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술집 외 / 고은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06|조회수655 목록 댓글 0

선술집 / 고은

기원전 2천년쯤의 수메르 서사시 '길가메쉬'에는

주인공께서

불사의 비결을 찾아나서서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하늘에서 내려온

터무니없는 황소도 때려잡고

땅끝까지 가고 갔는데

그 땅끝에

하필이면 선술집 하나 있다니!

그 선술집 주모 싸두리 가라사대

손님 술이나 한잔 드셔라오

비결은 무슨 비결

술이나 한잔 더 드시굴랑은 돌아가셔라오

정작 그 땅끝에서

바다는 아령칙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냐

- 창작과비평 135호 2007년 봄호

달치 포구 다정옥 / 고은

달치 포구도 포구라고

밴댕이젓 나부랭이 아니면

눈꼽조개껍질이나 흩어진 것도 포구라고

거기 선술집 다정옥 있다

다정옥 춘자란 년

꼭 단호박같이 생긴 년

작달막한 것이

챙길 것은

여간내기 아니게 챙기고 나서

한번 누워주었다 하면

요분질로 밤새워

사내 피 다 말리는 춘자

바람 되게 불어쌓는 밤

웬만한 사내 둘은 거뜬히 죽어나는 밤

땀 식은 껄껄한 몸 가득히

신새벽 담배연기 힘껏 빨아들이는

그 담배 맛에 죽었다 깨어나는 밤

- 고은 시집 <만인보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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