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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묵상] 새 노래로 시작되는 후반전 : 시편 149편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6.06.16|조회수35 목록 댓글 0

새노래로 시작되는 후반전 (2-149)

2026616(화요일)

찬양 :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본문 : 149:1-9

 

어제 강사 수련회는 역대급 강사님들의 참여도가 가장 높았던 시간이다.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가 참석하여 소중한 쉼의 시간, 특히 저녁 식사 자리는 음식 맛집의 솜씨보다 더한 목회사관학교 졸업생이신 목사님의 맛난 솜씨덕에 모두를 행복의 자리로 초대했다.

 

이어서 바닷가로 나가서 석양을 감상하고, 조개 캐는 자리는 처음 알지 못했을 때의 방황에서 알고 나서 체험되는 기쁨의 발견이 되면서 늦은 밤 행복한 경험을 가슴에 쌓는 시간이 되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참 행복하고 즐거운 체험의 시간이다.

 

새벽 아직 어두운 시간,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골의 정겨움이 가득한 새벽, 각종 새소리가 많은 이야기를 내게 걸어온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 소리를 다 알아듣지 못해 내 귀를 지나가 버린다. 그럼에도 내 귀는 행복하다.

 

오늘은 아침 식사후 교수님들과 목회사관학교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 후 모든 일정을 종료하고 귀가한다. 끝까지 주님의 은혜가운데 모든 강사님들의 심령과 삶에 휴식과 충전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

본문 시편 149편은 두 가지의 장면을 비교할 때 깊은 공감이 되는 시편이다.

첫 번째는 과거 바벨론 강가에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고 주님을 향한 노래를 세상을 향해 부르지 않겠다고 눈물 흘렸던 백성들(시편 137)의 가슴아팠던 장면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올려져야 할 거룩한 찬양을 세상의 유흥을 위해 부르라는 세상의 외침에 아예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버리고 저항했다. 주님을 부를 수 없었던 그들의 한숨과 눈물과 믿음의 저항이 담겼던 시간이다.

 

두 번째 장면은 바로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다시 소고 치며 수금으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가슴을 열고 자기를 지으시고 그들을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향해 기쁨으로 춤추며 찬양한다. 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제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 나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다시 힘을 달라고 주님께 붙들려 후반전에도 쓰임받기를 원한다고 내 속에서 외쳐지는 간절한 부르짖음을 외치고 있었다.

 

정말 기운을 잃고 지내는 시간이 너무도 힘겨웠던 내 영혼이 외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었다. 그런 꿈만 꾸어도 행복했다.

 

그러니 그런 부르짖음속에 다시 회복한 땅에서 성벽과 성전을 중건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해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으니 그 황홀함이 얼마나 놀라웠을까? 상상만 해도 내가 흥분이 될 지경이다. 4-5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들은 이곳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는 왕이신 하나님, 그 가운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실 하나님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황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놀랍고 위대한 새 노래로 발전한다. 6-9

그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여기 찬양이란 단어, 예전의 표현으로 존영이란 단어의 히브리어는 '로메모트(רוֹמְמוֹת)'이다. 이는 '높이다, 위로 들어 올리다'라는 뜻의 동사 '(רוּם)'에서 파생된 명사로, 영어 성경에서는 대부분 "High praises (최고로 높은 찬양)"로 번역하고 있다.

 

, '찬양(존영)'은 내 개인의 소원이나 위로를 구하는 잔잔한 기도가 아니라,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 위엄, 그리고 통치권을 온 우주와 세상 가운데 가장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 선포하는 '선언적 찬양'을 뜻한다.

 

또 이어지는 두 날 가진 칼은 구약 시대에는 이방 민족을 심판하는 무기였으나, 신약의 성도들에게 이 '두 날 가진 칼''하나님의 말씀(4:12)''복음의 검(6:17)'을 의미한다.

 

성도는 입술로는 온전한 찬양을 올려드리고, 손에는 진리의 말씀을 들고 세상의 거짓된 사상과 왜곡된 통치를 무너뜨리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 시행하는 자라는 위대한 선언이며 찬양이다.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여기 주목할 가장 영광스러운 단어는 바로 <모든 성도>란 단어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은 환상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포로에서 돌아온 행운아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임무를 받은 백성임을 선언하며 세상이 부를 수 없는 위대한 환상을 새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하는 '승리하는 군대'로 묘사된 이 부분이 오늘 아침 큰 울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은퇴의 자리를 시편과 함께할 마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이제 전반전 사역을 매듭짓는 이 마지막 날, 주님은 시편 149편과 간밤의 꿈을 통해 내게 다시 새 노래를 부르도록 초대하고 계심을 느낀다.

 

다시 나를 황홀한 새노래를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를 새노래를 알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꿈에 보여준 그 자리가 지금 제가 있어야 할 자리임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로 이제 새노래로 후반전을 시작하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한줄 묵상 :

<기력을 잃고 수금을 걸어두었던 내 무력한 영혼에 다시 생명의 꿈을 주시고, 입에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손에는 '말씀의 칼'을 주시며 후반전의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적용질문 :

1. 바벨론의 버드나무에 걸어두고 멈춰버린 '나의 찬양(수금)'은 무엇이며, 오늘 당장 기쁨으로 회복해야 할 새 노래는 무엇입니까?

 

2. 내 입술은 이제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위엄을 세상 한가운데 담대히 선포하고 있습니까?

 

3. 간절한 부르짖음과 꿈을 통해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앞으로 이어질 나의 후반전 사역을 위해 더욱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할 '두 날 가진 칼'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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