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악회양스님이 육조혜능조사를 찾아오자
육조스님은 물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그러자 회양스님은
"한 물건이라고 말씀드린다 해도 맞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닦아서 증득했는가?"
하니, 회양스님은
"닦아서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오염될 수는 없습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 오염되지 않음은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시는 바라, 네가 그러하고 나 또한 그러하니라."
하셨다.
육조단경 돈황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다는 말은 ‘이 세상에 이것이다.’ 라고 할 고정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무상하여 변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소유하고 싶어도 그것 자체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인연이고 연기다.
그래서 회양은 오염될 수는 없다고 했다.
오염된다는 것은 더럽혀진다는 말로
우주의 실상이 이러한데
인간의 거친 감각으로 마치 변하지 않아 보이고 그래서 어떤 가치 있는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여겨서,
소중하게 받들고 거룩히 여겨 간직하려 하는 관념에 더럽혀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법집이 생기고, 깨달음의 상이 생기고, 얻으려는 노력으로 수행이라는 것이 생겼다.
혜능조사께서는 단경 진가(眞假)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하략)"
무상한 법계에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지키고 버리려는 그 마음이 있는 이상 그 마음에는 진실이 없다.
혜능조사께서 모든 것에 진실이 없다고 하신 것은
진실이 없어서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은 오직 자성밖에 없고,
드러난 세상은 자성의 발현이어서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님이 없는데 진실을 따로 찾으니 진실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진실인데 따로 진실을 찾는 그 마음이 진리는 어디에 따로 있다고 거짓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본다 해도 진실이 아니요,
오히려 진실이 다로 있다고 믿는 그 거짓된 믿음을 버릴 때에 진실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일체가 진실이요, 또 모든 것이 제행무상이어서 한 순간도 어떤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회양이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진리라는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그러니 관념이든, 물건이든, 인연이든, 진리든 잡으려 하지 말라.
그런 것은 없다.
그래서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다.
수행자의 가장 큰 소유이자 한 물건은 법집이요 아상이다.
세간 사람들도 가장 큰 소유와 물건은 자기에게 소중한 가치와 의미이다.
하지만 세상은 무상하여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법과 소중한 것을 지키려 해도
법과 소중한 것은 가만히 있을지 몰라도 나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그래서 지킬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이다 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면
소중한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순간의 물건이나 사실이라는 허상위에 허망하게 멈추어 있고
실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니 서로 어긋나게 된다.
그래서 번뇌가 온다.
무소유란 하기 힘든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는 한 물건도 가질 수 없고 어떤 것도 따로 진실한 것이 없기에 쥐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즉 착각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착각이 바로 오염되는 것이고
착각하지 않음이 모든 부처님께서 늘 마음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무소유?
실상을 바로 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