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술집 / 송경동
간판이 없는 집
이층에 있던 집
술을 시키면 주인은 한숨부터 쉬던 집
담배 연기가 동그랗게 말려 가던 집
내의 자락 끌며 공동변소 다녀올 때면
그 합수 냄새가 어쩔 땐 좋고
어쩔 땐 싫던 집
그 술집이 있던 동네 길가
공동수돗가에서 얼굴을 씻던 집
수챗구멍 속 쥐 눈망울이 크고 맑던 집
키 낮은 집. 대문이 방문이어서 골목길에
신발 여섯 짝 가지런하던 집. 어깨가 끼는
직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이층에 있던 집
방 세 칸이 수도꼭지 하나 마주보고 있던 그 이층집
그 수돗가에 쌀도 씻고 오줌도 누고 토하기도 하던 집
문밖에 철제 캐비넷 하나씩은 다 갖고 있던 집
장롱 내어두고 거기에 닭도 키우고
오리도 키우던 집
떼어 가면 만 원도 받고
오천 원도 받던 수은등 아래
전깃줄이 10차선 20차선으로 내달리던 골목
그 골목에 살던 사람들
날일로 지방에 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던
미장이목수철근곰빵질통전기조적방통공구리덴죠닥트선반칠도배
또 한 사흘은 보이고 한 이틀은 보이지 않던
빌어먹을룸펜쪼다머저리푼수벅수웬수개병쟁이귀머거리반팽이칠뜨기얼치기반푼이팔푼이들과
고물을 주우러 다니던 영감 박스를 주우러 다니던 할멈
얼굴이 미역오리처럼 마르고 흰 버짐이 피던 계집애들
낮에는 자고 밤에만 출근하던 처녀
등쳐먹고 살던 기둥어깨건달양아치들
일식집 나가던 처녀 갈빗집 나가던 아줌마
집에서 부업으로 미싱을 밟고 구슬을 꿰던 사람들
혼자 산 할머니 혼자 살던 아저씨 혼자 살던 아이들
거기 거기 밤이면 열심히 돈 없이
돈 버는 사업계획서를 짜던 아이
성당 청년부 일을 하며 인사성 밝던 아이
이빨 사이로 침을 틱틱 뱉으며 삐끼집에 나가던 아이
가까운 공단에 다니던 아이
그러다 맑스도 읽던 아이
우 몰려와 인생을 논하고 세상을 개탄하던 청년들
유인물 끼고 새벽에 나가던 청년들
그 청년들 잘 가던 이발소, 옆에
생선이 없던 생선가게, 옆에
거북선요 하면 거북선이 안 나오고
솔이 나오던 담배가게
어우러져 어우러져
이 모든 사람들 가끔은 들르던 술집
그 술집이 있던 닭장 골목
그 골목 밀고 이제는 멋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나는 왜 이리 슬픈가. 집을 잃은 아이처럼
버림받은 아이처럼
- 송경동 시집 <꿀잠>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