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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절복통/웃음방

역사 왕자지

작성자임 경운.|작성시간16.01.25|조회수964 목록 댓글 0



왕자지 그는 실존인물이다.
이름때문에 고려시대 국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려시대 5백년 동안 내내 백성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왕자지(王字之)
출생 1066년 고려 해주(사망 1122년 음력 3월 )
최종 계급 동북면 병마판관
그는 내시출신이다
*참고 : 고려시대 내시는 왕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신진 관료들을 말한다. 고려시대의 내시는 조선시대와 달리 환관이 아니다.
1104년(숙종9)부터 1109년까지 윤관, 오연총, 왕자지 척준경등과 함께 함경도에 침입한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하였다.
이 무렵 인종은 깨 다섯 되와 황규(黃葵) 서 되를 얻는 꿈을 꾸었는데, 척준경은 이 꿈이 아들 다섯을 얻고 그 중 세 명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척준경의 말대로 새 왕비가 된 공예태후(恭睿太后) 임(任)씨의 자식들 중 의종(毅宗), 명종(明宗), 신종(神宗)이 나왔다.

고려 중기의 문신, 외교관, 음악가이자 군인이다. 내시[1] 출신으로, 윤관, 오연총의 북방개척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송나라에 하례사로 파견되었다가 송나라 휘종에게 대성아악(大晟雅樂)을 전수받아 고려에 전파하였으며 이는 문묘제례악의 시초가 되었다.
박연등이 체계를 갖췄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으로
중단되었던것을
영조때 제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성종 때보다 규모가 축소된 것이며, 이것이 현재에 이르렀다. 이러한 수난 속에 이어진 문묘제례는, 중국 본고장에서는 없어진지 오래고, 유일하게 한국에만 남아 있다.

1.문묘 제례악[文廟祭禮樂]
공자(孔子)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악.

2.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
조선 역대 군왕(君王)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종묘와 영녕전(永寧殿)의 제향(祭享)에 쓰이는 음악.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에 의해 종묘제례와 함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왕자지는 개국공신 왕유의 후손이며, 고려 예종의 장인 이자겸과는 사돈간이다.
그 뒤 좌산기상시, 이부상서, 추밀원사 등을 거쳐 참지정사로 재직하던 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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