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 최금진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둥지가 있는데
세상에 나서 어디 제집 한칸 갖기가 쉬운 일인가
인터넷 무료계정으로 세운 나의 HOME
마우스로 딸깍딸깍 한두 번만 두드리면 대문이 열리고
바탕화면에 꽃밭이 가득!
즐거운 곳에선 나를 오라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 반경 10Km 정도밖에 더 움직이겠는가
그 안에서 살다가 영업마감하는 것인데
두세 평 남짓한 월셋방 원룸에 눕는 밤이면
호적에도 주민등록증에도 없는
위성 GPS도 찾지 못하는 나의 HOME,
나 같은 백수가 귀가해야 할 집은 세상에 없으므로
새벽까지 하는 게임은 맛있고
오래 씹을 수도 있고
생각하면 군침이 나온다
의자에 몸이 깊이 박힌 사람들끼리
밤새 포커나 고스톱을 칠 때
우리는 이미 한 군락을 이루고 수많은 개체수를 확보한 새로운 종이다
(마우스를 클릭하면)
캄캄한 밤 너머 침침한 안경을 해 쓰고 앉아 낄낄거리는 혼령 같은, 해골 같은
(당신이 보인다)
나이 서른여섯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방 한칸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캄캄한 인터넷 밤하늘의 공기가 참 맑다
- 최금진 시집 <새들의 역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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