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에 ○
朝鮮 明宗 17년 (1562) 지금의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나(萬頃誌=禪師震默生鄕之
地於火浦) 인조 11년(1633)에 세상을 떠난 진묵대사는 한국 불교사 가운데 드물게 보는
불교의 실천적 실존주의자(實存主義者)로 꽤나 방만한 중이었다. 거기에다 성격조차
호방해서 스님이라고 하기에는 걸맞지 않는 담대한 기백과 풍류가 항상 진묵의 세계에
넘쳐 있었다. 한국의 승계(僧界)가 그를 가리켜 기승(奇僧)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그가
여느 중으로서 갖는 법도(法道)의 테두리를 이따금씩 떠난 담대한 기백과 넘치는 풍류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묵은 불도의 실천적 사상의 법도를 정신세계에서 찾았던 기존의 불교세계에 도전이라도
하듯 모든 이념적 불교사상을 행동화함으로써 그의 불교입신에 새로운 경지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절(寺)이란 어디까지나 중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도를 닦는 중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했던 진묵은 그의 법도를 펴는데 절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마을의 모정이나 길바닥을 택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교(布敎)의 수단을 법당에서 얻지 않고 직접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군중 속에
뛰어들었던 진묵에게서 한국 불교사를 통해 실존적 불교사상을 폈던 몇 사람중의 하나를
찾을 수 있는 큰 보람을 안기는 것이다.
이러한 진묵의 이른바 불교의 실존적 사상성은 기존 불도를 대폭 떠난 이단이 아닐 수
없다 하여 거센 시련을 받기도 했으나, 진묵은 끝내 절은 도를 닦는 중을
위해서만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중생을 위해 절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불도의
정법(正法)이라고 되풀이 강조하면서 그의 실존적 불교사상을 펴나갔던 것이다.
◈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이야기 ◈
진묵은 조선 인조 때의 스님(1562~1633)으로. 이름은 일옥(一玉)이며. 김제 만경면
화포리 불거촌(佛居村) 이란 해변에서 출생하여 7살 때에 전주 봉서사(鳳棲寺)에
출가하였다. 신통이 자재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책장에 한번 눈길이 스쳐 지나가면
그냥 모두 기억할 만큼 대단하였다 또한 도력이 높아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
받았으며,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한다.
※ 봉서사에 출가하다 ※
이조 명종대왕 때 어느 날 저녁 전주 불거촌(佛居村)에 화광이 충천하여 이웃동네에선
불이 났다고 불을 끄러올 정도로 온 마을이 불타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막상 도착해보니
불이 난게 아니고 한 집에서 불빛이 비춰나와 주인을 불렀더니 막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여 모두 성인이 태어나셨다고 공경한 마음으로 아이가 태어남을 축복해 주었다.
바로 석가여래의 후신을 자처하시는 진묵대사가 태어난 날이었다.
대사의 부모는 마흔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봉서사에 다니면서 지극하게 생남불공을
하다가 어느날 천신이 빛이 영롱한 구슬하나를 툭 던져 주었는데 점점 커지면서 모양이
변하더니 마침내는 연화대에 앉아계신 좌불상으로 변하고 어느새 나무 석가모니불을
염불하는 승속의 제자들이 법당에 가득차 어머니도 저절로 엎드려 절을 하다 깨어났는데
이후 태기가 있어 대사를 낳으셨다고 한다. 구슬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꿈을 꾸고
낳으셨다 하여 이름을 일옥(一玉)이라 짓고 부처가 될 아이라고 고이고이 기르는데 대사
일곱살이 되었을 때 문득 어머니를 향하여
" 어머니 제가 누군지 아세요 ?"
" 뭐, 누구라니 ?"
" 내가 누구냐니까요?"
" 네가 내 아들인 일옥이지^^"
" 엄마는 내가 일옥이 인줄만 알고 부처님 인줄은 모르는구려."
" 뭐 부처!"
" 내가 일옥이가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에요 "
진묵의 어머니는 어린애가 부처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을텐데 어디서 듣고 스스로
부처라고 할까 ? '참 이상하다'하고 생각하는데....
" 부처가 배워서 아나요. 깨쳐서 아는 것이지요. 배워서 아는 것은
부처가 아니고 보살이란 말이에요".
" 허, 애가 보살까지 아네."
" 저는 요 사람들이 아는 것은 물론 사람이 모르는 것 까지도 알고 있단 말이에요."
" 그래..... "
그때야 비로소 어머니는 천신에게 받은 옥이 변하여 부처가 되자 수많은 스님들이 절을
했고 자신도 절을 했던 태몽이 생각났다.
'이 아이가 정말 부처님인가 보다'
그 후 부모님들은 대사를 일옥이라 부르지 않고 '우리 부처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곱살이 막 지난 어느날 진묵은 "어머니 봉서사에 가서 살겠습니다." 하고 청을 드렸다
"아니, 우리 부처님이 집에서 살지 절에 가서 무얼 하려고 합니까 ?"
"부처가 절에서 살아야지 어떻게 마을에서 살 수 있습니까? 어머니 출가를 허락 해 주세요"
진묵의 소원이 하도 간절하여 대사의 부모님들은 할 수 없이 봉서사에 데리고 갔습니다.
" 자! 부처님 원대로 봉서사에 왔으니 어느 스님이든지 스승될 분을 선택하여 잘 모십시오"
둘러선 스님중에 혜영대사를 스승으로 정하니 혜영대사는 지난 밤에 꾼 이상한 꿈이
생각나 어린 일옥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 네가 나의 상좌가 되고 싶으냐?"
" 예"
" 너의 이름이 무엇이드냐?"
" 저는 성이 불가(佛哥)이고 이름은 일옥입니다."
" 불가라는 성도 있느냐?"
" 저의 아버지는 불교를 믿은 후로는 성을 석(釋)씨로 고쳤으니 석씨 집안의 아들인 저는
불자가 아니겠습니까?"
" 허, 나이가 몇이드냐?"
" 일곱살입니다"
" 너의 몸이 일곱살이냐 마음이 일곱살이냐 ?"
" 스님의 머리가 백발이신데 스님의 머리가 세었습니까 ? 마음이 세었습니까 ?"
" 나의 머리가 센 것이지 마음이 센 것이 아니다."
" 저도 육체가 일곱살이 된 것이지 마음이 일곱살은 아닙니다."
" 너는 왜 여기를 왔으며 무엇을 하려고 왔느냐?"
" 네, 부처가 되려고 왔습니다."
" 깜찍한 말이로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냐?"
" 하기야 제가 본래 부처인데 세상 사람이 몰라주기 때문에 부처가 되는 흉내를 내볼까
하고 왔습니다."
" 네 말과 같이 본래 부처라면 어찌하여 지금 중생의 몸을 받았느냐?"
" 스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입니까 ?"
"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면 부처가 되겠다고 수행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또 네 말처럼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중생이니 부처니하는 두 이름이
있겠느냐 ?"
" 스님, 아는 사람에게는 둘이란 말도 틀리고 둘이 아니란 말도 오히려 우수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이에게는 분명히 부처는 부처요. 중생은 중생이라고 일러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마음이 어두우면 중생이기 때문이지요. 같은
거울이라도 밝은 거울이 있고 흐린 거울이 있듣이 사람도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중생과 부처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 너는 그런 말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 스님은 숨쉬고 밥먹고 잠자는 것을 누구에게 배워서 아십니까 ?"
" ........."
혜영대사는 간밤에 석가여래께서 수만 대중을 거느리시고 봉서사로 들어오시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깼는데 꿈이 헛되지 않음을 알고 일옥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사는 좋은날을 골라 일옥의 머리를 깍고 법복을 입힌 다음 대중공양을 올리고 일옥에게
사미오계와 십계를 설해주고 동자승을 삼아 조석과 사시불공에 마지와 다기 올리는 일을
하도록 했다.어느날 대중스님들의 꿈에 금강밀적신장이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
"대중들은 듣거라! 새로 들어온 동자스님께 향로다기를 들려서 신중단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불보살님을 모시고 받드는 신장인데 어찌 석가모니 부처님 화신인
동자스님께 향다를 올리게 하느냐.
우리가 송구스러워서 몸둘곳이 없으니 당장 그만 두시게 하여라. 알겠는가?!"
" 허! 꿈이었구나"
금강밀적신장이 현몽을 했는데 경내의 대중이 모두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
동자스님을 받들어 모셔야 겠어." 대중들이 똑같은 꿈을 꾼 뒤로는 일옥사미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고 심부름을 시키지도 아니 하였다고 한다.
※ 지는 해를 묶어두다 ※
심신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스님의 초탈한 경계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일이
있다. 득도한 스님은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풍류를 즐길 줄 알았으며, 스님은 특히 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술이라 하면 마시지 않았고 곡차(穀茶)라 해야만 마셨다.
스님은 익산군 춘포면 쌍정리에 있는 누님 집에 가끔 들렀다. 누님은 동생을 위해
곡차를 늘 준비해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이 누님 댁에 들렸더니 누님은 집에 없었다.
밭일 나간 누님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돌아서려는데 누님이 집에 곡차를 준비해 두었으니
마시고 가란다. 스님은 그 좋아하는 곡차를 두고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누님이 일러 준대로
부엌으로 들어가 술이 담겨 있는 것 같은 조그만 독 뚜껑을 열고 독채로 들이마셨다.
스님은 기분이 좋아서 봉서사에 돌아와 정(定)에 들어 있었다.
들일을 마치고 석양이 되어 집에 돌아 온 누님은 부엌으로 들어가 동생이 곡차를 마시고
갔는지를 먼저 살폈다.술독이 놓여 있는 곳을 살핀 누님은 깜짝 놀랐다. 술독은 그냥
있는데 그 곁에 있는 간수독의 뚜껑이 뒤집혀 있었다. 심장이 멈춰서는 것 같은 충격으로
두 독의 뚜껑을 벗겨봤다. 간수독은 비어 있고, 술독의 술은 그대로 있었다.
누님은 용수철처럼 뛰어나와 그대로 봉서사를 향해 달렸다.
이미 석양인데 삼십 리 길을 단숨에 뛰었다.간수 한 독을 마시고 살아남을 사람이 누군가.
아마 황소가 마셨더라도 살지 못할 일이다.
누님은 자기의 잘못으로 동생이 간수를 마시게 됐다고 가슴을 치면서 정신없이
봉서사까지 뛰어간 것이다. 해가 서산 마루에 동그란 얼굴을 반만 걸쳐 놓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려오는 산길을
거꾸로 올라 봉서사에 당도한 누님은, 절이 조용한 것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진묵스님이 있었으면 절 안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묵스님은
조실 방문을 열어 놓고 기분이 좋아 빙그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너무나 의외의
일에 누님은 또 한번 놀랐다.
"곡차로 알고 마시면 곡차가 되는 것이지 누님은 걱정도 많으십니다. 어둡기 전에
어서 돌아가십시요."
살아 있는 동생이 한없이 고맙고 존경스러웠지만, 해가 져가는 시간에 삽십 리가 넘는
산길을 되돌아 가라니 야속하고 섭섭했다. 그러나, 동생의 신비스런 힘을 믿는 누님
이었으므로, 그 길로 돌아서 집으로 왔다. 누님이 집에 다 올 때까지 서산에 꼭 그만큼
걸려 있던 해가 누님이 집에 들어서자 산너머로 들어가 버리고, 갑자기 캄캄한 어둠이
꽉 차는 것이었다. 진묵스님이 해를 묶어 왔다고 속인들은 이 일을 더욱 재미있어 하지만,
스님은 염산성분의 맹독을 마시고도 그것을 인체에 유익한 곡차로 소화하는 자재한
정신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 진묵대사의 효심 ※
스님의 효심은 단연코 타의 추종을 허락치 않는 것이었다.
스님의 어머니가 서거하신 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밝히지지 못하고 있지만, 그 곳이
불거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왜 그러냐 하면 진묵스님은 어머니의 만년을
늘 가까이서 모셨고, 진묵스님이 주석하신 곳이 봉서사, 원등암, 일출암 등 전주
일원이고 월명암과 대둔산 태고사 (太古寺)까지 연장하여 어머니의 만년을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간다. 아무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진묵스님과 두 자매가 모두
세상을 떠나더라도 길이 길이 만인의 향화 참배를 받게 되도록(無子孫千年香火之地 :
무자손천년향화지지: 자손 없이도 천년동안 향화를 올릴 명당지)를 찾아 불거촌에
어머니의 묘를 모셨다. 봉서사나 일출암에서 불거촌까지는 백리가 넘는 먼길이다.
스님은 어머니의 유해를 모신 상여를 스님이 태어난 고향땅 불거촌까지 메고 가서
거기에 가서 안장한 것이다. 이런 진묵대사도 말년에는 고향을 찾아 부안 변산에서
입산수도를 계속하다가 1592년(宣宗 25년) 아주 퇴락(頹落)되었던 월명암(月明庵)을
손수 중수하고 거기에서 그의 여생을 마쳤다고 기록이 전하고있다. 그리고 대사의
생향이기도 한 화포리에서 그곳 사람들에 의해 진묵대사를 영원히 추모하기 위해
주행 조앙사(舟行 祖仰寺)라는 조그마한 절간을 세워 오늘에까지 보존되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원불포(현, 화포부락)에는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가 아직도 동그랗고 크나 큰 무덤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묘가 또한 '천년향화(千年香火)'의 명당으로서
진묵이 잡은 것이며 춘하추동 근 4백 년동안의 풍마우세(風磨雨洗) 가운데도 그 윤곽을
뚜렷이 하는 것은 역시 진묵 같은 대각의 대사가 직접 '무자손 천년향화(無子孫 千年香火)'
의 명당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震默大師 悟道誦(진묵대사 오도송) ※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