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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산이조아

풍류야화 ㅡ황진이 23,24부 연속ㅡ

작성자임경운|작성시간22.03.28|조회수179 목록 댓글 0

🔘 풍류야화 황진이 <제23.24話>

아침밥을 먹고 그들은 상원암(上元庵)을 향하였다.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금강산은 계절마다 산명이 바뀌면서 아름답고 수려하지만 장엄하지 못하다. 하지만 묘향산은 수려함과 장엄함을 동시에 갖추었다.

진이와 벽계수는 발길을 재촉한다. 상원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려는 계획이다. 장관인 만폭동 폭포도 구경하고 바위 위에 절묘하게 건립된 상원암에서 하룻밤의 꿈을 꾸고 정자 인호대(引虎臺)에서 장엄 수려한 묘향산의 절경을 만끽 하려는 속내다.

벽계수는 따뜻한 진이의 손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상원암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스님들이 이따금씩 오가는 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나마 낙엽이 덮여 있어 전인미로(前人未路)상태다. 넘어지고 자빠지길 수십 여번 끝에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상원암에 도착하였다.

노 주지승과 동자승 둘뿐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잠자리까지 약속받은 진이와 벽계수는 인호대를 향하였다. 인호대는 글자 그대로 호랑이가 사람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향암 마을에 사는 어느 효자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100년 된 산삼을 캐려고 산을 헤매고 있을 때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업어 인호대까지 올려다 주어 산삼을 캐서 병석의 어머니에게 효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한 용연 폭포 밑의 절벽 앞에서 상원암으로 가려던 길손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역시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꼬리로 낙엽을 치우고 길을 안내하여 상원암까지 안내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가을해가 짧으니 빨리갔다 오라는 말을 뒤로하고 진이와 벽계수는 끌어주고 밀어주며 인호대에 올랐다.

발 아래 펼쳐진 오색단풍의 바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여 입을 모아 ‘야호!’ 소리만 외쳤다 "서방님 저기 저 폭포는 산주 폭포와 용연 폭포이고 저기 저것은 천신 폭포입니다. 이곳 인호대외엔 세 폭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즐기는 것을 인호관폭이라 하여 묘향산팔경이라 해요... 지금이 늦가을이라 단풍밖에 볼 수 없으나 봄엔 두봉화(철쭉꽃)가 장관이에요! 해가 짧아졌어요. 이제 빨리 내려가야 되요! 서둘러도 늦을 것 같아요...“ 둘은 서두르다 상주암에 이르러 진이가 바위에 깔린 낙엽을 밟고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벽계수에게 업혀서 상주암에 도착했을 때는 보름달이 창공에 두둥실 떴다. 주지스님과 동자승이 나와 맞았다. “내 뭐라 했소이까. 늦지 않게 서두르라 했지 않소!” 업혀오는 진이를 보고 호된 책망이다. 방에 들어가니 동자승이 저녁상을 가져다주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진이는 거문고를 땡겼다. 그리고 조용조용히 《창부타령》(倡夫打令)을 불렀다.

“응향각 들어가서 오동향로 구경하고/
심검당과 관음전, 동림헌과 미타전 망월주를 차례로 구경하고/
유산길 찾아가서 안심사 돌아드니/ 무수한 부도비는 도승의 유적이라/ 명월은 교교하고 청풍은 소슬이라/ 녹수청산 깊은 곳에 상원암을 찾아가서/
대해포 구경하니 정신이 쇄락하여 이층철사 휘어잡고/
인호대 올라가니 송풍은 거문고요 두견성은 노래로다./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63곡 중 한곡입니다.”라며 진이는 거문고를 벽에다 세우고 일어나 살포시 절까지 하였다.

발목을 접질려 업고 온 감사의 표시다. 벽계수는 진이의 거문고에 맞춘 창부타령에 취해 주지스님의 방으로 가는 것도 잊고 잠에 빠졌다. 사내는 역시 사내다. 진이가 옆에 있는데 그냥 잘 벽계수가 아니다. 비몽사몽이라지만 생시같이 진이의 남자노릇을 하려 덤빈다.

진이도 피곤하지만 사내가 싫지가 않았다. 진이의 몸은 사내를 밥 먹듯이 맞았던 것이 아닌가! 허리띠를 풀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바지를 내리니 비릿한 사내 물건이 뱀처럼 꿈틀대며 들어와 목이 마르면 냉차를 마셨던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진이는 2~3년 기생으로 화대(花代)를 받고 송도를 넘어 한양과 두만강 건너 중국 사신들까지 품어보았다.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이 조선의 중심이지만 송도는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으로 나라가 바뀌어 수도의 기능은 잃었으나 문화의 화려함은 살아있었다.

진이가 이젠 기계(妓界)일선에서 물러났으나 한양의 지체 높은 문객(文客)이나 중국의 묵객(墨客)들은 송도 명월의 달빛아래 하늘의 소리인 거문고 가락에 송도 명주인 태상주를 마셔 보기를 평생의 소원인 소위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꼽고 있었다.

진이는 사내들의 욕망의 온도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황하(黃河)를 허풍을 떨어 강 이름을 붙였듯이 통큰 척 하지만 실제 화대는 짜다. 사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정부의 접대비는 넉넉히 화대를 주며 환대를 부탁받으나 제 돈으로 잠자리를 할 땐 되놈의 본색을 드러냈다. 잠든 사이 화대를 떼먹고 줄행랑을 친 되놈도 진이는 겪었다.

손이 크기로는 조선의 중인(中人)들이다. 북경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중인(역관)들은 떼돈을 벌었다. 그들이 송도에 오면 청교방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거문고 소리와 교성이 거리를 메웠다. 북방민족의 독특한 대륙기질의 본색이다.

송도엔 개성상인이 있다. 고려인삼을 연경에 가서 비단과 보석으로 교환해와 떼돈을 번 백부자(白富子)가 대표적이다. 그는 남산동에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왕실도 부러워하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진이한테 첩이 되어 달라는 제의를 여러번 해왔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런 제의가 있은 후론 명월관 출입도 막았다. 자유인의 자격에 흠이 되는 어떤 제의도 진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혼의 자유를 위함이다. 진이도 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면 일편단심 목숨을 걸었다.

지금 벽계수와 관계가 그러하다. 밤마다 뜨겁게 살을 섞고 나니 봄볕처럼 따뜻한 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오늘밤이 새고 내일이 되면 벽계수는 다시 한양으로 간다. 그에겐 사대부의 풍모도 있고 패기도 보였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다. 지금 벽계수는 진이의 몸뚱이에서 욕망을 만끽하고 코를 벌름 거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팽창되었던 물건은 오뉴월 엿가락같이 축 늘어진 채 삐죽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장관이다. 진이도 벌거숭이인 채다. 그녀는 살포시 일어나 학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정인을 떠나 보낼 때만 추는 춤이다.

양곡 송세양과 헤어질 때 마지막 밤에 추고 이번이 두 번째다.

🔘 풍류야화 황진이 <제24話>


자유인이 된 진이는 마음에 없는 사내와는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화대로만 몸을 팔 때에는 영혼이 통곡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옥섬이모가 꼭 접대해야할 한양손님이라 하여 하룻밤을 잤는데 그 후 보름을 앓았다.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송도가 고려의 수도에서 한양이 조선의 서울이 된 이후 진이의 명성은 절대에서 상대적으로 바뀌었다. 한양엔 물 좋은 미녀들이 많다. 당시 한양에서 송도 진이와 겨뤄 볼 명기(名妓)는 성산월(星山月)과 관홍장(冠紅粧) 등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악원에서 노래와 춤 등을 배워 한양의 한량들은 물론 고고한 학자 관료인 사대부들에게도 밤엔 질펀한 향연의 대상이 되었다. 한양의 물 좋은 기녀들에게 싫증이 나면 그들은 송도에까지 원정 사랑놀이에 빠졌다. 상대는 진이였다.

당시 한양은 변화와 화려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으나 세련 된 멋과 아름다움의 극치 외에 송도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위 송도삼절(서화담·박연폭포·황진이)외에 삼천리금수강산이 그것이다.

한양의 한량들이 송도에 오면 진이가 누구나 먼저다. 하지만 제일 먼저 찍는 것은 자유지만 상대를 고르는 선택권은 진이에게 있다. 몸의 당사자인 진이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내는 소세양과 이사종이다. 그들과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계약결혼을 맺어서다.

그런데 지금 벽계수와는 이별의 순간이 시계소리처럼 찰칵찰칵 다가옴이 왠지 싫다. 여명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진이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마음이다. 견디다 못해 “여보! 당신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라고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에게 혼잣말을 하였다. 시간이 꽤 흐른 뒤다.

벽계수의 새벽물건이 벌떡 일어나 있다. 사내 물건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그 물건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물건을 여자에게 넣고 욕정을 채우는 사내들이나 그 물건이 들어오면 감정이 달아오르는 여자의 심정을 진이는 번개처럼 떠올렸다.

정복감이다. 사내는 자신이 나온 자궁을 다시 정복하는 것이고 여자는 정복자를 사로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전쟁이다. 뺏고 뺏기는 남자와 여자의 영토전쟁에서 진이는 정복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소세양과 이사종, 그리고 벽계수도 진이의 사람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지금 그가 날이 밝으면 한양으로 떠나려 한다.

그는 한양에 가서 진이를 정복하고 왔다고 포효할 것이다. 사실은 진이가 벽계수를 포로로 만들었는데 제가 정복하고 영토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호언장담할 것이 뻔하다. 아무튼 벽계수에게 지금까지 어느 남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연정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 이틀 더 있다 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말하고 싶지는 않다. 벽계수 스스로 더 있도록 유도하려는 속내다.

‘낭군께 권합니다./
귀 달린 금 술잔을/
가득 따르겠사오니/
사양하지 마시옵소서./
꽃피면 비바람 되 심하게 분다지요./ 인생 백년이라지만/
이별 없는 날이 몇 날이나 될까요.’

당나라 우무릉(于武陵)의 시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육체의 허기를 채운 벽계수는 새벽 물건이 일어나자 다시 진이를 끌어당겼다. 여자는 생각하지 않고 제 욕심을 급히 채우고는
“내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이틀 더 쉬고 가야겠소!” 라고 빙그레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진이의 생각은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그러면 그렇지. 네 놈이 첫 결심에 떠날 놈이 아니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화대는 넉넉히 받았으니 더 내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각 방을 쓰는 거예요. 당초 계약은 오늘까지니까요“ 진이의 태도가 단호하다.


그러면서 고려가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를 떠올렸다.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어기던 사람 누구였던가, 누구였던가./
오리야 오리야/
어린 비오리야/
여울은 어디 두고 소에 자러 오는가./ 소 곧 얼면 여울도 좋습니다. 여울도 좋습니다.’

작자 미상이다.
《만전춘별사》는 정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특히 기녀들 세계에선 비록 돈을 받고 몸을 내주었으나 살을 섞고 나면 야릇하게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었다.

진이도 사랑엔 약하다. 화대를 받고 몸을 내어주어도 영혼까지 울리는 사내가 더러 있다. 벽계수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이 사내를 훌쩍 떠나보내면 두고두고 영혼이 통곡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하루 이틀 더 있는 다니 천만다행이다. 마음속으로 더 있기를 바랐던 것이 성사되어 가슴이 벌렁거리게 기쁘나 표정을 숨기었다. 별방을 써야 한다는 조건도 사실은 일부러 붙인 조건에 불과하다. 바로 옆방인데 문지방만 넘으면 되는 방이다. 분 냄새까지 건너가는 거리다.

이튿날부터 진이는 겸상으로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다정한 잉꼬부부모양 행동하였다. 거기까지였다. 잠자리는 문지방 건너 방에 차렸다. 평소 잠자리 옷차림과 달리 오늘은 남청색 치마에 미색 저고리로 트레머리를 단아하게 틀어 올리고 기초화장만 한 채 자리에 들었다. 창밖엔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진이의 아랫도리엔 속곳이 없다. 벽계수가 문지방을 넘어 올 것이 뻔하여 일부러 입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깊고 새벽닭이 홰를 쳐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한양 사대부와 송도 기생의 자존심 싸움이다.

여명이 밝자 진이는 스스로 부엌에 나가 아침을 지어가지고 들어왔다. “잘 주무셨어요?” 벽계수는 말 대신 빙그레 웃었다. 낮엔 말을 타고 병부교와 대동강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말도 별로 없이 쓸쓸한 표정이다.

이튿날도 진이는 속곳을 입지 않은 채 별방에 자리를 폈다. 벽계수는 저녁을 먹을 때 태상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코를 골며 잠들었다. 새벽이 되어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진이가 넘어갔다.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 물건은 물푸레나무처럼 땅땅하고 튼실하게 일어나 있다. 속곳을 입지 않은 진이가 하늘이 되었다. 벽계수는 끝내 모르는 척 진이에게 몸을 맡기고 마음껏 황제가 소녀경(素女經)을 즐기듯 기쁨을 만끽하였다. 벽계수 작전에 천하의 진이가 속은 듯 속아주었다.

진이는 벽계수가 한양으로 가는 길에 예성강까지 배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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