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 손택수

작성자파랑새|작성시간26.06.06|조회수919 목록 댓글 0

어느 하루 - 손택수

 

 

백일홍 꽃망울에

눈을 주길 잘했다

 

담벼락 아래 스티로폼 상자 속

상추에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인 일

 

어느 집 지붕에 앉은 고양이가 허리를 쭉 펴며 하품을 하는데

그 하품이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걸 상상한 일

 

길게 휘감기는 호스를 쥐고

가게 앞 인도에 물을 뿌리는

코끼리슈퍼 주인과

날씨 인사를 나눈 일

 

잘했다 사소한 그 일들 모두

일 나간 어미 대신 창가에서

빨래를 개던 내 아비의 일이었으니

 

아침에 널었던 빨래가 포슬포슬하게 마르는 동안

빨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흙을 뭉쳤다 푸는 동안

 

 

 

-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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