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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이야기 2◈

작성자심헌|작성시간11.03.05|조회수47 목록 댓글 0

 

·※ 한달동안 정(定)에 들다.

 

스님이 봉서사의 산내 암자인 상운암(上雲庵)에 계실 때의 일이다.

공부하는 대중들이 결제(結制)를 앞두고 모두 탁발을 나갔다.

결제기간중에는 참선도량에서는 일체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므로 결제기간

중에는 사람이 죽어도 그대로 두었다가 해제가 되어서야 다비식을 거행한다. 이렇게

엄한 것이 선방(禪房)의 규율이었다.

상운암의 대중들도 그런 엄격한 규율 밑에서 진묵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3개월 동안 참선을 하려면 그동안 먹을 양식을 미리 탁발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스님만 혼자 남아 집을 보시게 하고 대중들은 한 달 동안을 기약하고 멀리

떠나 갔다. 탁발 나갔던 사람들은 충분히 탁발을 해서 상운암으로 돌아왔다.

진묵스님은 석고처럼 우두커니 앉아서 사람이 돌아 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 가서 보니, 스님의 얼굴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무릎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얼굴에 얽혀 있는 거미줄을 걷어내고, 무릎의 먼지를 털어내며, 이름을

대면서, "돌아왔습니다."고 인사를 드리니, 스님은, "너는 왜 그렇게 속히 왔느냐"고

물으셨다. 탁발을 내보내고 스님은 홀로 남아 앉은 채로 '정(定)'에 들어버린 것이다.

 

※ 엄삼매 (嚴三昧)에 들다.

 

스님이 월명암(月明庵)에 오래 계셨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거니와 여기에 계실 때의

일이다. 이곳도 수도처로 신심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올라가기 어려워 먹고 지내기가

힘들었다. 가을이 되어 대중 스님들은 탁발을 나가고 시자 한 사람만 남아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에 초상(忌故)이 나서 시자는 그곳에 가야 했다.

시자는 때가 되면 스님께서 잡수시도록 공양을 준비하여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스님께 여쭈었다."여기에 공양을 차려 놨으니 때가 되면 스님께서 들어다 잡수십시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방문을 열어 놓고 능엄경(楞嚴經)을 보시는 채로 그냥

 계셨다. 시자는 곧 마을로 내려가 일을 다 보고 다음날 암자로 돌아 왔다. 돌아 와

보니 스님은 어제 그대로 앉아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 시자가 가까이 가서 보니

문지방에 얹힌 스님의 손에서 피가 흘러 그대로 말라 엉겨 있었다. 문지방에 스님의

 손이 얹혀 있는데 바람이 불어 문을 밀어붙인 것이다. 스님은 손가락이 깨어져 피가

 흘러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삼매에 들어 계신 것이다. 탁자를 올려다 보니 어제

차려 놓은 공양이 그대로 있었다. 시자가 절을 하고 밤사이 문안을 올리니 스님은,

"너는 왜 제사 참례 안하고 빨리 왔느냐"고 했다. 스님은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에

 들어 하룻밤이 지나갔는데도, 시자가 돌아와 소리내어 문안을 드릴 때까지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마음도 몸도 다 벗어버리고 그것을 초월해 있었던 것이다.

 

※市場바닥에서 좌선

 

스님은 좌선을 조용한 곳을 찾아 하지 않고, 시끄럽고 편치 않은 곳을 찾아가 경계를

여의고 심신을 벗어나는 공부를 익혔다. 스님은 전주(全州)장이 서는 날이면 봉서사에

내려와 전주장에 갔다. 스님은 장바닥 시끄럽고 복잡한 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안식(眼識)경계를 여의는 공부를 했다. 그 어지러운 장바닥을 헤쳐 다니면서 코 앞만

 볼 뿐 그 밖의 것에 눈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님은 하루 종일 시장을 보되

 본 것이 없는 것이다. 또 스님은 장바닥 시끄러운 곳을 골라 거기에 앉아 이식

(哥識)경계를 여의는 공부를 했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도록 경계를 떠나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잠자는 것이 아니다.

초롱초롱한 상태만 있을 뿐 보이거나 들리는 것이 있어서는 공부가 안 된 것이다.

눈을 감거나 귀를 막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런 공부는 초기의 공부에 속한다.

 진묵스님은 이렇게 장을 보고나서 공부가 잘 되었으면, "오늘은 장을 잘 봤다."고

하고, 잡념이 끼어 들어 눈이나 귀가 어지러운 일이 있으면, "오늘 장은 망쳤다."고

일어섰다.

 

※되살아난 물고기

 

진묵의 기담이라면 먼저 어혼환생진묵(魚魂還生震默)의 이야기가 있다. 진묵이 이미

고승(高僧)이 되어서였다. 그가 속해 있던 절은 무척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진묵이 길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어느 고을인지 탁발을 나갔던 것이다. 머리에는

용수갓을 쓴 채 다 낡아빠진 장삼, 가사에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외우며 어느 마을에

 당도하니 때 마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큰 가마솥에 시뻘건 불을 지펴 놓고

많은 물고기를 끓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 이 고명한 진묵대사를 알아차릴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장난기 많은 사람들은 장대같이 솟은 키에 땟국이 졸졸 흐르는 장삼자락을

움켜잡고 염불을 외우는 이 볼품없는 중을 한 번 골려줄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지나가는 진묵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여보 스님! 오뉴월의 이

긴긴 해에 탁발하러 돌아다니시기에 배도 좀 고프겠소. 그래 스님을 생각하여 이

생선국 한 그릇을 끓여 놓았으니 염이 있다면 한 그릇 해보시는 것이 어떻소."

 중이라면 본래 오채를 금하는 법이고 또 더 더군다나 살생을 금하는데 어찌

생명있는 생선국을 먹을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볼품없는 중을 한 번 골려주기 위한

 장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묵은 태연하기만 하였다. "후한 인심이로다. 그래

당신들은 왜 먹지 않고 나에게만 먹으라는 거요?" 그러자 한 사내가 대답했다.

 

"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배가 터지라고 먹었는데 스님에게도 한 그릇 권하고

싶어서. 맛이야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리만큼 천하의 일품이니 염이 있으시면

한 그릇 해보시지요."해 놓고는 모두 깔깔 웃기까지 하는 것이다. "후한 인심이로다.

 정 그렇다면 내가 먹어 볼만도 하이 ‥ 진묵은 이렇게 말하고 장삼과 배낭을 풀어

놓을 생각도 아니하고 그대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솥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누가 옆에서 주는 큰 사발을 저만치 던져 버리고는 그

큰 가마솥을 불끈 두 손으로 쳐드는 것이 아닌가.

 

어느 장사가 그처럼 힘있게 물고기와 물이 가득 든 채 부글부글 끊고 있는 가마솥을

그렇게 가볍게 들 수 있을 것인가. 놀란 것은 물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아니! 이 양반이 ‥ 조소에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이 느닷없는

이변에 모두 입을 벌려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내 진묵은 그 가마솥 안에 든 물고기를

한 사발도 남겨 놓지 않고 꿀꺽꿀꺽 다 마셔버리고 만 것이다.

"허, 허, 허허 ‥‥‥‥ 마을 사람들은 진묵의 이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역발산

(力拔山)의 항우같은 힘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자! 이만하면 어떻소! 덕택으로 잘 먹었소이다. " 이윽고 입을 딱 벌린 채 말 대답조차

 못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뒤에 두고 진묵은 똘물을 타고 한참동안 올라가더니

냇물에 벌건 엉덩이를 내놓고 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괴이한 변일까.

진묵의 변이 물위에 흘러내리는데 얼마 전까지 가마솥에서 푹푹 삶아져 그의 입으로

 들어갔던 물고기들이 펄펄 뛰며 살아서 도랑으로 헤엄쳐 내려오는 것이었다.

꿈속인양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그 때에야 모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것이었다.

"미흡한 인간들이 미처 고명하신 대사님을 몰라 뵈옵고 ‥ 황공 무지로소이다.

그러하오나 고기가 다 살아서 저렇게 펄펄 뛰어 노는데 어찌하여 저놈 한 마리는

꼬리가 잘라진 채 소생을 못하옵니까?" 하고 공손히 물었다.

"하나 ‥ 과연 그렇군! 그놈의 꼬리는 저 가마솥가에 있을 것이요." 아닌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가마솥을 들여다 보았더니 거기엔 잘라진 꼬리 한 토막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엎드려 잠시동안의 허물을 계속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진묵이 불도 도통했다는 경지의 이야기이기도 하겠으나 또

어혼(魚魂)이 인도환생(人道還生)해서 바로 진묵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주지방과 김제, 만경지방에 아직도 전해지는 전설이기도 하다.

 

※ 8만대장경(八萬大藏經)과 진묵대사

 

진묵이 도승으로 그 경지를 높였을 무렵에는 가야산 해인사(伽飾山海印寺)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진묵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을 줄줄 암송

통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진묵과 팔만대장경과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진묵이 완주 봉서사에 있었을 때였다. 춘하추동 절후를 맞춰 해인사를 가는 진묵이

그가 다녀온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하루는 갑자기 상좌에게 해인사에 갈 행장을

 꾸리라는 것이었다. 의아한 상좌가 "아직은 가실 때가 아니온데 어찌 행장을 꾸리라

하시옵니까?" 하고 물을 수 밖에. 그러자 진묵은 "글쎄! 해인사 팔만대장경판(板)에

 필유곡절이 생길 것 같구나"하며 그대로 행장을 갖추고 해인사로 내 닿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묵이 해인사에 닿아 잠시 여장을 풀고 첫밤을 맞으려하니 동편의

경판을 소장해 놓은 장각(藏閣) 옆에서 갑작스럽게 불이 일어났는데 멈출줄 모르고

 대장경을 소장해 놓은 장각으로까지 번지는 것이었다.

절 안의 수 많은 승려들이 이 난데없는 이변에 모두 나와 발을 동동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진묵만은 너무도 태연 자약하며 홀로 석가존(釋迦尊)의 불상(佛像)

 앞에서 한참동안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기도를 마친 진묵은 솔잎에

 물을 적시어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방울을 뿌리니 이제까지 가는 비로 한 방울

두 방울 뿌리던 비가 갑자기 폭우로 변해 순식간에 불길이 잡아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팔만대장경판이 연소(燃燒)직전에서 위급을 면하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해인사를 둘러싼 경상도 일대에 널리 퍼져 있는 진묵대사에

얽힌 전설이다.

 

※ 없어진 모기

 

진묵스님이 지금의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에 있는 용화산 일출암(日出庵)에 머물러

계실 때 절 밑 동네인 왜막촌(왜망실)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왜막촌은 산골

동네로 개울이 있어 여름이면 모기가 많았다. 어머니가 모기 때문에 밤잠이 편치

않으신 것을 알고, 스님은 산신을 불러 모기를 다스려 주도록 당부했다. 그 뒤로

 왜막촌에는 모기가 없어졌다. 적어도 진묵스님 이후(유적고)가 간행된 1850년까지

 2백여 년간은 모기가 없었다. 이 밖에도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날려 보낸 일,

국수를 먹겠다고 졸라대는 대중들의 발우에 바늘 한 개씩을 넣어 주고 스님 발우에도

 똑같이 바늘을 넣어 스님 발우에는 국수가 가득 차는데 대중들의 발우에는 바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일 등 신비스런 일들이 많다.그러나, 이 모든 신통을 스님은

결코 대도(大道)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셨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애(人間愛)

 

진묵스님은, 승단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속기피 의식에 구애되지 않았다.

스님은 출가한 후에도 늘 어머니를 돌보고 '자매(姉妹)들에 대해서 깊은 우애를

가지고 있었다.출가하면 부모형제의 인연까지도 끊어버리고 만나기조차 회피하는

승려의 세속기피사상은 수행단계에 있어서의 정신적 안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선정(禪定)에의 출입과 삼매의 현전이 자재한 진묵스님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애 넘치는 보살행이며, 인간본연의 상정적인 것이다. 진묵스님의 대

보살된 인간애를 엿보게 하는 (어머니의 發文)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始中十月之恩 何以報地 膝下三年之養未能忘矣.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

 태중시월지은 하이보지 슬하삼년지양미능망의 만세상갱가만세 자지심

猶爲嫌焉. 街年內 未滿百年. 母之壽 何其短也單飄路上 行乞一僧旣云溫矣 橫차闔中

유위협언  가년내 미만백년 모지수 하기두지단표로상  행걸일승기운온의 횡차규중

末婚小妹 率不哀哉. 上壇下壇罷僧尋各雇. 前山疊後山重 魂歸何處 鳴呼哀哉

말혼소매 솔부쇠재  상단하단 파승심각고 전산첩후산중 혼귀하처 명호쇠재

 

열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슬하에서 3년동안 길러 주신 은혜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 위에 만세를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오히려 불만이온데,

백년 생애에 백년도 못 채우시니,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으십니까.

한 쪽 표주박을 들고 길에서 걸식하는 이 중은 이미 말할 것이 없거니와 규중에

비녀를 꽂고 들어 앉아 아직 출가하지 아니한 어린 누이야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상단불공도 마치고, 제사도 끝나니 스님네는 제각기 방으로 찾아 들었습니다.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은 겹겹한데, 어머님의 혼은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아! 애 닳으옵니다.

 

·진묵스님과 유학자 김봉곡

 

부처님에 대한 일반적 이해가 대자비이므로 자비와 부처님은 우리민족에 있어서는

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다. 그 자비심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생불(生佛)이라고 불렀던

어린 동자는 총명하다고 말하기에 적당치 않은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일곱살에 출가하여 처음으로 내전(內典)을 읽기 시작했으나, 마치 칼로 실을 끊듯

도리가 분명하고, 한번 눈에 스치면 곧 외워버렸다. 이러므로 누구한테 물어볼 일이

없어 스승이 필요 없었다. 어린 사미가 이렇게 공부하는 것을 절대 중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경전을 들여다 보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그것을 배우기에는 너무 어리고,

 물어보는 일이 전혀 없으므로, 어린 사미가 내전을 혼자 읽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내전(內典)만이 아니라 외전(外典)도 스님은 보지 않은 책이 없었던 것같다.

 대사는 말년을 전주의 봉서사에 보냈다. 봉서사라면 그가 일곱살 때에 출가한 절이다.

 

 거기서 내전과 외전을 배웠고 사미로 성장한 절이었다 그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곡선생이란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덕망과 학식을 두루 겸한 고매한

 사람이었다. 대사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로, 서로 트고 지내는 터수였다.

한 번은 대사가 봉곡선생을 찾았다.

"봉곡선생, 그 <도감강목(道鑑綱目)> 좀 빌려 주시겠소이까? 왜 있잖소. 거누구

어록이라던가?" 봉곡선생이 알아차리고 옆에 놓았던 책 한 권을 빌려 주었다.

대사는 그 책을 받아들이고 말했다.

"모두 12권이라던데 이 한 권만 빌려 주시면 나머지는 언제 보겠습니까?

아주 12권을 함께 빌려 주구려."

"아무리 대사가 총명하기로서니 한 권을 읽는 데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열흘씩은 걸려야 할 거요."

"하여간 함께 주셨으면 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구려."

대사는 어록 12권을 빌려 바랑에 넣어 가지고 갔다. 봉곡선생이 사람을 시켜 대사의

뒤를 밟게 했다. 대사 또한 미행자가 있음을 눈치채고는 책 한권씩 빼어 다 읽고는

길 옆에 던져 버렸다. 그렇게 해서 봉서사까지 오는 동안 12권을 모조리 읽었고 또

모두 길 옆에 던져 놓았다. 봉곡선생의 심부름을 맡은 사람은 대사가 버리는 책을

주섬주섬 주워서 돌아가 버렸다.

뒷날 대사가 봉곡선생을 찾아가 수인사를 나누자 봉곡선생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빌려 간 소중한 책들을 모두 길가에 던져 버리셨소. 내 사람을

 시켜 거두어 오기는 했소이다만..."대사가 말했다.

"아, 그러셨소이까? 그야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에는 집착하지 말아야 되는게

아닙니까? 나와 선생의 차이점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소이다. 나는 읽고 난 책은

버리고 선생은 다 읽고 난 책을 다시 주워 모으고 말이오.

허허."

봉곡선생이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아듣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소이까?"

"예, 통발의 목적은 고기를 잡는 데 있고 뗏목의 목적은 강을 건너는 데 있으며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소이다. 만일 고기를 잡고도 통발에

집착하거나 강을 건너고도 뗏목에 집착한다면 되겠소이까? 손가락을 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되겠소이까?"

봉곡선생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 그 어록의 내용을 죄다 이해하셨소이까?"

그리고 모든 내용을 책을 펼쳐 가면서 물어 보았다. 

 

이를 봉곡이 확인하니 한 글자도 틀림없이 모두 맞는 것을 보고 내심 ‘진묵이 불법

(佛法)에 통달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마저 통달한다면 내가 상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며, 불법도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시기 질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진묵이 천상에 가서 경문을 가져왔으나 봉곡이 진묵의 육신을

화장하여 돌아 올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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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명사교실(明師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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