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운데 붓글씨로 쓴"i have arrived"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눈앞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기운이 모두어지며, 수도원의 에너지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우리가족은 도착하였다. 2012년 6월 27일 저녁 7시반, 틱낫한스님(Thich Nhat Hanh)의 수도원 - San Diego Deer Park Monastery. 장년의 비구니 스님 한분과 백인 노인 한분이, 조용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접근하신다. 4박5일의 가족 수련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또한 우리 아들은 그 일주일 뒤, 역시 4박5일의 teen retreat도 참가하였다. 올해 대학을 가는 아이가 우리 슬하를 떠나기전, 전가족이 함께 할 의미있는 일을 찾던 중, 운좋게 시간과 경비 그리고 의미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이 일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워낙 오후 5시까지 도착해 저녁을 수도원에서 먹기로 되어있었지만,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늦어진 것이었다. 참여하는 인원이 많은 관계로, 숙소의 방이 없어, 텐트를 치는 것으로 예약을 했었다. 짐만 내려놓고는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큰법당을 찾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앞 왼쪽에는 비구니스님, 오른쪽에는 비구스님이 단상위에 단아하게 앉은 자세로 차분차분 교대로 말을 이어갔다. 무척 조용하게 정돈 되어있는 느낌이었고, 말과 말 사이, 그리고 두 스님의 말 교대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무슨 룰이 어떻고 하는 딱딱한 지침이 아니라, 그냥 지금의 현존하는 의식에 집중하게 하는 가이드, 그야말로 처음 방향을 잡는 오리엔테이션 이였다.
다음날 아침 5시반 종소리에 잠을 깬다. 자고있는 잠꾸러기 아들에게 예불을 갈거냐고 물으니, 당연히 가야지 하는 아들이 대견하다. 범종소리를 들으며 법당에 올라가니 그 너른 법당 가운데 두줄은 약 삼사십명의 스님들이 앉고 왼쪽은 여자, 오른쪽은 남자들이 앉는다. 아내가 멋모르고 나를 따라와 앉았다가, 한 스님의 조용한 안내로 저편으로 간다. 우리 한국식의 예불은 없다. 그러고보니, 법당앞 제단에 불상이 없다. "This is it"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잘 아우러진 분재 몇개와 등불, 그리고 촛불 두개가 단아하게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모든 신호는 큰 항아리 종과 작은 요령으로 한다. 큰종은 주위를 집중시키고, 작은 종은 동작들을 지침한다. 큰종소리와 함께 Guided Meditation을 약 30분 한후, 불경을 약 10분간 읽어 준다. 미국인 스님이 영어로 찬찬히 읽어 주어 내용을 알아듣기에 좋았고 경전도 참 잘 선택된 것 같다. 끝으로 앞쪽 단을 향해, 그리고 양편의 서로를 향해 삼배를 하는 것으로 아침의식은 끝난다. 바깥의 부처를 예불한다기 보다 내 안과, 우리들 각자안의 부처를 향해 예불을 하였다. 그리고는 나와서 모두 mindfulness 걷기 명상을 약 30분 하였다. 앞서가시는 스님들이 온화하고 수려하다.
7시 반, 약 80명의 어린이들, 약50명의 틴, 그리고 어른들 약 4-500명이 식사를 하는데, 각자 먹을 만큼 담아와서, 부산하게 자리 잡고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하지만 먼저 먹지는 않는다. 종소리가 나면,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함께 감사문을 읽고 먹는다. 식사 도중에는 noble silence를 지키게 되어 있지만, 어린아이들 때문에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소리만 나면 일단 모두 행동을 멈추는 것이 이곳의 룰이다. 우리는 처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벌써 몇년을 다녀봐서, 어린아이들까지도 그것이 딱 몸에 배였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순간 정적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음식찌꺼기는 아이들이 일부 남기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각자 그릇은 네단계로 씻어서 마지막에 부엌으로 들어가 기계에 의해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한다. 모두가 잘 짜여져 있고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며 식사 당번을 한다. 음식 찌꺼기는 썩혀서 퇴비로 쓴다. 이안의 전기도 큰 태양전지판에서 자급자족한다. 모든 것이 세심하게 환경친화적으로 구성되어있다.
나머지 수련 일정을 일일히 다 묘사하자면 끝이 없어, 여기에 몇가지 요점사항과 느낀 점들만 정리해 본다. 첫째, 불상 불교, 스님 불교가 탈피되어있다. 불교가 추상적이지 않으며 그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스님들은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 facilitator이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경험이 많고 수행이 어느정도 된 신도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말로, 잘 깨어 mindful하게 한다. 스스로 순간 순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모두가 돌아 가겟금 공간을 준다. 모두가 저절로 각성점두의 분위기에 빠져 들게금 된다. 그런 에너지가 수십년간 누적되어 있어서, 여기서는 삶의 악세사리로서의 종교는 없다. 오면 그냥 수행자가 된다. 둘째, 상가(출가자와 재가자를 포함)는 미국 사회에 정착이 되었다. 항상 상가를 존중하는 분위기이며,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안정적이다. 약 1/4이 백인스님들이고 특히 이번 수련회를 주도했다. 수련회 참가자들은 80%가 미국인 특히 백인들이고 나머지가 베트남사람들이다. 선도하는 미국인들은 교수, 변호사, 기업의 책임자 등 주류층의 사람들이다. 일부 베트남 사람들은 동시통역을 통해 참여한다. 내가 본 바와 추측으로, 사원의 운영이 미국인들에 의해서 되는 것 같다. 세째, 비젼과 현실 실행이 명료하다. 자기 깨어 있음의 완성, 세상을 향한 자애, 그리고 확대된 자연환경 친화적 5계의 실천 등이다.
이번 나의 최대의 결실은 불교의 밝은 미래를 본 것이고, 우리 식구들에게는 좋은 도구를 손아귀에 쥐게 해 주었다. 어제 저녁에 아들이 말하길, 아빠가 나간 오후에 서너시간을 엄마랑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사이 엄마랑 사이가 매우 안 좋았었기에, 내가 걱정하며 얼마나 감정대립을 많이 했느냐고 하니까, deer park에서 하는 것 처럼 mindful하는 것을 자주 돌이키며 대화를 하니까, 감정이 격한 일이 별로 없이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지난 4년간 있은, 제일 획기적인 성과다. 아들과 아빠랑은 앞으로 영적인 동반자가 되기로 약속을 했다. 더 부지런히 정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