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의 딸
박대감은
3대 독자 외동아들의 혼사문제로 고민이 깊어만 간다.
술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건만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은 안 오고 소쩍새 소리만 지노대감의 마음을 쥐어짰다.
15년 전 바로 이 방에서였지.
박대감과 김대감은 어릴 적부터 한 서당에 다니며 둘도 없는 친구로, 그리고 함께 급제하여 나란히 나라의 녹을 먹었다.
세월이 흘러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어 틈만 나면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짓고,
사군자를 치고,
어릴 적 서당 다닐 때 장난치던 일을 떠올리며 껄껄 웃었다.
어느 봄날,
박지노대감의 사랑방에서 대작하다가 두 사람은 혼약을 맺었다.
박 대감의 두 살 난 아들성열이와 고니대감의 네 살 난 딸 오키을 15년 후에 혼인시켜 두 사람은 사돈이 되기로 약조하고 지필묵을 갖고 와 그 사실을 혼약서로 남겼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 흘러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국사를 논할 때 조금씩 시각을 달리하더니 결국 사색당파에서 갈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사로이 지노대감과 고니대감은 여전히 관포지교를 이어가며 친형제 이상으로 정이 두터웠다.
진노대감의 아들성열은 헌헌장부가 되어 초시에 합격한 후 과거 준비를 하느라 암자에 들어가 공부에 매진하고 두 살 위 고니대감의 오키 절색의 얌전한 처녀로,
가끔 장옷을 덮어쓰고 몸종을 데리고 정성들여 빚은 떡과 유과를 싸들고 암자를 찾았다.
자손이 귀한 박지노대감이 재촉하여 혼인날을 잡았다.
호사다마,
혼인날을 백여 일 남겨두고 사화의 광풍이 휘몰아치며 고니대감은 사약을 받고 부인은 대들보에 목을 매고 아들 둘은 귀양을 갔다.
고니대감의 딸,
오키만 남았다가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칠흙 같은 어느 날,
장옷에 몸을 숨긴 오키아씨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화의 소용돌이도 잦아들고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 활짝 열린 날,
박지노대감의 아들 성열이는 급제를 해 어사화를 쓰고 말을 타고 금의환향했다.
사흘 동안 잔치가 벌어진 후,
박지노대감 댁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박 대감 아들 성열이가 부모를 앉혀놓고 큰절을 한 후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고니대감님의 따님,
오키아씨와 암자에서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부모님께서 혼례식 날짜를 잡아놓았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암자의 스님이 조촐하지만 혼례상을 차려주셔서….”
성열이의 어머니 순보기는 기절했다.
이튿날 성열이의 어머니 순보기는
박 지노대감도 모르게 몸소 의금부를 찾아가 역적의 딸 오키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고발을 했다.
의금부 부사와 포졸들이 암자에 들이닥쳐 오키아씨를 묶어 옥에 가뒀다.
박지노대감이 노발대발하고
성열이는 땅을 치며 울부짖었지만
박 대감 부인순보기은 막무가내
“그년은 내 며느리가 아니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 집안에 한걸음도 들어올 수 없어!”
바락바락 악을 썼다.
도승지의 명으로 오키아씨는 3일 만에 풀려났다.
고니대감에게 사약을 내리고 아들 둘을 귀양 보낸 걸로 단죄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튿날
그 소식을 듣고 박지노 대감 부인 순보기은 몸져눕고 성열이는 한걸음에 암자로 달려갔다.
오키 아씨는 암자 옆 물이 콸콸 흐르는 골짜기,
두 사람이 언제나 나란히 앉아 정을 나누던 넓적한 바위에 신발을 벗어두고 소나무에 목을 맸다.
성열이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박지노대감은 눈물만 쏟는데 몸져누웠던 성열이 어머니는 발딱 일어나 화색이 돌았다.
구절구절 애절한 정으로 쓴 유서를 읽고 또 읽으며 몸부림치다가 피를 토하던 삼대독자 성열이는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결국 박지노대감은 대가 끊겼다.
그리고 얼마후
요단강 나루에서
고니대감과 지노대감이 걸리 한잔하드라고 입소문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