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외 / 이성선

작성자강건너그집|작성시간26.06.05|조회수297 목록 댓글 0

가을 편지 /​ 이성선 (1941~2001)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입동 저녁 / 이성선 (1941~2001)

벌레소리 고이던 나무 허리가 움푹 패였다

잎 없는 능선도 낮아져 그 아래 눕는다

가지 하나가 팔을 벌여 내 집을 두드린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바라만 본다

저문 시간이 고개 숙이고 마을을 서성거리고

그의 머리 위로별이 벼꽃처럼 드물다

낡은 문 창에 달빛이 조금씩 줄어든다

달 내리는 소리가 마당을 지나 헛간에 머문다

누군가 떠나고 난 자리가 세상보다 크고 깊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 현대문학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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