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술집 / 고은
기원전 2천년쯤의 수메르 서사시 '길가메쉬'에는
주인공께서
불사의 비결을 찾아나서서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하늘에서 내려온
터무니없는 황소도 때려잡고
땅끝까지 가고 갔는데
그 땅끝에
하필이면 선술집 하나 있다니!
그 선술집 주모 싸두리 가라사대
손님 술이나 한잔 드셔라오
비결은 무슨 비결
술이나 한잔 더 드시굴랑은 돌아가셔라오
정작 그 땅끝에서
바다는 아령칙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냐
- 창작과비평 135호 2007년 봄호
달치 포구 다정옥 / 고은
달치 포구도 포구라고
밴댕이젓 나부랭이 아니면
눈꼽조개껍질이나 흩어진 것도 포구라고
거기 선술집 다정옥 있다
다정옥 춘자란 년
꼭 단호박같이 생긴 년
작달막한 것이
챙길 것은
여간내기 아니게 챙기고 나서
한번 누워주었다 하면
요분질로 밤새워
사내 피 다 말리는 춘자
바람 되게 불어쌓는 밤
웬만한 사내 둘은 거뜬히 죽어나는 밤
땀 식은 껄껄한 몸 가득히
신새벽 담배연기 힘껏 빨아들이는
그 담배 맛에 죽었다 깨어나는 밤
- 고은 시집 <만인보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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