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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묵상] 실패의 자리에 부르는 찬양 : 시편 150편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6.06.17|조회수34 목록 댓글 0

실패의 자리에 부르는 찬양 (2-150)

2026617(수요일)

찬양 : 찬양의 제사 드리며

본문 : 150:1-6

https://youtu.be/hYKErRX_miE?si=OTRcBHZHPr4oYRfY

 

어제 강사수련회를 은혜롭게 마쳤다. 팬션을 운영중인 사관학교 졸업생이신 목사님의 귀한 사랑의 섬김으로 모두가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 강사님들과 소중한 의견을 나누며, 앞으로 목회사관학교 운영의 변화 필요성과 그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짧지만 깊이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웨이브리즈 플랫폼 이사회를 가진다. 오늘 이 자리에서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완전한 변화를 결정하고, 나도 대표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부끄러움밖에 없는 완전 실패의 현장이지만 마무리를 하고 떠나련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시편의 마지막 장이다. 라마나욧선교회와 관련된 모든 사역들을 정리하게 되는 날 시편의 마지막 장을 묵상하게 되었다. 절묘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찬양하며 겸손히 오늘도 주 앞에 선다.

 

할렐루야 시편의 마지막이며, 전체 시편의 피날레인 150편은 5절까지 <찬양하며 찬양할지어다>의 구조로 반복하고 6절에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찬양이란 단어가 무려 11번이나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할렐루야>까지 포함하면 무려 13번에 걸친 찬양의 고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시편 150편은 찬양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드려야 하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성소에서,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성소 (בְּקָדְשׁ֑וֹ, 베코데쉬)란 히브리어로 '~안에서(in)'를 뜻하는 전치사 '(בְּ)''거룩(holiness)'을 뜻하는 명사 '코데쉬(קֹדֶשׁ)'가 결합된 형태다.

 

여기 '코데쉬'의 기본 어근은 '자르다, 분리하다, 떼어놓다'라는 개념으로 세속적이고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절대 순결의 영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소에서의 찬양은, 허물 많은 나를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여 부르시고 나의 삶 가운데 세밀하게 찾아와 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감격과 친밀함을 하나님의 세우신 합당한 자리에서 찬양하는 것이다.

 

권능의 궁창 (בִּרְקִ֥יעַ עֻזּֽוֹ, 비르키아 우쪼)이란 '궁창'을 뜻하는 '라키아(רָקִיעַ)''권능'을 뜻하는 '오즈(עֹז)'가 결합된 형태로

 

궁창 (רָקִיעַ, 라키아)이란 단어는 '망치로 두드려 넓게 얇게 펴다'라는 뜻의 동사 '라카(רָקַע)'에서 파생되었다. 그리고 권능 (עֹז, 오즈)이란 요새화된 성벽처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으며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과 위엄'을 뜻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한다는 의미는 곧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에서 그분을 찬양하라는 의미다.

 

우리는 어디에서 찬양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구별하여 정하신 '성소',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자리에서 찬양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권능의 궁창', 곧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이 세상 모든 곳,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도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찬양을 드려야 할까?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여기 <능하신 행동>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직접 개입하셔서 홍해를 가르시고, 바벨론 포로에서 건져내시는 등 눈에 보이게 행하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구원 사건들(Mighty acts)'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베풀어 주신 은혜와 구원의 사건들', 내 삶에 개입하셔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과 응답의 결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멀리서 관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한복판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세우시는 행동하시는 분이시다.

 

<지극히 위대하심>이란 '풍성함, 무한함'을 뜻하는 '로브(רֹב)''크심, 광대함, 장엄함'을 뜻하는 '고델(גֹּדֶל)'이 합쳐진 단어로 영어로는 'Excellent greatness' 또는 'Surpassing greatness(압도적인 위대하심)'로 번역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다는 그 사실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 거룩하심, 자비, 영원하심 등 그 존재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압도적인 경외를 뜻한다.

 

우리가 왜 찬양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특별한 사건들 속에 친히 개입하신 '능하신 행동'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가 찬양해야 할 더 깊은 이유는, 내 지식으로는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온전히 인정하며 엎드리는 영혼의 '자발적 굴복'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웨이브리즈 플랫폼 사역의 실패를 자인하며 내려와야 할 시점에,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13번에 걸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치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런 처참한 자리에서 내가 왜 찬양해야 합니까?'라는 무서운 저항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이런 실패와 탄식의 삶을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매 순간과 매 장소를 찬양으로 채워갈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분은 내 이해를 뛰어넘어 '지극히 위대하신 분'이시며, 오늘도 변함없이 '능하신 행동'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실패의 현장이고, 불평과 원망이 쏟아져야 할 자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심을 믿기에, 그리고 그분이 내 삶에 지금까지 행하신 능하신 구원의 일들을 알기에, 나는 이 눈물의 자리조차 찬양으로 채워가는 하루를 살기로 결단한다.

 

시편 기자는 여기에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선언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나팔과 비파, 현악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 등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라고 외친다. 기쁨의 나팔 소리뿐 아니라, 때로는 찢어지는 듯한 슬픔의 제금 소리라 할지라도, 내게 호흡이 남아있는 한 내 삶의 모든 파편을 모아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이해할 수 없었던 십자가가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게 하시는 지극히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늘이란 실패의 자리를 인정하고 실패자라는 낙인을 받는 이 자리조차 나는 찬양으로 채워가는 날 되기를 다짐한다.

 

주님, 내 힘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찬양을 올려드릴 수 없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오늘이란 실패의 자리에 찢어지는 듯한 실패의 슬픔을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찬양받기 합당하신 하나님께 나의 무릎을 굽혀 성소에서,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당신이 멋지게 합력하여 선을 만드실 그 날을 기대하며 찬양을 제물로 올려드립니다.

 

한줄 묵상 :

<실패의 자리도 지극히 위대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 찬양의 자리가 된다.>

 

적용질문 :

1. 내 눈에는 철저한 실패와 원망의 자리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인정하며 내가 자발적으로 굴복하고 엎드려야 할 삶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내가 숨기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올려드려야 할 내 삶의 깨진 파편들 즉 실패, 아픔, 수치는 무엇입니까?

 

3. 내 임기에 주신 사명은 실패로 보이지만, 나는 이 순간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채워갈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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