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앞에 서게 하신 은혜 (시2-147)
2026년 6월 14일 (주일)
찬양 : 비 준비하시니
본문 : 시 147:1-20
☞ https://youtu.be/l0OGpqpOWhg?si=kNTSTWKMp8XDZ6wg
거룩한 주일 아침 오늘도 예배자로 나를 준비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로 서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되기를 기도한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시편 147편은 어제에 이어서 할렐루야 시편이다. 주석가들은 이 시편이 특별히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완공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 속에서 부른 봉헌 찬송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시편의 자리는 이런 것이다. 70년의 포로 생활로 철저히 무너져 내렸던 성벽이 다시 세워졌다.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의 영적, 육적 정체성이 회복되었음을 뜻한다.
지금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처럼 화려하고 강대한 국력을 자랑하던 때가 아니다. 오히려 뼈저린 실패와 포로 생활의 상처를 안고 돌아온 백성들이, 자신들을 다시 빚어내시고 성벽을 세워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우주적 차원에서 찬양하는 시다.
세 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흩어진 자, 상심한 자들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회복하시는 위대하고 능력과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5절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여기서 초점은 하나님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의 수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4절)" 광대무변하신 분이다. 그런데 그 크신 창조주께서 지극히 작은 자들의 일상으로 내려오사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3절)"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찬송을 받으실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인생의 힘이 아니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찬양을 받으실 분이라 한다. 8절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10-11절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이 고백과 찬양의 이유는 바로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나온다. 이들은 더 이상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의지할 수 없었다.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고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며 오직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헤세드)만을 의지하는 자원하는 심령을 기뻐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세 번째 찬양의 이유는 말씀을 야곱의 자손에게 보여주셨다는 사실이다. 19절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왜 이것이 찬양의 이유인가?
이스라엘이 회복할 능력이 없을 때 말씀으로 그것들을 녹여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18절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무너진 공동체를 궁극적으로 다시 세우고 지탱하는 것은 인간 지도자의 탁월함이 아니라 오직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들은 깨달으며 이렇게 우리에게 세상 어떤 민족보다 세밀하게 이 말씀을 주심을 인하여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나의 찬양의 이유를 나란히 두고 비교해 본다. 오늘 나의 찬양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동일하다. 주님은 광대하신 지혜로 오늘도 나의 상심한 마음을 고치시고, 흩어진 것을 모으시며 상처를 싸매주신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회복하심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나는 오늘 주일 사역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이유부터 나의 현실은 본문과 달라진다.
이스라엘은 무력함 속에서도 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지금 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외하고 그 인자하심(헤세드)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채, 찬양 대신 두려워 떨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주님...
가장 뼈아픈 자백은, 내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 '말씀' 자체가
지금 내 안에서 온전한 찬양의 이유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내가 받은 최고의 복인 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고 찬양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늘 주님은 이 시편을 통해 나를 깨우시며, 이렇게 묵상하는 시간 말씀을 통해 오늘도 꽁꽁 얼어붙은 나의 내면과 나를 묶고 있는 모든 두려움을 녹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며 내가 바로 이런 찬양을 드려야 할 주인공임을 알게 하신다. 그렇다. 나는 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가 붙들고 서는 말씀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18절의 고백처럼, 오늘도 나를 얼어붙게 하는 모든 것 위에 '바람을 불게 하사 다시 흐르게 하시는' 그 생명의 말씀이 속히 달려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여, 이 두려운 마음을 말씀으로 녹이시고, 다시금 온전한 찬양을 회복하는 주일 예배자로 나를 세워주소서.
한줄 묵상 :
<내 안의 두려움과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다시 흐르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이, 내 삶에 허락하신 가장 위대한 축복이자 영원한 찬양의 이유다.>
적용 질문 :
1. 우주의 수많은 별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내 삶의 가장 작고 흩어진 상처를 싸매고 계심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2. 은퇴의 자리에서 '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 두려워 떨고 있는 삶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3. 날마다 말씀을 대하면서도 그것이 최고의 축복인 줄 몰랐던 무감각을 회개하며, 오늘 나와 뭇 영혼의 얼어붙은 절망을 '다시 녹여 흐르게 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