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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산이조아

풍류야화ㅡ황 진이 제17,18부 연속ㅡ

작성자임경운|작성시간22.03.25|조회수175 목록 댓글 0

🔘 풍류야화 황진이 <제17.18話>

지리산에서 금강산으로 오는 사이에 겨울이 훌쩍 지났다. 이사종과 삼년이나 한양에 살았으나 자유의 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엔 가보지 못해 이번엔 관심 있는 곳을 둘러보려 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장악원(掌樂院:현 국립국악원)이다. 소세양과 계약결혼을 했을 때 자기 소실로 들어와 장악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하여 이론은 더 배워 후세에 남기면 어떠냐고 제의했을 때가 떠올라서다.

이제 진이는 기생이 아니다. 떳떳한 자유인이다. 하지만 한량들은 진이가 여전히 기생으로 알고 돈으로 사려한다. 진이는 그것이 싫고 남자의 여자가 아닌 여자의 남자들은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들을 뛰어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조선은 사대부(士大夫)의 나라다.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조선에선 엄격한 신분제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이 뚜렷하다.

사(士) 다음에 농(農)이 있음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사대부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면 대부분 고향과 시골로 내려간다. 다음 과거에 나올 생각에서다. 장사 등 직업을 가지면 아예 과거 볼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내로 태어났으면 등과(登科)하여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금의환향하여 사대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을 게다.

그런 사대부의 나라에서 진이는 여자의 남자를 찾았다. 소세양·이사종·지족선사·이생 등을 품었으나 화담 서경덕은 끝가지 노력했으나 스승으로 삼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양의 풍류객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다. 한양기생들에게선 더 이상 새로운 사랑과 풍류를 찾을 수 없어 색향 송도의 명월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진이는 화대를 받고 몸을 내주는 것이 싫었다. 자유를 찾아 아버지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나 사내들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

불을 본 부나비 같이 달려드는 사내들을 피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자유의 몸으로 돌려 놓으려 했던 것이다.

기생이 아름답고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기생은 기생이다. 시기(詩妓)·악기(樂妓)·의기(義妓)·무기(舞妓) 등이 그 이름이다. 진이는 그것이 싫었다. 기명(妓名)인 명월(明月)이 있으나 그녀는 진이(眞伊)를 고집하였다.

명월이라 부르는 손님은 받지 않았다. 진이를 상징하는 명월관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명월관은 있어도 명월은 없고 진이만 남았다. 묘향산의 보현사를 시작으로 두류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거쳐 한양을 들러 고향 송도에 왔다. 이제 여자의 남자를 데리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려 한다. 1만2천봉 골짜기 사찰을 찾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다.

진이는 첫 걸음으로 유점사(楡岾寺)를 찾았다. 주지스님을 찾아 정성껏 시주를 하고 어머니 현학금에 대한 기도부터 올렸다. 두류산의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온 진이는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금강산은 두류산에 비해 정감이 가는 동네 산이다.

대웅전 뒤에 자그마한 방을 배려 받아 그들은 짐을 풀었다. 짐이래야 거문고와 타고 온 말이 전부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곯아 떨어졌다. 오뉴월 엿가락처럼 녹초 된 상태에도 이생의 손은 진이의 사타구니를 찾았다.

주지스님은 진이도 사내고 보고 한방에 넣었다. 송도에서 진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라 주지스님은 사내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생의 손이 사타구니로 오면서 진이는 어느새 그곳에 뜬금없이 달콤한 꿀이 나오면서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이생의 손이 그곳에서 재미를 보는 사이에 진이는 어릴 때 송도로 돌아갔다. 버드나무 부드러운 바람을 훑고 보슬비 꽃다운 들에 날리는 동교(東郊)와 비단처럼 밭이랑 펼쳐있고 맛 좋은 막걸리에 취한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의 서교(西郊)에서 깔깔대며 어머니와 뛰어놀았던 시절로 빠져들었다.

진이는 팔도유람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대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내색을 할 수 없었으나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린 상열지사(相悅之詞)의 애틋했었던 순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들 절간에 송화 꽃은 떨어지고/
비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떠나려 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水) 두 사람을 아꼈으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총교송객》(靑郊送客)이다.

그랬다. 남녀가 만났다 헤어짐에 어찌 석남(石男)·(石女)가 될 수 있을까? 진이가 제아무리 여중호걸(女中豪傑)이라 하여도 가녀린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어느새 진이도 이십 고개를 넘어 삼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호의호식하며 허리 밑으로 사대부와 한량들을 줄을 세웠던 나날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랑을 하면 정이 들고 뜨거운 살을 섞으면 욕심이 생겨 헤어지기 싫은 것이 남녀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진이를 거쳐 간 사내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치 많으나 그중에서도 소세양과 이사종이 특히 이따금씩 몸서리쳐지도록 간절하다.

한양이 남성적 도시라면 송도는 여성적 도시다. 진이는 송도에서 소세양과 삼십여 일을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사종과는 육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송도와 한양을 오가며 사랑의 싹을 키워 꽃피웠다.

지금 삼남(三南·충정·전라·경상) 지방을 휘돌아 다시 송도에 오니 흘러간 애틋한 세월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밤새 이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몸은 오히려 가뿐해졌다. 처음엔 못이기는 척하다 차츰 몸이 달아오르자 여러 사내를 통하여 터득한 사랑의 기술이 저절로 나왔다.

이생의 물건이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따라 움직여 호흡을 맞춰 주었다. 이생은 의아해 하면서도 모르는척하며 처음으로
진이에게서 흡족한 욕정을 채웠다.

진이는 동창이 밝자
아침도 거른 채 산행에 나섰다.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힘이
다시 솟아났다.





🔘 풍류야화 황진이 <제18話>


봄의 금강산은 그림 같다. 아침을 먹지 않았어도 진이는 신이 났다. 진이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사찰마다 어머니 극락왕생 기도를 올릴 생각이다. 금강산의 4대 사찰(장안사·유점사·신계사·표훈사) 중에 이번엔 표훈사(表訓寺)로 가는 발길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머무르고 있는 보살들의 우두머리 법기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사찰이다.

진이는 이 사찰에 어머니를 모셔드리고 싶다. 금강산의 4대 사찰에 모두 어머니를 모셔 극락왕생이 되도록 본인이 생존해 있는 동안 사월초파일에 예불을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표훈사엔 어머니가 평소에 스시던 오동나무 거울을 징표로 모셔 4새 사찰 중에 모사(母寺)로 삼으려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예불음식은 신계사에서 사서 올리려 한다. 신계사 계곡에서 연어가 잘 잡혔는데 불교에선 살생을 금하여 보운(普雲)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연어가 계곡에 못 올라오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진이는 신계사의 음식이 정갈하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사월초파일이면 음식을 사서 표훈사에서 기도를 올렸다.

지금 진이는 신계사를 향해가고 있다. 이때다. 옆에서 거문고를 메고 묵묵히 따르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아씨, 신계사 연어 얘기는 유명한 전설이에요! 소인이 아버지와 헤어지고 팔도를 헤맬 때 이곳도 다녀갔지요... 신계사 연어가 맛도 천하제일이고 크기도 천하으뜸이라 사월만 되면 미식가들이 팔도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요! 그리고 신계사 코앞에서 한량들이 술판을 벌려 생선냄새와 기생들의 분 냄새가 골짜기를 메웠어요...” 이생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일갈하였다.

이생은 소문난 재담꾼이다. 그런데 진이 곁으로 오자 말수가 적어졌을 뿐만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경우 외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이생이 지금 입을 열었다. “아씨 신계사 개천에 연어가 많은 건 사실이나 지금은 제철이 아니에요! 가을이 돼야 살이 통통하게 찐 연어가 팔딱팔딱 뛰어 올라오는데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되었어요...” 아쉬운 듯 말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이젠 신계사 계곡에서 연어를 볼 수 없다는 거냐?” 진이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단풍철 가을이 되면 옛날 같지는 않으나 자연현상인 연어 회귀가 없기야 하겠어요? 하지만 보운스님의 신통력에 밀려 요즘엔 예전만 못하다고 해요...” 진이는 속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생전에 생선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연어예불(禮佛)이 수포로 돌아갈까 염려다.

그때 이생이 귀띔을 해주었다. “아씨 그러나 방법은 있어요. 조선팔도 한량들이 가을이 되면 기생들을 끼고 구름처럼 밀려오는데 개성상인들이 그냥 보고만 있겠어요? 딴 지방에서 잡은 연어를 이곳으로 가져와 장사를 하지요... 신계사 길목 주막에 가면 언제나 연어가 있어요!” 이생의 말을 들고서야 진이는 얼굴 가득했던 수심의 구름을 거두었다.

점심때가 되자 신계사 길목 주막엔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었다. 그들은 주막에서 연어를 사고 신계사 절밥을 사서 표훈사로 향했다.

봄꽃이 절정이다. 현학금은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진이는 문득 퇴계 이황의 《매화》를 떠올렸다.

‘뜰 앞에 매화 나뭇가지 가득 눈꽃피니/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기러기 슬피울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를 낭송하고 진이는 대불 앞에 꼬꾸라져 통곡하였다. 모녀기생의 기구한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그들은 졸음에 빠졌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한방으로 들어갔다. 주지스님은 진이를 남자로 보고 있다. 헌칠한 이생과 여자 키론 작지 않은 진이를 보통 사내로 보았던 것이다. 별로 씻지도 못한 두 남녀는 서로의 체향(體香)에 만족해하고 있다. 진이의 월경 주기다. 그런데 이생이 치근덕거린다. 거절하면 삐져 말을 잘 듣지 않을까 진이는 되도록 원할 때 몸을 열어주었다. 진이 자신도 싫지 않아서다.

이생은 번듯한 사대부집 아들이다. 그런 사내를 종 부리듯 부리긴 쉽지 않다. 그런데 진이는 이생을 종 부리듯 부리고 이웃들에겐 하인이라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졸기(卒妓·기적에서 나온 기생)의 몸을 열어주었다고 허물이 못될 것이다. 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생이 원해오면 못 이기는 척 조금씩 조금씩 몸을 열어주었다.

이생과의 팔도유람이 어언 3년째다. 삼년 사이에 셀 수도 없이 몸을 주었으나 허리아래만 열었지 위로는 꼭꼭 닫았다. 이생도 억지로 보채지 않고 스스로 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진이가 온몸을 열려한다. 진이는 이생과 방사를 할 때 임신을 가장 경계하였다.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 때도 임신을 가장 경계하며 살을 섞었다. 졸기 몸에 임신을 하면 놀림감이 되기 때문이다. 모전여전(母傳女傳) 소리 듣기가 죽기보다 싫다. 그것도 현모양처의 모전여전이 아닌 기생의 모전여전이 아닌가!

그래서 진이는 어엿한 여자 사대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비록 여자로 태어났으나 이 나라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학문의 세계를 가려는 게다. 사장(詞章)이면 사장, 경륜(經綸)이면 경륜에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겉이 여자다. 그것도 색향(色香)이란 송도의 명월(진이 名技)이 아닌가! 그래서 진이는 조선팔도를 휘돌아 경륜을 배웠다. 사장과 학문의 세계는 사대부들이 봐도 쉽게 겨루려 들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이의 속내를 알아주는 사대부는 아무도 없다. 계약결혼을 하고 밤낮으로 욕심을 채운 소세양과 이사종만이 이해하여 주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사내들은 똑같다. 여자를 허리 밑으로 눌러 정복대상으로 생각하는 동물적 속성이 사내들에겐 잠재해 있다. 진이는 그런 속성을 소세양에게서 똑똑히 느꼈다.

“아씨 장안사로 떠나시죠! 장안사 가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려요. 어둡기 전에 들어가야지요...” 말이 떨어지자 진이가 발딱 일어섰다. “갑시다!” 이생은 이미 거문고를 메고 있었다. 진이는 짐이 없으니 일어서면 떠날 채비가 되었다.

둘은 손을 잡고 다정한 부부인 냥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진이와 이생의 모습이 소리꾼과 고수(鼓手)의 모습 같다. 산사의 낮은 짧다. 어느새 산새들이 추녀 밑으로 날아드는 저녁이다. 진이는 서슴없이 주지스님을 찾아 유숙을 청하였다.

몇 년 사이에 노련한 비렁뱅이가 되었다. 저녁을 한술 얻어먹고 거문고를 벽에 세우고 목침을 베자 방이 떠날 갈 듯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이생은 진이가 잠들자 버릇처럼
진이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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