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경전 / 김수우
비가 온다 잘 지냈나 익숙한 주문(呪文)처럼 내리는 비,
나도 그들을 잘 안다
과일장수 아버지는 비가 오면 다섯 살 딸을 사과박스에 뉘고
비닐을 덮어 짐자전거에 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부터 빗방울을 사랑했다 홀로 걷는 법 함께 내려앉는 법
정직한 슬픔을 토닥토닥 배웠다
한때 빛을 키우던 지느러미들, 한때 날개를 고르던 새들
비가 오면 포장마차에 앉는다 빗방울 당도하는 소리 속에서
천천히 빗방울이 된다 단추도 되고 단춧구멍도 되던 빗방울
유리창도 되고 바다도 되던 빗방울들 냄비에서 끓는다
홀로 푸는 법 함께 풀리는 법 정직한 슬픔이 보글보글 떠오른다
저주를 푼다는 것, 그것은 서로를 알아보는 일이다
오래, 아무리 모질게 잊혀져 있더라도 금세 알아본다
막다른 골목 유행가도 삐걱대는 관절도 천박한 자유도
불완전한 마술도 새우깡 흘린 노숙의 자리도 싸구려 강박증도
빗방울이 된다 자박자박 낮은 발길이 된다
어떤 저주든 아름답게 풀어낼 수밖에 없는
몇 생애 내 어머니이기도 했던
홀로 걸어와 함께 내리는, 저, 이방인들
슬쩍 지나도 그림자조차 없어도 그들을 잘 안다 냄새와
그 유영이 익숙하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 김수우 시집 <몰락경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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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바스락거리며 걷는다
이 시는 시인과 빗방울의 인연에 대해 말한다. 인연의 시작은
다섯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일장수 아버지는 비가 오면
다섯 살 딸을 사과박스에 뉘고 비닐을 덮어 짐자전거에 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부터 빗방울을 사랑했다"
자전거 짐칸에 묶인 사과상자 안의 어린 소녀는, 실려 가면서
비닐 너머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았고 비닐에 와
부딪치는 빗방울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 인연으로 시인은 성인이 된 지금도 비가 오면 포장마차에 가
앉는다. 비닐 천막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고단한 삶의 단계들을 거쳐온 시인에게 빗방울 소리는 위안과
지혜를 준다. 그 위안과 지혜는 소리와 기억으로부터 그리고
현실 너머 근원적인 것과의 유대로부터 온다.
빗방울들이 일깨우는 그 유대는 "몇 생애 내 어머니이기도
했던" 근원적인 물과의 유대이다. 비는 그 어머니의 방문이다.
그것은 시인을 회복시킨다. 본래 근원의 물과 한 몸이었다가
이곳 땅에서 이런저런 모질고 볼품없는 모양새로 지내온 시인은,
어머니의 방문에 힘입어 물의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금 빗방울이
된다. 그리고 다른 모질고 볼품없는 것들에게로 흘러간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인과 빗방울의 인연의
시작에 대해 말하는 2연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이면서도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시인이 빗방울과 인연을 맺는 장면은
인디언 샤먼이 되기 위해서, 그들은 고독과 고통으로 자신을
정화시킨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찾아 들어가 몇 날
며칠 금식하며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은 태어나기 이전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2연의 소녀가 사과상자 안으로 들어가 눕는 것 역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사과상자는 무덤이자 자궁이다. 그곳에서 소녀는
生 이전 단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빗방울의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온 근원의 어머니와 만난다. 2연의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버지는 현실의 질서를
대변하는 자이며 현실 세계에서 소녀를 맡아 보호하는 자이다.
근원의 어머니가 하늘로 부터 소녀를 찾아왔을 때, 현실의
아버지는 서둘러 소녀를 숨기고 달아난다.
그래서 근원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불완전하게 이뤄진다.
현실의 아버지가 만남을 방해한 덕분에 소녀는 현실의 사람으로
남게 되지만, 불완전하게나마 만남이 이루어진 덕분에 소녀는
근원을 향한 그리움을 품게 된다. 이것이 그녀가 샤먼이 아닌
시인이 된 사연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만남을 방해하는
자이면서 의도치 않게 그 만남을 돕는 자이기도 하다.
신화적 전통에서 근원적 존재와의 직접적인 만남은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위험한 일이다. 제우스의 본래 모습을 본 세멜레가
불에 타 죽은 이야기나 아르테미스의 알몸을 본 악타이온이
사슴으로 변했다가 결국 죽게 된 이야기 등은 그러한 위험을
경고한다. 원시 부족민들이 의식 때 몸에 진흙을 바르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그러한 화를 면하기 위해서이다.
소녀는 사과상자 안에서 비닐을 사이에 두고 근원의 어머니와
만났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다치거나 병들지 않고 안전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행위가 위험을 완화시켜준 덕분에 안전하게
근원의 어머니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현실 저편의 근원적인 것을 동경하면서도 현실에서 삶의
모색을 계속한다. 그녀는 그 둘 모두를 놓을 수가 없다. 그것은
그녀에게 근원의 어머니와 현실의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최종적인 술어 "사랑했기 때문이다"는 그 둘 모두를
향해 있다. 시인은 이곳에 머물면서 저곳을 떠올리고, 저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품고 돌본다.
/ 홍기정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