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641m.도시 자연공원 산행ㅡ관악능선 관음사ㅡ파이프 능선ㅡ 관악사지ㅡ연주암 ㅡ향교 하산 ㅡ

작성자임경운|작성시간21.02.27|조회수1,113 목록 댓글 0

도심의 명소)

 관악산 도시 자연 공원 

사당 능선.국기봉  

관음사 

관악능선 

파이프능선

 

관악사지 

연주암 

 

과천 향교 하산

관악산 최고의 풍경  암벽산행

관악산 산행 코스

 

사당역ㅡ관음사 

파이프능선.헬기장ㅡ

 

관악문 우회ㅡ관악사지 

연주암 ㅡ과천 향교 하산 ㅡ

 

약 9.5km 약 6시간 산행 

관악산(冠岳山) 은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와 과천시에

걸쳐 있는 높이 632m 의 산이다.

한남정맥이 수원 광교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한강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우뚝 솟아 있다

관음사[ 觀音寺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산(冠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사찰. 문화재자료.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895년(진성여왕 9) 도선(道詵)이

창건하고 수도하였는데,

 

고려시대에는 어떠했는지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에서는 전 기간에

걸쳐 관음사가 존재했음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서

 

『범우고』·『가람고』·『여지도서』

등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관음사 아래에 있는

‘승방벌’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 앞에 승방고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관음사의 사세가

컸음이 짐작된다.

 1863년(철종 14)에 행념(行稔)이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김문근(金汶根)

에게 1,000금을 희사받아 중수하였다.

1924년에는 주지 석주(石洲) 등이

대방(大房)을 중건하였으며,

1925년에는 요사채를 중수하였다.

 

1929년에는 태선(泰善)이 칠성각을,

1930년에는 산신각을 신축하였고,

 

1932년에는 용화전(龍華殿)을 신축하였으며,

1942년에는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1982년에는 주지 종하(鍾夏)가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1993년 지하 강당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용왕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경기의 오악(五岳)의 하나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가

빼어나며 기이한 바위가 많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빼어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우러져

철따라 변하는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이라고 한다.

1968년 1월 15일

건설부 고시 제34호로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룡머리  

 

사당역을 출발 관음사 지나서 

공룡 머리 첫번째 봉우리 이다 

 

공룡 머리 오르기 

공룡 머리 정상에서 

공룡 머리를 내려와 오르니 

철계단을 만나 사당 능선으로 오른다 

사당능선에서

파이프 능선으로 오른다 

사당능선에서 조금 들어가면

거시기 바위가 파이프 능선 시작이다

관악산 파이프 능선

 

파이프능선은 사당능선에서

거북바위 조금지나 파이프 능선을 지나

사당능선 헬기장까지 파이프 능선이다

파이프가 능선에 깔려있어 파이프 능선이다

파이프능선은  난이도 조금이다

산꾼이면 아무나 갈수있는 산행길이다

비 탐방로이기때문에 능선의 설명은 없네요

관악의 산 이름은 그 형상이

마치 관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의 산 이름은 주위 산세에서

으뜸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

서울 관악산과

함께 경기도 오악의 하나였다.

 

관악산은 바위봉우리가 많고

계곡이 깊어 언제 찾아도

산행의 재미를 느낄수

있는 산으로 꼽힌다.

도심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 연평균 700여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다.

파이프 능선은 위험한 코스이고 

특히 겨울에는 얼어있어서 

출입 통제된다고 한다 

낙성대 3거리에 

출입 금지구역 표시가 있다 

여기 위험한 암벽을 오르면 

파이프가 깔린 능선을 만난다 

암벽을 오르다 돌아보니 

사당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암벽을 오르니 

파이프가 능선위로 쭉 깔려있어

파이프능선이다

파이프 능선 전망대에서 

만난 점심을 먹고 다시오른다 

 

파이프 능선을 지나 

사당능선 헬기장에 오른다 

관악문에 오르기전 

관악사 지로 코스를 잡았다 

 

관악산 관악사지 

 

예전에는 절터만 있었는데

지금은 건물만 들어서 있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산12-1번지

관악산 정상에 있는 남아 있는 절터.

경기도 기념물 제190호이다.

서울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안양시의

경계에 있는 관악산 정상에 있는

산지가람(山地伽藍)이다.

《연주암지(戀主庵誌)》의 기록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 17)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의상이 의상대를 지으면서

함께 관악사를 개산하였다고 한다. 

1411년(조선 태종 11) 충령대군이

세자가 되자 양령대군과 효령대군은

 

이곳 관악사로 올라가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그 뒤에도 효령대군은 관악산에서

2년 동안 머물렀고 관악사를 원래

 

있던 장소에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서

가람 40간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적어도 여섯 개 이상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한 번에

지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느 시기에 하나의 가람을 짓고 이것이

장마 또는 홍수에 피해를 입으면 주변으로

옮기거나 바로 그곳에 대지를 만들어

 

새롭게 가람을 지으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18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악산 연주암, 641m

연주대 [戀主臺 ]

 

경기도 기념물 제20호.

깎아지른듯한 바위 벼랑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고 30㎡쯤

되는 대가 구축되어 있어

이를 연주대라 하는데 거기

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불당이 꾸며져 있다

연주대 전설을 지니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왕조 개국 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유를 듣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함에

즈음해서 이 연주대에 친히 올라

국운장구를 빌며 원각(圓覺)·

연주(戀主) 두 절을 짓고 서울을

 

비치는 화산(火山) 불길을 진정

시키고자 꾀하였다고 한다.

임금 자리를 아우인 세종에게

양보한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곳에서 놀았다 한다.

이때 양녕대군이 중에게

준 오언절구

 

“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

 

(산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女蘿의 덩굴에 걸린

달이 불을 밝히네.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오로지

탑 한층만이 남아있네)

이라는 한시가 명시로 전하며

경기의 5악중 관악산에 올랐다

 

험한 바위의 파이프능선

힘든 철계단길

 

힘들고 험한 산행 하느라

수고 했읍니다

 

청솔 ㅡ경운아 ㅡ임 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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