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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묵상] 장성한 자의 단단한음식 : 히브리서 5장

작성자라마나욧|작성시간26.06.22|조회수29 목록 댓글 0

장성한 자의 단단한 음식 (3-5)

2026622(월요일)

찬양 :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본문 : 5:1-14

 

오늘은 딸이 어버이날에 은퇴기념으로 소중한 가족 여행을 준비해 주었는데 사역 일정으로 연기하여 이제야 왔다. 아들은 촬영일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하고 딸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이 되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곳의 경치가 복잡한 마음에 성령의 바람처럼 시원함과 평안함을 느끼게 한다. 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린다.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히브리서 5장은 대제사장의 자격 요건을 먼저 제시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요건을 어떻게 완벽하게 성취하셨는지를 통해 아론보다 뛰어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우선 대제사장이 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하나님께 속한 일>을 위해 사람 가운데 취한 자로서 예물과 속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대제사장의 사역이다. 여기 하나님께 속한 일은 바로 속죄와 중보의 사역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핵심은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만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구약 시대 대제사장의 필수 자격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은 무지하고 미혹된 자들을 너그럽게 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이 영광스러운 직분은 아무리 뛰어나도 스스로 쟁취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증빙하고 있다.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예수님은 영광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 되심에 스스로 취하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오직 성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론의 자손이 아닌 신비로운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었다.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당시 유대인들에게 대제사장은 오직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혈통)만이 할 수 있었다. 유다 지파로 오신 예수님은 인간적인 율법의 족보로는 대제사장이 되실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인물 '멜기세덱(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을 끌어온다. 멜기세덱은 혈통이나 인간의 조건에 의해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존재였다. , 예수님은 인간의 족보와 자격(아론의 반차)을 뛰어넘어, 창세 전부터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하고 세우신 본질적이고 신적인 대제사장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물론 죄와 연약함에 있는 우리를 품으시기 위해 주님은 엄청난 고난을 받으셨다고 하신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구약의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백성들을 동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시며 인간의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직접 겪어 내셨다는 것이다. 8절의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순종을 몰랐다가 배우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십자가라는 가장 끔찍한 고난의 바닥을 통과하시며 그 순종을 '행동으로 완성'하셨다는 의미다. 이로써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성도들은 이 위대한 대제사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위대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해 더 깊은 진리를 나누고 싶지만, 저자는 성도들의 둔해진 영적 상태를 지적하며 논의를 멈춘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여기 둔하다는 표현은 게으르다, 무감각하지다 라는 의미다.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의 열정이 식고 현실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버려 진리에 대한 관심이 식어진 모습이란 말이다. 그러나보니 신앙이 자라지 못했다.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이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이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인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시간적으로는 이미 선생이 되어야 할 자들이, 현실의 타협에 빠져 여전히 기초적인 신앙에 머물러 14절에 나오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라는 일침을 받고 있다.

 

성숙한 신앙이란 단순히 성경 지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삶의 고난과 현실의 압박 속에서도 지각을 사용하여 진리와 거짓을 분별해 내고 저항하는 상태를 말한다.

 

5장에서 내게 주는 가장 깊은 울림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신" 대제사장의 모습이다.

 

왕이신 예수님은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영광을 스스로 취하지 않고 내려놓으셨으며, 십자가라는 고난의 자리를 묵묵히 통과하심으로 순종의 완성을 이루어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이제 은퇴의 길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나를 내어 맡겨야 하는 순간에 우주의 통치자이시면서도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묵상하며 스스로 취함이 아닌 순종으로 걷는 길을 배우게 된다.

 

앞으로 내게 주어질 몫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심한 통곡과 눈물로 우리 앞을 걸어가신 주님이 우리의 삶을 아시는 최고의 대제사장 되심을 신뢰하며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가며 후반전을 맡기고 나아가련다.

 

한줄 묵상 :

<스스로 영광을 쟁취하려던 삶을 멈추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앞서 걸어가신 대제사장의 순종을 따르는 것이 참된 장성한 자의 길이다.>

 

적용질문 :

1.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기보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스스로 취하려' 애쓰며 영광을 놓지 못하는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2.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처음의 열정이 식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삶에 적용하려는 의지가 '둔해진' 부분은 없습니까?

 

3. 후반전의 삶에서,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영원한 대제사장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오늘 당장 실천해야 할 '단단한 순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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