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명호 호프집에서 / 강세환
홍은동 산 1번지 무허가 블록 집으로
묵직한 달빛이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김관식이 들어가고
신경림이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까지 따라오던 긴 그림자 하나 담벼락에 붙어 있다
가난한 시인의 집 마당 술 취한 발자국들을
시인의 아내가 거둬들이고
시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슬픔도 거둬들이고
김관식에 이끌려
조지훈과 미당 댁에 세배 다녔다는
함박눈을 비틀비틀 밟으며
자정 넘어 들렀어도
큰 술 꺼내놓던 미당의 환호작약!
큰대자로 김관식은 숙면에 들고
미당의 술자리는 더 길어지고
무명 이불을 덮어주듯 함박눈 내리던 날이었다
시간 저편의 아내에게 머리를 누인 듯
신경림 선생의 추억은 행복하고 또 슬프다
함박눈은 오늘도
가난한 아내와 살던 산 1번지를 덮고 또 덮고 있으리라
함박눈처럼
다 흩어지고 또 남겨진 것들
"오백 하나 더!"
"오백 하나 더!"
- 강세환 시집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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