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삶의 본래 상태의 확인이다.
삶의 본래 상태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인데,
스스로 정신(넋)이 미혹되어 그러함을 잊고 있는 것이다.
삶의 본래 상태는 깨어있음으로 확인된다.
깨어있음이 수행이다.
깨어있음은 앎(아는 상태)가 알아지는 상태다.
앎(아는 상태)는 알아지는 것(대상)이 있으면 스스로 기능한다.
스스로 기능한다는 것은 이미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앎을 이미 스스로 아는 상태가 깨어있음이다.
수행(깨어있음)에는 방법이 없다.
이미 그러함을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깨어있음)인데,
정신 파는 짓만 하지 않으면 이미 깨어있는 상태인데,
정신 차리면 바로 깨어있음인데,
깨어있기 위한 방법이 필요한가?
굳이 방법이라면 인위적인 아무 짓도 안하는 것인데,
아무 짓도 안하는 것이 방법이랄 수 있는가?
필요없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방법은 쓰지 않음만 못하다.
그래도 부득이 쓰야 하는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니라 방편일 뿐이다.
방편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일시적이고 임시적으로 쓰는 것이다.
방편이 방법이 되면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러니 수행방법을 찾지 말라.
수행에는 과정이 없다.
깨어있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런 과정은 없다.
깨어있기 위하여 알아야 할 어떤 지식(정보)도 없다.
이미 그러한데 또 무슨 과정과 지식이 필요한가?
그러니 수행과정을 찾지 말라.
수행에는 단계가 없다.
수행에는 거쳐야 할 과정이 없는데 무슨 단계가 있겠는가?
수행에는 “문득, 문득”은 있어도 “단계, 단계”는 없다.
그러니 수행단계를 생각지 말라.
수행에는 순서가 없다.
수행에는 초보자도 없고 경험자도 없다.
먼저 수행을 시작하면 먼저 확인한(깨닫는)다는 그런 법은 없다.
먼저 깨어있음의 감(感)을 잡는다고 먼저 확인한다는 그런 법도 없다.
수행기간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아직, 다음에, 더”라고도 말하지 말고,
그러니 “충분한데, 왜 아직도, 더 이상 뭘”이라고도 말하지 마라.
그러니 수행에서의 순서는 잊어라.
단지 삶의 불편함과 불안함과 우울함과 답답함을 무시하지만 말고,
그러함이 깨어있지 못함에 따른 미혹(전도몽상)임을 잊지만 마라.
삶의 본래 맛은 편함이고 평온함이고 쾌활함이고 자유로움이다.
삶의 본래 맛은 깨어있으면 그냥 드러난다.
단지 깨어있기만 하면 된다.
수행의 방법도 찾지 말고,
수행의 과정도 찾지 말고,
수행의 단계도 생각지 말고,
수행의 순서도 생각지 말고,
유일한 실제(實際)고 실재(實在)인 지금 여기에,
오직 오로지 깨어있기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