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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산이조아

풍류야화ㅡ황진이 제19,20부 연속ㅡ

작성자임경운|작성시간22.03.26|조회수192 목록 댓글 0

🔘 풍류야화 황진이 <제19.20話>

봄의 금강산에서 한 계절이 훌쩍 지나 가을이 되었다. 유점사에서 시작된 금강산 유람은 시계사와 표훈사를 거치는 동안 장안사(長安寺)에서 풍악의 계절 가을을 맞았다. 졸기한 진이의 역마살이 절정에 이르렀다. 숱한 사내들의 뜨거운 가슴을 드나들었던 석녀(石女)의 태도에서 팔도유람을 통해 본래 여심(女心)을 찾았다.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낙화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어느 날이다. 장안사에서 점심을 먹고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다. 이생이 저잣거리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두 주먹으로 훔쳤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생겼느냐?" 진이는 이생의 처음 보는 행동에 궁금증이 폭발하였다.

이생은 입을 떼지 않고 돌아앉아 통곡을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니까? 내 말이 우스워?“ 앙칼진 진이의 폭언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데요!” “아버지와 결별했다면서 울긴 왜 울어?” 진이는 문을 탕 닫고 밖으로 나왔다. 실컷 울라는 배려다.

이생이 진이 곁을 떠나가려 한다. 사내는 자기 성(姓)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진이는 이생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본인도 진이란 본명과 기명을 동시에 쓰고 있으나 아버지 황씨(黃氏)성의 굴레를 성(姓)을 바꾸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 당장 한양으로 떠나가려무나.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이냐? 나도 사대부집 천재 신동에서 서녀(庶女)신분으로 떨어져 장님기생의 딸이 되자 청천벽력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날로 황진사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니 내 몸엔 황진사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런지 문득 떠올랐느니라. 그렇거늘 넌들 별수가 있겠느냐? 내 생각 말고 어서 떠나가려무나...” 진이는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해놓고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혼자 무전걸식이란 어렵다. 하늘아래 의지할 때 없는 여자인줄 알면 향기와 꿀이 있는 벌 나비가 날아들 듯 비렁뱅이 사내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비록 문전걸식하는 신세지만 사내들이라 생리현상을 어찌 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당장 떠나가라고 소리쳤으나 막상 떠나가면 어쩌나 가슴 졸이고 있다. “아니에요. 아씨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소인이 아씨를 송도 명월관까지 모셔다 드리고 가렵니다. 지금 당장 간들 임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분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어 이 이생은 그 분의 자손이 분명하니 늦게라도 찾아가 절을 하고 상청에 술 석잔을 올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에서입니다. 소인 한양에 갔다 다시 와서 진이아씨 하인노릇을 계속하렵니다.” 말을 마친 이생이 진이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진이 속내도 같다. 훌쩍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되돌아온다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삼남(충청·전라·경상)과 지리산을 연리지 모양 붙어 다니는 동안 속 깊은 정이 들었던 것이다. 밤에는 부부 아닌 부부로서 남녀관계를 수도 없이 해오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 떠나가면 진이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지 않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날 밤은 더욱 뜨거워졌다. 장안사의 가을밤은 낭만적 분위기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창문으로 신비스런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산사의 밤은 물속처럼 조용하여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발정 난 고양이 울음이다. 영락없는 아이 울음소리 같다. 오늘따라 발정 난 고양이가 대웅전 뒷방 근처에 와서 목청을 높였다. 진이는 이생이 한양으로 가겠다는 말이 귀에 거슬려 그가 몸을 달라면 서슴없이 내어주었다. 여자로서 먼저 얘기 할 수는 없으나 눈치를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순한 양이 되었다.

막상 몇 년을 부부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계약결혼을 했었던 소세양과 이사종에게선 찾아보지 못했었던 어떤 사내다운 믿음과 멋까지 느꼈던 것이다. 지금은 단 하루도 곁에 이생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 “그래 너는 한양에 갔다 이 진이 곁으로 다시 오겠다는 것이냐?” 이생은 진이 배 위에서 감정이 고조된 상태다.

여자의 자궁내로 들어온 사내는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진이는 소세양과 이사종을 겪으면서 터득하였다. “흐흐흥... 물론이죠!”이생의 방사(房事)격동은 더욱 거칠어졌다. 진이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날이 새면 헤어질 남녀가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 듯 점점 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떨어졌다 다시 결합되길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공교롭게도 발정한 고양이가 상대를 부르는 울음에 진이와 이생의 고조된 교성이 묻혀버렸다. 진이는 문득 자작시 《무제》(無題)를 떠올렸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 모르던가/ 있으랴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그랬다.

소세양과 이사종도 떠나가지 못하게 붙들었다면 아마 그들도 진이 곁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이는 잡고 싶었으나 떠나보냈다. 지금 이생한테도 똑같은 마음이다. 한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오란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다시 삼켜버렸다.

전례 없이 뜨겁고 격렬한 방사였다. 진이는 거액을 받고 초야권을 주었을 때 봉선화꽃 빛깔의 선혈까지 비쳤다. 처녀성 보증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그곳이 아리고 쓰리고 아프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떴다. 산사의 아침은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인기척 보다 빠르다.

장안사에도 진이는 어머니를 모셨다. 유점사·표훈사·신계사, 그리고 장안사까지 진이는 정성껏 시주를 올리고 일만 이천 봉에 모두 기도를 부탁하였다. 극락왕생 기도를 부탁할 때엔 꼭 진학금과 황진이란 이름을 밝혔다.

진이는 장안사를 떠날 때 비교적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그리고 이생이 고마웠다. 이생이 동행하여 주지 않았으면 팔도유람은 불가능했으며 금강산의 4대 명찰에 어머니 극락왕생의 일만 이천 봉에 기도도 엄두도 못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이는 명월관에 도착하자 이생을 떠나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옷도 새로 해 입히고 일주일을 밤마다 잠자리를 해 주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신뢰와 속 깊은 정까지 들었다. 사실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나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여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 성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생은 일주일 내내 동창이 밝을 때까지 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진이가 아쉬운지 예성강을 건널 때는 강 건너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흔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 풍류야화 황진이 <제20話>


봄의 송도가 아름답고 수줍은 소녀 모습이라면 만추의 송도는 칠보단장한 설중매 같다. 꽃과 벌 나비가 아울리듯 명월관은 진이가 없어도 옥섬이모의 장사수완이 뛰어나 한량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명월관은 송도 장안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뽐내는 자남산을 낀 자남동에 자리 잡았다. 자남산(子南山)은 남산·용수산(龍首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서편에 영웅호걸을 키운다는 젖을 머금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산명(山名)이다.

송도엔 자남산의 정기를 받아 유명인이 많다. 왕건·서경덕·정몽주·최충헌·함유일·이성계·정도전 등도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자라며 생활을 했던 인물들이다. 여자지만 황진이도 빼어 놓을 수 없는 여중호걸(女中豪傑)이다. 진이는 뼛속까지 송도여인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녀는 이생을 떠나보내고는 며칠 동안 후원을 맴돌며 마음을 정리하더니 말을 타고 아침에 나갔다 해질 무렵에 들어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진이는 전설적 인물 전우치(田禹治)를 떠올렸다. 지금 그가 곁에 있으면 북간도 등에 가서 활을 쏘며 말 달리기를 했으리라고 황당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우치는 서경덕과 도술경쟁을 하다 패하자 자취를 감추고 송도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엔 한양에 가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이때 한양에는 절조(節操)높은 사대부로 종실의 벽계수(碧溪水·이종숙 세종 17번째 아들 영해군 손자)가 있었다. 그런데 벽계수에게 황진이 애기가 들려왔다. 벽계수는 허봉과 절친한 관계다. 또한 허봉과 이달과는 막역한 관계로 황진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 허봉이 이달을 벽계수에게 소개하여 주었다.

이달은 삼당(三唐)시인으로 미모·노래·기예 뿐 만이 아니라 시(詩)에도 능한 진이의 마음을 얻을 계책을 귀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벽계수는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묘책을 이달에게 사사 받았다.

한편 송도에 있는 진이는 벽계수의 절조 있는 사대부란 소문을 들었다. 그는 왕실의 후예로서 진이의 유혹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혼을 내 쫓아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오기가 발동한 진이가 벽계수를 송도로 유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와 여자의 소위 성(姓) 대결이다. 진이는 지인을 한양으로 보내 벽계수에게 송도의 아름다움을 속삭여 벽계수가 오도록 교사시켰다. 벽계수는 말로만 듣던 색향(色香)에 경치까지 빼어나다는 속삭임에 넘어가 송도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마침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다. 진이는 벽계수가 경치가 빼어난 천수원에 와 있음을 알고 그곳 근처에 가서 자신의 시 《청산리 벽계수》를 거문고 음률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여간들 어떠리’

벽계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까지 한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천상의 목소리에 시 또한 자신을 비웃는 듯 한 내용에 놀라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진이가 벽계수에게 다가가 왜 나를 쫓아 버리지 못했느냐고 묻자 멋쩍은 듯 멍하니 명월(明月)의 밤하늘을 쳐다만 보았다.

진이는 명월관으로 벽계수를 안내하였다. 벽계수는 한양에서 벌레처럼 사대부의 체면에 먹칠을 할 그녀를 쫓아버릴 수 있다고 호언했던 말이 허언이 됐음을 깨달았다.

사랑채에 마주 앉은 벽계수와 진이 사이엔 눈치 빠른 옥섬이모에 의해 술상이 놓여졌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송도는 한양에 비해 생기가 없어요. 이 술(태상주 太常酒)이 독합니다.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조금씩 마시세요!” 진이는 말과는 다르게 벽계수가 단숨에 잔을 비우자 잔 가득히 태상주를 따랐다.

말로만 듣던 진이를 앞에 앉히고 술을 마시는 벽계수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다. 그는 술상 밑으로 손을 내려 여의봉처럼 일어난 옥경(玉莖)을 힘껏 쥐어 보았다. 현실이 분명하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그들은 술병을 비웠다. 벽계수는 진이의 술 상대가 못되었다.

진이를 당대엔 대적할 술꾼이 없다. “술 그만 드시고 주무시죠!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진이가 손수 술상을 치웠다. 벽계수는 진이가 따르는 술잔을 거침없이 비워 인사불성이 되었다. 진이는 다시 거문고 음률에 맞춰 서경덕의 《봄날》인

‘성곽 밖이라 속된 일 없고/
산빛 짙은 창 안에 자니 늦게 일어나네/
봄 찾아 골짜기 시냇물가 거닐면서/ 예쁜 꽃가지를 눈에 띄는 대로 꺾어 보네’

를 타면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하다.

잠결에도 거문고 소리를 들었는지 “이제 잡시다.”라고 말하면서 벽계수가 두 팔을 벌려 진이를 찾았다. 진이는 술상을 치우고 알몸이 되었다. 어차피 자기를 보러 온 벽계수는 자신을 품을 것이니 스스로 사내를 품으려는 속내다.

벽계수 가슴은 뜨거웠다. 소세양과 이사종의 가슴과는 또 다르다. 뜨겁고 따스한 가슴을 보자 딴 마음이 생겼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진이는 배란기다. 종실(宗室) 후예인 벽계수와 관계에서 2세가 탄생되면 얼마나 훌륭한 아이가 나올까 생각에 이르자 한시라도 빨리 사내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비몽사몽 상태가 되면서 어머니가 나타났다. 생생한 생시 모습으로 “그것은 아니 될 생각이다! 기생 후손은 너로 족하다. 진이 너는 기적에서 나와 자유로운 영혼의 여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기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우니라... 법적 문제보다 도덕적 굴레가 더 무서우니라.” 라고 말을 하고 어머니는 사라졌다. 벽계수의 뜨거운 사타구니에서 불두덩을 지나 가슴으로 올라오면서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진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이요!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나 볼 아름다운 나부의 뒤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벽계수는 불타는 욕정을 자제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벌거숭이 진이는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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