내릴 수 없는 철저한 폐허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순간이 되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할까?
나는 지금 기력을 잃고, 나의 평생의 꿈을 향한 마음을 차선 변경을 해야 할 위치에서 당황하며 넋을 잃고 있다. 이런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윗은 이런 순간 먼저 주님의 행하심을 읊조리며 생각한다. 5-6절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주의 모든 행하신 것, 주의 손이 행하는 일,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이런 넋이 나간 상황에 다윗은 먼저 주의 모든 행하신 것 즉 '망원경'을 들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객관적이고 위대한 주권적 통치를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주의 손이 행하는 일 즉, 토기장이가 물레 위에서 진흙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그릇을 빚어내듯 매우 섬세하고 인격적이며 정교한 하나님의 손길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미경'을 들어 나라는 존재를 모태에서부터 지으시고, 목동 시절부터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내시며 오늘까지 내 삶을 섬세하게 빚어오신 '나의 하나님'의 친밀한 섭리와 보살핌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오늘 내게 필요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서 주의 모든 행하신 일을 망원경을 들고 바라보고, 더 나아가 현미경을 들고 내 삶에 세밀하게 간섭하며 인도하신 그분의 손이 행하신 일을 묵상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8절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오늘 이 기도가 바로 나의 기도다. 나도 이제 내가 라마나욧선교회의 대표로 달려왔던 길을 내려와야 한다. 이제는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담지 못하는 리더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이 참담한 마음으로 주님의 하신 일을 묵상하며, 내가 다닐 길이 무엇인지 주 앞에 구하는 자로 서야 할 때임을 분명히 알게 하신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으며, 그 <때>에 맞게 기뻐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지혜라 선포했다(전 3:12). 이제 나는 내가 주도하던 사역의 때를 지나, 물러나 돕는 새로운 때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새로운 다닐 길은 내 이성이나 경험으로 찾을 수 없음을 알기에 다윗처럼 엎드린다. 10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만약 이 시를 짓는 상황에 다윗이 노년에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난 상황이라면 이 고백은 이런 내용이 된다.
싸워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다윗은 선하신 '주의 영(성령)'의 인도하심만을 구했다.
내 속의 열정은 식어갈지라도, 나를 이끄시는 분이 선하신 성령님이시기에
내가 걷게 될 새로운 후반전은 결코 폐허가 아님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서기를 그는 다짐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말로 못하는 상황에 이런 멋진 기도를 올리는 다윗의 영성이 오늘 아침 큰 소망이 된다. 인생의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시간 이런 기도를 배울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
주여, 내게도 이런 영성을 허락하소서. 막막한 저의 네비게이션을 주의 영으로 직접 설정해 주시옵소서. 인간의 지혜나 남은 기력이 아니라, 오직 선하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공평한 땅으로 걸어가며, 남은 생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서게 하소서. 아멘
한줄 묵상 :
<인생의 차선 변경의 자리에서 오직 '선하신 주의 영'께 내 삶의 네비게이션을 전적으로 맡겨드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차선 변경이다>
적용 질문 :
1. 넋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한 상황일 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내 삶을 섬세하게 빚어오신 손길을 묵상하며 시선을 주님께로 돌리고 있습니까?
2. 다음 '때'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 내가 미련 없이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할 주도권은 무엇입니까?
3. 인생 차선을 변경해야 할 때 내 이성이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선하신 주의 영(성령)'의 이끄심만이 공평한 땅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