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오늘의 묵상

[묵상] 최측근에 두신 은혜 : 시편 148편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6.06.15|조회수38 목록 댓글 0

최측근에 두신 은혜 (2-148)

2026615(월요일)

찬양 : 은혜

본문 : 148:1-11

https://youtu.be/vnXhGAU0Fes?si=EAseVACLQ9wVCCIm

 

어제는 나의 전반전 사역의 마무리 시간으로 잡았다. 이제 상반기를 끝으로 라마나욧선교회를 통해 주님의 소중한 쓰임을 받았던 시간을 마치게 되었다. 마무리의 시간이 내겐 너무 무력한 시간이라 죄송하고 안타깝지만 이것이 내 모습의 실존임을 알게 된다.

 

나란 사람은 주님이 붙잡아서 써 주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모습이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주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붙드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릴 뿐이다.

 

오늘은 선교회 사역의 마무리로 강사 수련회를 가진다.

지난 학기 수고해 주신 강사님들과 12일의 일정으로 소중한 시간을 가진다.

목회사관학교 졸업생이 운영하시는 팬션에서 진행되는 모든 시간 수고하신 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회복케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묵상할 시편은 148편이다. 시편 146편이 '개인의 결단(내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리라)'이었고, 147편이 '공동체의 회복(예루살렘 성벽을 세우심)'이었다면, 148편은 마침내 그 시선이 '온 우주와 피조 세계 전체의 찬양'으로 확장된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성벽을 재건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이 단순히 '이스라엘만의 민족 신'이 아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만유의 주재'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그들은 우주의 지휘자가 되어,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을 향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단어는 7번에 걸쳐서 반복된 <모든>이란 단어다.

모든 천사, 모든 군대, 모든 작은 산, 모든 백향목, 모든 백성, 모든 재판관, 모든 성도

하늘의 존재로부터 자연에 이르기까지 찬양하라고 한 후 마지막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이것이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편 148편은 우주 만물 가운데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이들 모두가 찬양의 자리로 초대받았음을 말한다. 그리고는 마지막 14절에 이르러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라는 성도라는 구체적인 존재의 찬양받을 이유로 결론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삶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 동안 철저히 짓밟히고 조롱당했다.

그들의 뿔(국력, 자존심, 신앙적 자긍심)은 처참하게 꺾이고 부러진 상태였다.

 

여기 <뿔을 높이셨다>는 것은 포로 생활로 박살 났던 그들의 힘과 명예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다시 세워주시고, 원수들 앞에서 승리자로 존귀하게 들어 올리셨다는(격상시키셨다는)

통쾌한 역전의 선언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찬양의 이유가 된 것은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69절에서 사가랴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라고 찬양하듯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구원의 뿔'로 내어주셨기에, 하늘의 천군 천사나 해와 달보다 '모든 성도'가 마땅히 더 큰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구속사적 감격이 담겨 있는 고백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성도를 이렇게 표현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가까이하는 백성>

 

히브리어 '카로브(קָרוֹב)''가까이 다가가다, 접근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랍(קָרַב)'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뜻을 넘어, '관계적으로 매우 친밀한, 마음을 나누는 측근,

혈연적으로 아주 가까운 가족'을 의미할 때 사용된 단어다.

 

이것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성도를 향해

<너는 우주의 수많은 피조물 중 내가 내 품으로 끌어당겨 곁에 둔 나의 측근이자 가족이다>라는

선언과 같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단어의 뿌리인 '카랍'에서, 우리가 잘 아는 단어인 '고르반(코르반, קָרְבָּן -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파생되었다. 구약 시대에 제물(코르반)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카랍)' 만들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우주의 해와 달과 별들이 아무리 거대하고 웅장하게 하나님을 찬양한다 해도,

그들은 거룩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제물)을 힘입은 '성도'만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대적인 예배의 특권을 가진다.

 

어제로 전반전 사역을 마무리하고 이제 강사수련회로 내부의 일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나의 존재를 다시금 깨운다.

 

나는 누군가?

나는 하나님의 최측근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나를 통해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실 분이다.

이것이면 전반전의 수고에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위로라고 여겨진다.

 

포로기를 겪으며 '하나님이 과연 우리와 함께하시는가?' 흔들렸던 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대한 이방인 왕들을 움직이시고 비를 준비하사, 불가능해 보였던 성벽과 성전을 완성하게 하셨을 때 그들이 드린 예배는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비록 자신들이 지은 성전이 외형적으로는 화려했던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최측근(카로브)'으로 부르신 그 은혜 하나만으로 만족했다. 이들이 영광 받으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이 놀라운 시편이, 오늘 내게 큰 격려와 울림이 된다.

 

나 같은 자를 부르시고 당신의 최측근에 두셔서 당신을 예배하게 하시며,
당신의 뜻을 나를 통해 이루시고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 감격하며,
이제 미련 없이 나의 전반전을 내려놓는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남들처럼 화려하고 거창한 마무리를 올려드리지 못해 한편으론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앞서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자리가 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함께해 주신 모든 동역자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내 메마른 사역의 여정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비'였음을 알기에, 이 모든 시간과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로 올려드린다. 주여, 기쁘게 받아주소서.

 

한줄 묵상 :

<나를 우주 통치자의 '최측근'으로 품어주시고 내 모든 걸음을 '준비하신 비'로 채워주신 그 은혜 하나만으로 나의 전반전은 가장 영광스러운 찬양입니다.>

 

적용 질문 :

1. 나는 나의 은퇴 자리에서, 나를 우주 통치자의 '최측근'으로 불러주신 그 사실 자체를 가장 큰 은혜로 여기며, 눈에 보이는 사역의 결과를 넘어 기쁨으로 만족하겠습니까?

 

2. 내 삶의 전반전을 돌아볼 때, 불가능해 보였던 순간마다 하나님이 친히 보내주셨던 <준비하신 비>의 역할을 한 소중한 동역자와 후원자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으로 올려드리고 있습니까?

 

3. 하나님께서 새롭게 여실 후반전을 위해 내가 지금 온전히 제단 위에 올려드리고 비워내야 할 미련이나 인간적인 서운함은 무엇입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