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명호 호프집에서 / 강세환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07|조회수823 목록 댓글 0

정릉 명호 호프집에서 / 강세환

홍은동 산 1번지 무허가 블록 집으로

묵직한 달빛이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김관식이 들어가고

신경림이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까지 따라오던 긴 그림자 하나 담벼락에 붙어 있다

가난한 시인의 집 마당 술 취한 발자국들을

시인의 아내가 거둬들이고

시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슬픔도 거둬들이고

김관식에 이끌려

조지훈과 미당 댁에 세배 다녔다는

함박눈을 비틀비틀 밟으며

자정 넘어 들렀어도

큰 술 꺼내놓던 미당의 환호작약!

큰대자로 김관식은 숙면에 들고

미당의 술자리는 더 길어지고

무명 이불을 덮어주듯 함박눈 내리던 날이었다

시간 저편의 아내에게 머리를 누인 듯

신경림 선생의 추억은 행복하고 또 슬프다

함박눈은 오늘도

가난한 아내와 살던 산 1번지를 덮고 또 덮고 있으리라

함박눈처럼

다 흩어지고 또 남겨진 것들

"오백 하나 더!"

"오백 하나 더!"

- 강세환 시집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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