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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취미/근황)

인간의 것은 일회적이리라...

작성자길손|작성시간10.03.11|조회수77 목록 댓글 3

 학창시절 '우리민속연구회'란 동아리를 결성하여 '고성오광대' '봉산탈춤' '동래야류' '학

 

춤'을 익히며 즐겼던 풍경이 생각난다. 그 당시, 우리 춤 배우려는 대학 동아리로는 내가 다니

 

학교에서의 모임이 경상도에 소재한 대학으로는 아마 처음이 아니었던가 한다.

 

얼마 후 경북대의 이균옥군이 탈반을 만들었고, 또 동아대 부산대 등이 뒤따랐던 것으

 

로 생각된다. 한번은 당시 H여대생들이 탈반을 만든다고 하여, 우리 동아리 춤꾼들을 초

 

청해 한 보름여 간 춤사위를 강습 받았는데, 그 중에는 발레를 전공한 이가 두 명 있었다.

 

조선탈춤의 춤사위 교습 틈틈이 나는 발레를 전공했던 박00양으로부터 발레의 다섯가지 발

 

동작과 기초적인 자세인 '쁠리에' 동작에 대한 개략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타

 

'뽀르 드 브라' '바뜨망' '삐루엣' 등 프랑스 말로 된 발레의 기본동작 몇 가지를 참고로 견

 

문한 적 있다. 그후 우리는 우리끼리의 연습 때 균형을 못 잡는 후배들 더러 '쁠리에'가

 

안되었다고 욱박지르고, 그러면 난데없는 발레용어에 어리둥절해 하는 후배들 표정을 보며

 

폼 잡고 으쓱거리던 적이 있다. 그러나 조선 춤의 좌우 비대칭적인 활개짓은 익숙해지기 전

 

까지 얼마동안은 균형 잡기 힘든 자세이다. 이는 서양 등 기타 다른나라의 춤사위에는 흔치

 

않은 동작이기에(즉 왼발에 왼 팔, 오른 발 동작에 오른 팔 하는 식이다.), 허공에 솟구치며

 

고개들었다가 부드럽게 숙이기, 들숨 과 함께 팔목 발목 펴 올렸다가 날숨과 함께 제치기

 

하는 둥... ...아마 굿거리, 덧배기 장단에 덩더꿍 거리며 노는 신명은 추어 보지 못한 이는

 

모를 것이다. 이후 박양은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꾸었는데, 졸업 후에도 우리 모임의 연

 

습공간이 생기기 전까지, 그의 무용연구소를 틈틈히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음으로, 나에게

 

도 서양 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지는 않게 되었고, 또 어느 정도 이성적인 호감을 박양에

 

게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사는 것이 어디 춤처럼 흥겨운 것이었던가. 그저 건성으로 연습장에 가서 장구

 

채 만지작거리기에는 벅찬 무게였던 것을......

 

 

 

 채 추위가 가시지 않던 어느 봄날 점심 무렵 몇 년 동안이나 소식 없었던, 그제 선생이 된 박

 

양이 나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를 주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와 안부를 나

 

눈 끝에 그녀가 '오늘 저녁 좋은 공연 자리가 있으니 '백향주'(무용가)를 감상하러 가자'고 먼

 

저 제의하였다. 몇 년 만의 전화 끝이라 좀 엉뚱스럽기는 하였지만 마침 저녁 약속이 없었던

 

터라, 오랫동안 못 본 박선생도 볼 겸해서 시민회관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윽고 장내의 기침소리가 잦아들고 실내조명이 꺼져 어두워지자, 징소리와 함께 커다란

 

무대막이 스스르 올라갔다. 이어 징소리의 부드러운 여운이 사라지기 전, 한 점 스폿라이트

 

가 까만 막을 배경으로 선 백향주의 전신을 향해 쏘아졌다. '중모리' '중중모리'로 오르다 '

 

자진모리'에서 안타까운 듯 더 오르지 못하고, 처진 가락으로 장구채가 움직일 제 대평소는

 

생명력을 불어 넣듯 길고 가늘게 흘렀고, 힘 있으나 고운 선의 춤사위가 무대를 가득 메우

 

기 시작했다. 원작은 1937년 최승희가 발표한 '우조무'였는데 아주 복원이 잘된 듯하였다.

 

넓은 무대가 한사람 여자의 몸짓으로 인하여 오히려 좁게 느껴졌으니, 백향주 그녀의 '당김

 

과 늦춤' ' 폄과 감춤' ' 긴장과 쉼' ' 속도와 휴지' ----- 너울은 천장을 휘어잡고 버선코는

 

공간을 당기고 밀치니, 상하의 중심에 선 허리 아래 엉덩이의 너울지는 듯한 평형이동이 또

 

한 높고도 낮게 비틀리며 놀아나니 --- ---어느 이가 허망한 것이 육체라 하였던가.

 

인간의 신체로써 표현 못할 것이 그 무엇이더냐. 허벅지에 감긴 붉은 빛 치마가 천천히 펴

 

지어 하느작거리며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때, 연록색 앞섶은 살짝 벌어지고, 하얀 우조선(커

 

다란 깃털 부채)은 까만 하늘을 향해 염원하듯 원을 그린다. 이때 저고리 회장은 부드럽게

 

펴지며 움직이어 간절한 몸짓으로 올리는 염원이 이루어 질 듯 표현된다. 과연 오는 봄날에

 

정녕 희망과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춤이였다......

 

다시 '신무'. '관음보살무'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고운 옛 선이 가늘고도 산뜻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실연되어 망막에 란 줄기와도 같은 잔상을 남겨 주며 그녀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죽은 김일성이가 감탄하였다고 하니 적어도 그의 '심미안'은 인정해 줄 만하다 할 것이다. '

 

춤! 스스로 추어도 참으로 흥겨우나, 잘 추는 춤을 보는 것 또한 내가 한바탕 추고 난 듯한

 

개운함을 안겨주었다. 아쉬운 가운데 공연이 끝나고 박선생의 무용연습장으로 가보기로 하

 

였다. 밤길에 오랜만에 당도한 박선생의 무용연구소는 변한 것이 별로 없어, 오히려 편안하

 

고 정겹게 와 닿았다. 그녀가 맥주 몇 병을 내어 놓았고, 우리는 잠자코 잔을 비우며, 상대

 

가 마시는 모습을 벽면에 붙여진 큰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웃고 박선생은 또 웃는 나를 보고 웃었다. 웃음 중에 박선생이 말하였다.

 

'춤이란 일회적인 것이지요, 같은 사람이 추어도 언제나 틀리는 것이 춤이지요, 선배님! 나

 

의 춤이 감동을 추는 춤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박선생은 이어서 말하였다. “저는 제 인생을 춤이라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연

 

습 하지요. 얼마나 편해요. 연습할 수 있는 인생이라니요.“

 

이렇게 말하는 박선생에게 취기가 조금 엿보였다. 그러나 유치해 보이는 그 말은 오히려 바다

 

속처럼 침중하고 깊게 느껴졌다. 얼마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물론 박선생의 집에서

 

자고 올 수도 있었다. '춤은 일회적이예요'라고 하는 그 말이 묘하게도 귓바퀴에 걸렸기 때문

 

이다. 물론 그날 밤, 집으로 돌아 온 것도 일회적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름다운 행동도 돌이킬 수는 없는 법이니.... 감동도 일회적이거늘......

 

그 얼마 후 박선생의 슬픈 부음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도 다시 몇 년이나 더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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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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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원응 곽영순 | 작성시간 10.03.11 권오주회장님의 다양한 편력에, 아니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깊이에, 아니 그 엉뚱함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가지 않은길의 여운과 지계...........낙양동천이화정(洛陽洞天 梨花亭) 덩 더꿍 덩따 얼쑤~
  • 작성자일묵 / 悟珍 | 작성시간 10.03.11 전 권 회장님 춤은 일회적이예요, 말씀에 저도 생각많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사성)
  • 작성자길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3.12 곽회장님이 깜짝 놀라셨다니, 회장님의 놀라심이 저를 좀 놀라게 하는군요.
    저는 늘 세상과 사람이 두렵고, 겸손할 것 없는 저의 깊이가 부끄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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