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은혜 (시2-144)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찬양 : 지금까지 지내온 것
본문 : 시 144:1-15
☞ https://youtu.be/wstegqVV7e8?si=QSVYRJQiFMWrnkhJ
어제는 말씀을 준비하고,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를 최종적으로 정리하였다. 85년부터 시작된 전도사로 시작한 목회자의 길을 돌아본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것도 모르는 자, 실수와 허물로 덮여진 인생을 주님의 은혜로 덮어서 이날까지 달려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릴 뿐이다.
이제는 그간 달려온 길을 감사하며 무조건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6월을 마치고는 무조건 쉬는 시간을 가지며 나의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 새로운 기름부으심으로 출발하고 싶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쉬었던 것처럼
오늘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은 그렇게 쉼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주의 종이기에 그럼에도 주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긴다. 종은 그 어떤 것도 주장할 수 없기에 ~ 주님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시편 144편은 다윗의 시로 주석가들은 <모자이크 시>라고도 한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평생에 걸친 신앙의 정수들을 모아, 삶의 후반부에 국가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부른 장엄한 신앙고백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내게 들려지는 말씀은 이것이다. 1-2절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오 나의 요새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여기 주목되는 단어의 첫 번째는 <가르쳐>다.
이 단어의 기본 어근은 '라마드(לָמַד)'로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에서 이 단어의 첫 글자인 '라메드(ל)'는 본래 농부가 소를 밭갈이에 알맞게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소몰이 막대기'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멜라메드'라는 피엘(강조)형으로 쓰였는데 이는 강력하고 지속적이며 맹렬한 훈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다윗은 승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몰이 막대기로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쟁을 가르쳐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몸의 근육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해서 숙달시켜 주셨다는 의미다.
돌아보면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두려움의 현장에서 방황했고, 밧세바 사건에서 처절한 실패를 했고, 압살롬의 반역과 같은 징계와 고난으로 정말 아프고 힘겨웠던 인생의 막대기들로 인한 아픔을 경험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그 모든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의 막대기들이, 결국 하나님의 군사로 나를 길들이고 '가르치신(라마드)' 사랑의 훈련 과정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면서 다윗은 그 매서운 가르침 속에 담겨 있던 5가지 은혜의 요소를 요약해 보여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으로 가르치셨고, '요새'와 '산성'이 되어 품으셨으며, 위기에서 나를 '건지심'과 '방패'가 되어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으로 포기하지 않고 온전한 군사로 빚어주셨고,
내가 지쳐 쓰러질 때에는 요새가 되셔서 영적인 기력을 회복하여 일어나도록 품어 주셨다.
사방으로 둘러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나를 높은 산성으로 이끌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시선을 교정해 주셨으며,
덫에 걸려 빠져나올 수 없을 때는 직접 찾아와 팔을 붙잡으사 나를 건져주셨다.
그리고 돌아보면 매 순간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화살과 창이 날아오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심장과 급소를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셔서 이 승리를 이루게 하셨다는 고백이다.
오늘 다윗의 이 고백이 이제는 쉬고 싶다는 나의 현실에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 된다. 그렇다. 돌아보면 이제까지 이렇게 달려온 것이 이런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근본적인 사랑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때마다 다양한 현장에 꼭 필요한 요새 되심과 산성 되심, 건지심과 방패 되심이 끊임없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제 하나의 시간을 마치는 때에 나에게도 이것을 정리하며 새롭게 서야 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언약의 사랑과 순간순간마다 펼쳐주신 하나님의 다양한 보호와 인도하심의 가르치심을 세밀히 검토하며 나를 가르치신 그 놀라운 은혜를 전달하는 자가 되련다.
다윗은 이 놀라운 은혜를 고백하며 이렇게 감격한다. 3-4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여기 헛것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벨(הֶבֶל)인데 전도서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 라는 탄식의 반복에 사용된 단어다. 이 단어의 본래 뜻은 <추운 겨울날,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나 잠시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수증기>를 의미한다.
또 지나가는 그림자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첼 오베르(צֵל עוֹבֵר)인데 이는 한낮에 선명해 보였던 그림자가 해가 기울면 길게 늘어지다가 해가 짐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입김처럼 덧없는 것이며,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의 핵심은 이것이다. 이런 헛것이며 그림자같은 나를 어찌하여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를 감싸시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셨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모든 기력을 다 상실하고, 아무런 열정도 솟아나지 않아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쉬고 싶은 지금, 주님은 내게 다가오신다. 그리고 이 지치고 헛것 같은 나를 탓하지 않으시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안아주신다.
나를 '요새' 안에 숨기사 기력을 회복하게 하시고, 나를 높은 '산성'에 올리셔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금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기름 부으심으로 일으키실 그 완전하신 보호 아래 머무는 시간이 되게 하실 것이다. 아멘.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는 다시 주님의 종 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 일어설 것이다. 다만 이제는 내가 앞장서서 칼을 휘두르는 전쟁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신 그 은혜로 다음 세대를 세우고 돕는 새로운 차선 변경을 이룬 자리에서 승리를 이루어 갈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종의 삶을 너무도 잘 아시며 날마다 말씀가운데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알게 하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오늘도 사랑과 요새와 산성과 건지시는 자와 방패가 되셔서 당신께 피합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한줄 묵상 :
<지나가는 그림자 같고 입김 같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훈련하시고 요새와 산성으로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내 삶의 유일한 자랑입니다.>
적용 질문 :
1. 나의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치시기' 위해 허락하셨던 사랑, 요새, 산성, 건지심, 방패의 은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이었습니까?
2.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헛것'이며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한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3. 영적, 육적으로 지쳐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있는 지금, 나를 다그치지 않으시고 '요새' 안에서 숨을 고르며 '산성'에서 시선을 교정하게 하시는 주님의 품에 나를 온전히 맡겨드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