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이 걸어간다 / 정일근
접시꽃이 걸어간다. 좋은 봄날 다 보내고 걸어간다.
낮이 길어지고 해가 뜨거워질수록 제 꽃망울 속 열락의
꽃 차례차례 피워 올리며 걸어간다. 나무는 나무의
걸음걸이로 꽃은 꽃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은현리 유월,
꽃 한 송이 피운 뒤에 또 한 송이 피우며 접시꽃이 걸어간다.
색색 양산 펴고 나들이 가듯 걸어간다. 느릿느릿 걷지만
저 뜨거운 속도, 사람이 숨어드는 그늘의 길 아니라
작열하는 햇살 속 불타는 길로 접시꽃이 걸어간다.
- 정일근 시집 <소금성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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