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명소ㅡ 청계산 산행ㅡ옛골 입구 정토사 ㅡ거북 바위 신선대 계곡 산행 ㅡ

작성자임경운|작성시간21.06.26|조회수1,638 목록 댓글 0

청계산

 

이수봉 545m 

망경대 618 m 

 

 거북바위 

 신선대 계곡

 

서울 서초구와 경기 과천시·

의왕시·성남시 경계에 있는 산.

서울시 서초구 남쪽에 있는

산이며 높이 618 m이다.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남시와 과천시

그리고 의왕시의 경계를 이룬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淸溪)'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조선시대에 푸른색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두고

청룡산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청계산은 남북으로 길게

능선이 이어지는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 618m)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

청계봉(582 m)·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망경봉은 고려가 망하자

충신이었던 조윤

 

(趙胤, 후일 이름을 조견으로 바꿈)이

청계산 정상에서 

북쪽 고려의 수도인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이수봉은 무오사화

(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번이나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추사 김정희는 청계산 옥녀봉 

북쪽 자락에 초당을 짓고 살았다. 

서쪽에 관악산(冠岳山),

남쪽에 국사봉(國思峰: 538m)이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산세도 수려하다. 

서쪽으로 높이 약 10m의

수종폭포가 있고 그 아래

물웅덩이인 소를 이룬다. 

청계동 골짜기에는 신라시대

창건한 청계사가 있고

 

고려시대에 들어

크게 중창된 사찰이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청계사를

 

중심으로 은거하며

지내기도 하였다.  

청계산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데다

서쪽 기슭에 국립현대미술관,

 

테마놀이공원인 서울랜드와,

동물원인 과천서울대공원, 

서울경마공원,

국립과천과학관을 안고 있어 

많은 휴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등산로는 강남 서초에서 오르는

청계골, 개나리골,

 

양재화물터미널과 원지동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원지동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가장 인기가 높다.

 

그리고 과천 막계동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고 

의왕시 청계동에서 국사봉을

지나 이수봉 망경대로

오르는 길이 인기있다. 

남서쪽 중턱에는 신라 때에

창건된 청계사가 있고,

 

동쪽 기슭에는 서울추모공원이 있고

경부고속도로가 동남방향으로 지난다.

정상에 있는 망경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매우 아름답다. 

주능선의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으며

 

산의 동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서쪽 사면에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경마장이 들어섰으며,

산의 서쪽 기슭으로

서울대공원 및 서울랜드 등

시민을 위한 휴양시설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입지하여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북한산이나 관악산이 화강암

기반으로 바위가 많이 솟아 있으니, 

청계산은 편마암 산지로

비고가 낮고 흙으로 덮여있어

주말이면 찾는 등산객이 많다.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푸른 산자락이 바로 청계산이다. 

서울 양재동과 과천시,

성남시,의왕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청계산은 관악산 산자락이 과천 시내를

에둘러 남쪽으로 뻗어내린 것이다. 

산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남쪽으로 뻗어나가

 

의왕시의 백운산, 모락산,

오봉산으로 이어진다.

청계산은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말 충신이었던 조윤(趙胤)이

송도를 떠나 입산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청룡이 승천했던 곳이라고해서

청룡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풍수지리학적으로는 관악산을 백호,

청계산을 청룡이라하여

 

'좌청룡 우백호'의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청계산은 울창한 숲과 아늑한 계곡,

공원, 사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가족산행의 명소로서 수 많은

등산로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과천쪽에서 바라보는

청계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온화해서 토산처럼 보이지만, 

서울대공원쪽에서 보이는

망경대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

거칠고 당당하게 보인다. 

망경대(해발 618.2m)가

바로 청계산의 정상이다.

 청계산 신선대 계곡 

주암동쪽에서 망경대 쪽으로

오르다 보면 추사 김정희의

 

생부김노경의 묘터가 있던

옥녀봉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학자인 정여창이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혈읍재를

 

지나 망경대 바로 밑으로 가면

정여창이 은거했다는 금정수가 있다. 

이 약수는 정여창이 사사되자

핏빛으로 변했다가

 

이내 금빛으로 물들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풀향기 가득한 산길을 걷다보면

야생밤나무와 도토리나무,

 

머루와 다래 등이 종종

눈길을 끈다. 

청계산 남쪽에 위치한 청계사,

과천 쪽의 동폭포,

금정수 가는 길 근처의

매바위와 돌문바위,

약수터 등도 들러 볼 만하다. 

청계산(618m)은 산세가 수려하고,

2km에 이르는 계곡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 시민들이 즐겨찾는다. 

관악산과 함께 서울을 지켜주는

'좌청룡 우백호'의

명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청룡산이라고도

했던 청계산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양재인터체인지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청계산은 순한 육산이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부근에서

바라보는 청계산 정상인 망경대

 

주위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위압감을 느낀다. 

정상인 망경대는

정부시설이 있어 등산이 불가,

 

국사봉(538m)과 545m봉을

연결 산행하고 있다.

 망경대  望京臺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산72-2임의 청계산 정상부에 있는 대(臺).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과

과천시 모계동의 경계를 이루는

청계산의 주봉우리를 가리킨다. 

망경대라는 명칭은 조선이

건국한 뒤 고려의 유신(遺臣)

조견(趙狷)이 이곳에 올라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

(開京, 지금의 개성)을 바라

보면서 통곡으로 나날을 보내며 

멸망한 고려를 그리워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여 사람들이 망경봉

(望京峰)을 망경대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당시 이를 내용으로 하는

〈망경대가(望京臺歌)〉라는

노래가 유행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견은 조선이

개국하는 데 협력하여 개국공신

(開國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조정에 출사(出仕)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므로 그가 고려에 절의를

지켜 은거하였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망경대와 더불어 청계산 산줄기를

이루는 국사봉(國思峰)의 명칭은

조견의 형 조준(趙浚)이 

이곳에 올라 고려의 멸망을

슬퍼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이성계가 왕씨를 치고 조선을 건국한 후

"충신은 불사이군이다,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하여

조준의 동생 조견이 청계산으로 은거했다.

조견은 당시의 실력가로

꼭 회유해야 민심을 수습시키고

이성계가 정치를 할 수 있는데,

 

은거해 버렸으니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조견과 이성계는

친구 간으로 조견은 장관,

 

이성계는

군사령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루는 이성계가 방원과 함께

조견이 여막을 짓고 은거하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방원이 와서는,
"조선생 문을 여시오.

 

임금께서 오셨으니 문을 좀 여시오"
라고 하니 조견은 내다보지도 않고,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
라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임금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성계가 아들인

방원을 옆으로 비키게 한 후


"자네 친구 이성계일세, 문 좀 열게"
라고 하자 비로소 문을 열어 주었다.

문안으로 들어선 이성계가
"나를 좀 도와주게,

백성들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라며 조정에 나올 것을 권하였으나,

조견은 묵묵부답으로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여막을 나온 이성계는

친구를 위하여 청계사 옆에 큰 집을

 

지어주고 여막에서 나오기를 바라였으나

조견은 여주로 도망을 하고 말았다.

조견은 청계산에 있으면서 매일 산위에

올라가 서울(개성)을 바라보며,

 

언제 다시 왕씨가 이씨를 물리치고

다시 집권할 수 있을 지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만경대(萬景臺)에서 망경대

(望京臺)로 고쳐 불렀다.

여주로 도망간 후 이방원은 조견을

그대로 두면 불리하다 생각해

사람을 시켜 죽게 하였다.

조견이 숨을 거두기 전에

자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비석을 세우는데,

비문을 고려충신조모지묘

(高麗忠臣趙某之墓)

 

라고 쓰라"고 하였다.
자식들이 생각해보니

고려충신이라고 쓰면 곧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므로

개국공신이라고 비문을 해 세웠다.

그러나 그 얼마 후에 하늘에서

뇌성과 함께 벼락이 쳐서 비석의

 

허리가 부러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내가 ㅡ
미스터팡 노래ㅡ

청계산 산행ㅡ
이미지 영상입니다ㅡ


http://m.cafe.daum.net/rnqdmsekfl/VeFx/1192?svc=cafeapp

진달래꽃ㅡ
마야 노래ㅡ

청계산ㅡ
진달래 이미지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eFx/144?svc=cafeapp 

매바위.매봉 ㅡ
혈읍재.옛골 눈산행


http://m.cafe.daum.net/rnqdmsekfl/VqUt/7?svc=cafeapp

청계산ㅡ
매바위 매봉 ㅡ

망경대 이수봉ㅡ
국사봉 능선 산행ㅡ

https://m.cafe.daum.net/rnqdmsekfl/VROU/26?svc=cafeapp \

만경대 남쪽 바위에는 '만경대(萬景臺)'라고

쓴 글씨와 정몽주가 지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시는 포은 정몽주가 1380년(고려 우왕 6)

이성계의 종사관으로 운봉에서 황산대첩을

 

거두고 돌아가는 길에 이 곳에 올라

고려를 걱정하며 지은 시라고 한다.

정몽주 우국시

 

千仞崗頭石逕橫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 돌아


登臨使我不勝情

홀로 다다르니 가슴 메는 근심이여


靑山隱約夫餘國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서하던 부여국은


黃葉檳紛百濟城

누른 잎은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도다


九月高風愁客子

구월의 소슬바람에 나그네의 시름이 짙은데


百年豪氣誤書生

백년기상 호탕함이 서생을 그르쳤네


天涯日沒浮雲合

해는 지고 뜬 구름 뒤섞이는데


矯首無由望玉京

하염없이 고개들아 송도만 바라보네

도심의 명소 

청계산을 다녀와서 

 

청솔 ㅡ 경운아ㅡ 임 경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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